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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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8 21:4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어 성경과 성경신학


도틈으로 적은 “원어 성경과 성경신학” 이 큰 말로 보이기도 하고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성경신학이란 비블리칼 쎄올로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말한다. 이 글의 뼈대와 흐름은 어디까지나 원어 성경이기에 성경신학을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일 때 작은 도움을 곁들이려고 한다. 이 신문이 지닌 사명은 말씀운동 확산이라고 했다. 성경부터 성경까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언약사적 성경신학이라는 틀 가운데 성경 난제와 신학 난제 까지도 다루기를 목적했기에 성경 절대 권위 가운데 종교개혁을 이어받아 나아가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성경 원어 분야도 제대로 다루어야만 하리라.
서론으로 몇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건너뛰어서 빨리 원어 성경 자체를 실제로 어떻게 배우고 다루는 게 마땅할까 나누려고 한다. 노파심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원어에 상당한 식견을 지닌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그 무엇도 내세울 게 없고 온전한 게 없음을 고백한다. 말세에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갓난애처럼 다가서면 좋겠다. 처음 배우듯 설레고 새롭게 기다리는 눈망울로 질박하게 받으면 좋겠다. 연재가 이제 초반인데 이끄시는 만큼 사귀면서 원어 성경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성령님이 가르치는 대로 깨닫게 하신다면 원어 성경을 상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원어 성경을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라도 부르심이 있다면 배울 수 있다. 더욱이 그 성경신학을 통해 성경을 꿰뚫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흔히 생각하듯 그렇고 그런 정도의 원어 성경이 아님을 단박에 안다. 성경만 참이고 모두가 거짓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성경을 가감하는 행위를 조심해야 한다. 잊지 말 것이 성경 원어 그러면 세상 어학 공부를 떠올리기 쉬운데,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한 방편이다. 또 하나는 사어[죽은 말]이라고 함부로 말하는데 잘못이다! 게다가 원어 성경주의가 있는데 말도 안 된다. 반대로 역본주의도 마찬가지로 빗나갔다. 원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오히려 제 글을 더 쉽게 받아들이리라.
원어 성경에 무슨 문법이니 불규칙 따위가 없다. 임시로 약속하여 서로 이해하려는 표현이다. 원어 성경을 기존방식으로 배우려다간 늪에 빠진다. 적어도 우리말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을 목적으로 배워야 맞다. 사전이나 찾아서 낱말분석이나 하는 것은 원어 성경 전체를 꿰뚫지 못한 증거이다. 원문 비평을 한다면서 문자나 쓰고 고문서 따위를 디밀어보아야 아무것도 아니다. 구약과 신약을 올바른 성경관으로 단숨에 읽도록 배워서 차츰 독해력이 붙는다면 원어 성경의 성깔과 진면목을 깨달으리라. 견주어 말하면 의미분석으로 성경신학을 세우듯 그렇게 원어 성경 자체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껏 누가 그렇게 했는가?

문법과 신학을 내세운 성경 해석 방법이 있다. 원어 성경을 받아들일 때 잊지 말 것이 원어 성경 밖에 자료들이다. 문법과 성구 사전 나아가 낭독법과 사본편집 따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런 책들을 만들고 연구한 무리들이 저마다 성경관을 갖고 원어 성경을 배우도록 만들었다. 99% 자유주의 비평신학으로 만든 자료들이기에 심각하다. 원어를 배우는 데 필요한 보조자료들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어야만 올바로 원어 성경을 읽는다. 정통신학과 정통신앙의 처지에서 만든 자료들이란 아주 조금이고 옛날에 만든 것들로 도서관에서 잠잔다. 부패한 이성을 앞세워 과학 따위로 편집한 원문 비평 사본을 모든 신학교에서 가르친다.
주경학 부터 성경개론을 보아도 비평판 성경으로 연구한다. 대부분 내용이 정통과 비슷한 듯해도 여러 수법으로 성경을 파괴하는 사상으로 낱말을 다룬다. 언어란 뜻을 먼저 소리로 나타내고 나중에 글자로 표시한다. 소리 원리부터 바르게 갖추어야 글자 표기도 알맞게 갖춘다. 소리와 글자가 가장 오롯하게 어울리는 언어가 우리 배달말뿐이다.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음역한 낱말들을 견주어보라. 자음만 22개인 히브리어 알파벳을 헬라어 자음 17개로 도무지 담을 수 없다. 음역쯤이야 할지 모르지만 그 음역 작업에 이미 해석이 들어간다. 하나님 성호를 놓고 견주면 심각해진다. 정통 원어 성경을 걸맞는 자료로 다루어야 마땅하다.

