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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작성일 : 10-12-29 23:3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화와 영광의 상징, 백향목 이야기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에서 최고의 황금기는 뭐니뭐니해도 다윗과 솔로몬 시대일 것이다.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표현할 때 백향목을 등장시킨다. 다윗은 다윗 궁전을 지을 때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백향목을 수입했고, 솔로몬도 성전을 지을 때 역시 히람으로부터 백향목을 수입했다. 하늘로 향해 직선으로 쭉뻗은 백향목의 자태는 성서시대 유대인들에게 영화를 상징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윗이 정복전쟁으로 확장해 놓은 영토를 잘 유지하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사이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서 최대한의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낸 왕이 솔로몬이다.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은 중근동의 국가 중 명실상부한 최고의 제국이었다. 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열왕기 기자는 백향목을 이용해 묘사하고 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평지의 뽕나무는 가볍고 단단하며 잘 썩지 않아 최고의 목재로 사랑받아 왔다. 그런데 솔로몬 시대에 목재로서 뽕나무의 위치를 레바논의 백향목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백향목이 뽕나무보다 목재로서 합당한가?

돌이 많은 이스라엘은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제외한 부분을 모두 돌로 지었다. 결국 지붕에만 목재가 들어갔는데, 지붕의 빔을 놓을 때 목재를 사용했다. 뽕나무가 사용된 곳이 바로 이 곳 이었다. 그런데 백향목은 너무 무거워 1년에 260여 차례 크고작은 지진이 계속되는 이스라엘에서는 자칫 지붕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었다.

백향목은 이스라엘에서 자생하지 않고 추운 레바논 산맥을 끼고 있는 두로에서 수입하는 고가의 수입목재였지만, 이스라엘의 현실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목재였던 것이다. 레바논 백향목부터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초목을 논했던 식물학박사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현실에 맞는 최고의 목재로서 뽕나무의 우수성을 몰랐던 것일까?

백향목은 그 자태에 있어서 부귀와 영광을 상징하는 나무였지만, 목재로 쓰기에는 이스라엘의 현실에 그다지 맞지 않는 나무였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솔로몬은 모든 건축물을 백향목으로 치장하며 백향목에 대한 편집광적 증세를 보여주었다. 재위 40년 동안 성전을 짓는데 7년, 자신의 왕궁을 짓는데 13년, 즉 재위 기간의 절반인 20년 동안 건축사업을 일으킨 솔로몬의 건축에 있어서 초점은 목재의 실용성보다는 솔로몬 정권의 위용과 영화를 열방에 떨치는데 있었던 것이다.

백향목으로 지어진 솔로몬 왕의 궁전에는 거대한 ‘왕의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에는 전 세게에서 들여온 진귀한 식물들을 심었는데, 시편 기자는 특별히 종려나무와 백향목 두가지만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궁정에 심긴 수많은 나무 가운데 왜 굳이 종려나무와 백향목만 등장하는 것일까?

종려나무는 남쪽의 뜨거운 광야와 사막에서 오아시스 옆에 자생하는 광야의 나무이다. 백향목은 북쪽의 춥고 만년설로 덮인 레바논 산맥에서 자생하는 산지의 나무이다. 시편 기자는 북방과 남방을 대표하는 두 나무를 언급하면서 열방의 우두머리로 우뚝 선 솔로몬 제국의 위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에 접한 해안 평야보다는 중앙 산악지대에 정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요 교통수단은 ‘나귀’였다. 나귀는 발목이 튼튼하고 무거운 물건을 거든히 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산지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할 나위 없이 좋은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게셀, 므깃도, 하솔의 도시를 요새화 하여 마병의 성으로 건축하여 수많은 말들을 사육하였다. 그가 말을 키운 목적은 무엇일까?  말보다는 나귀가 이스라엘의 지형적 특성에 적합한 교통수단인데도 말이다. 산지에서는 무용지물인 말, 그러나 성서시대 유대인들에게 ‘말’은 힘과 권력, 그리고 강한 군사력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솔로몬이 실용적인 나귀보다는 자신의 파워와 군사력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을 사육하고 이를 위한 3개의 마병의 성을 건축한 목적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는 방패도 금으로 만들었다. 금으로 만든 큰 방패가 200개, 작은 방패가 300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용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방패를 금으로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또한 자신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과시하고자 한 쇼맨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분석해 볼 때, 솔로몬 정권은 ‘실용주의 정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백향목은 그 자태와 위용에 있어서 영광과 부를 상징하지만, 성경에는 백향목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종종 나온다. 솔로몬처럼 부귀와 영화를 드러낼 만큼 실제적인 권력과 파워와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된다면 좋겠지만, 남유다 말기의 왕들은 망해가는 국운과 바닥나는 국고에 상관없이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했다. 이쯤되면 백향목은 분수에 맞지 않는 ‘교만과 허세’를 상징하는 나무로 전락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남유다 말기에 멸망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백향목으로 화려한 궁전을 짓는 여오야김을 책망하셨다.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으로 초토화되던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가 다시 부흥하면서 북쪽의 아람이 앗시리아를 막는 틈을 이용해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로 이어지는 마지막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 때에 남유다는 아마샤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아마샤는 에돔을 격파한 이후 북쪽의 요아스에게 진검승부를 요청했다. 이에대해 요아스는 자신을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그리고 결투를 신청한 아마샤를 레바논의 ‘가시나무’로 비유하면서 조롱했다.

솔로몬 시대의 영광이 지나고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은 한 세대의 영화를 뒤로 한 채 2류 국가로 떨어지고 말았다. 북쪽의 아람과 앗시리아에 의해 국토가 절단나는 위기도 맞았지만, 이들이 잠시 물러난 소강상태를 맞이해서 남북이 연합해 힘을 기르고 후일을 기약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요아스와 아마샤는 ‘누가 진짜 백향목인가’를 경쟁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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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종려나무 이야기
가난과 궁핍의 상징,쥐엄열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