원어 성경 편집부터 사전들과 성구 사전, 문법책과 논문들을 보면 저마다 신학을 전제하고 기술했다. 그런 책들을 분간 못 하고 받아들이면 원어 성경을 배우다가 오히려 배교할 수 있다. 이미 말했지만, 원문비평신학이 모든 신학교와 모든 성경공회를 장악했다. 진리의 영으로 분별할 수 없으면 성경관이 빗나간다.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배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원어 성경에 여러 모음과 악센트 표시랑 비평장치까지 너저분하게 있는데 크게 조심해야 한다. 에덴 동산에서 이미 말씀을 비평했는데 지금이야 오죽하겠는가? 바벨 평지에서 말글이 갈라진 뒤에 언어타락이란 어마어마하다. 우리 말글까지도 그러하니 두렵다.
헬라어가 히브리어를 언어학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데 저급한 후손어인 현대 서양 언어들로 원어를 다룬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다만 섭리 가운데 16세기에 성경 번역이라는 특별 선물을 주셨기에 이것을 잘 받아야 한다. 우리말과 성경 히브리어를 언어학 처지에서 견주면 차원이 다르다. 우리말이 초중종성 음소조합으로 이루어진 특별언어이기에 자음으로 된 음절 언어인 성경 히브리어가 따라잡지 못한다. 이것은 섭리로 지난날 영어도 써주셨는데 특별계시를 기록한 섭리로 보아 번역어로서 우리말이 원어 성경을 번역하고 연구할 때 나타날 교회개혁을 바라게 된다. 다만 우리말이 지금 철저히 묶여서 외곡됐고 망가지니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성경신학의 원리처럼 전통 원어 성경도 같은 방식으로 다가서야 한다. 원어 성경 전체를 어떻게 다루는 게 마땅할까? 알아야 한다. 서구신학에서 분석하여 부분을 다루는 방식으로는 전체를 못 본다. 우리말 성경처럼 읽고 깨닫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른 원어 성경을 보는 게 중요하지만 개혁자들의 성경 번역 전통을 잘 받아서 번역한 우리말 성경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원어를 배울 때 현대 히브리어와 현대 헬라어는 아무런 도움이 않된다. 우리 말글의 원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 개혁자들의 원어 성경관과 초대교회 교사들의 바른 원문관을 가려잡아야 한다. 벌써 알파벳 첫 발음에서부터 성경관이 갈라진다. 
하나님이 계심을 계시언어들로 어떻게 표현하셨나 확인해야 한다. 엘로힘이 예호바이고 예수스가 크리스토스라는 성경계시를 간추린 고백이 원어 성경을 통해서 더욱 심도 있고 풍부하며 정확하게 증거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말 번역 성경에 대한 이해가 밝아지고 번역개혁을 통해 성경신학이 반석 우에 선다. 성경원어관이 성경번역관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성경신학으로 정리된다. 이 세 분야가 일체로서 하나라야 맞다. 아직 우리는 성경신학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는데 원어 성경과 역본 성경을 성령님 열매로 증거해야 한다. 이것을 어느 만큼 이루어간다면 16세기 교회개혁을 이어받아서 한 걸음 더 내디디리라 생각하며 또 바란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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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분석 성경개론』 히브리어판 (An outline of the Bible, by Rev. Yong-Ki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