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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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28 21: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4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 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2월 21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


1. 성경 권위 확립을 통해 인본주의를 비판해야 할 개신교가 인간적 편의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교육 제도를 따라가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폐단을 낳고 있습니까?

개신교의 권위는 성경 권위를 확정하는 교육일 때만 그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성경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전달도 하지 않은 채 세속적인 교육 제도만 모방해서 돈을 받고 졸업장을 남발하는 것은 개신교 교육이 스스로 성경권위를 포기하는 행위가 됩니다. 참으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속적 제도에 물든 교사들에 의해 교회가 절대 진리 성경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머리 없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지금 교회 강단은 성경을 포기한 징후들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도덕이나 정치적 발언, 인기 영합 발언 내지 상식화 혹은 철학화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교육제도에 노예가 된 교회가 성경 진리를 전승할 수는 없습니다. 관습화된 인간 중심의 개신교 교육은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과 무관하게 교육제도를 따르다가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2. 현재 개신교의 인위적 교육은 각종 이권을 추구하는 정치적 권력집단이 되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점을 특히 지적하실 수 있습니까?

성도들이 성경 진리를 모르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제도를 통해 교회는 외적으로 성장하면서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서 당연히 이권이 개입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정치적 술수와 권력구조가 성경 말씀을 대체해 버리게 됩니다.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 교회는 외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내부의 실상은 부패한 세속의 정치집단이 됩니다. 성경 진리를 모르는 성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종교권력의 권모술수에 희생양이 됩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성경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는데, 이권을 추구하는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점점 내몰리고 있습니다.

3. 시간과 장소를 인위적으로 지정하여 행하는 이른바 ‘대예배 의식’은 개혁파 교회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이 대예배에서 성경 진리의 객관성을 무시하는 목사의 설교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까? 

사실 간단히 말하면 성도들의 올바른 성숙이 목사의 비성경적 설교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 곳곳에서 말로 혹은 글로 목사들의 설교가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하는 성숙한 운동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싫어하겠으나 설교에 대해 ‘비성경적이다’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자신이 진리 싸움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성경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비난이 아니라 진리 비판이며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의 권위를 고착화하는 수단인 ‘대예배 의식’은 정말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중세 로마가톨릭의 적폐인 미사(예배)의식을 개혁하고 성경 권위를 회복하자는 진리 운동이 종교개혁이었는데, 이것을 개신교가 조장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비성경적이고 범죄행위입니다. 교회 성도들은 분통만 낼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예배’가 무엇인지 성경 진리에 몰두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곧 성경 진리의 대중화, 신학의 대중화 운동을 펼쳐가야 합니다. 

4. 소위 ‘대예배’ 중심의 의식(儀式)은 교회의 절대표지인 성경 진리를 전수하는 성경학교 교육을 황폐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폐단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인위적 종교 제도는 반드시 신전(神殿)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의식 중심으로 가면 교회당은 성전으로 변질하고 신전으로 둔갑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제도화하는 것은 성경 진리를 보수하고자 하는 취지를 거역하는 행위가 됩니다.
저는 교회당이 성도들을 교육하고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교제하는 ‘회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전으로 둔갑한 개신교의 교회당은 로마가톨릭의 우상화한 성당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교회당이 예배당으로 그리고 성전 혹은 성당으로 변질하면서 신전으로 둔갑하고 이는 곧 성도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통제하는 장치가 됩니다.
개신교가 성도들을 신전 중심의 종교인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로 심각한 범죄라고 봅니다.
5. 교회 교육은 현재 대부분 담임목사에게 그 권한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교회 교육을 비성경적인 주관적 소견으로 자기 생각을 주입하면 어떤 폐단을 낳습니까?

신학교에서 귀족화 교육을 받은 목사는 자신만이 복음을 전하는 권한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성경에서 살펴보면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를 만나면, 이내 가서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은 확신을 가진 성도 누구나 사명감을 가지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속 제도를 따르는 신학교는 복음전파에 불필요한 내용을 억지로 어렵게 만들고 그 과정을 통과한 자에게 선포의 특별한 권한을 주도록 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성경 진리를 깨달은 자는 누구나 전할 수 있고 그런 자가 모두 동역자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가 주관적 소견으로 가르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됩니다. 개신교의 상황입니다. 성경을 진리로 확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십 년 혹은 이십 년을 다니면 그리스도의 신실한 복음의 일꾼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비성경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목사의 종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인 제도 자체를 혁파하기 위해 물리적인 어떤 ‘대항마’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구습을 깨뜨릴 수는 있어도 그것이 대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개혁론』에서 또 다른 인위적인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개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쉽더라도 인위적인 제도를 먼저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성경 진리에 얼마나 확신이 있고 성경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 진리에 대해 확증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양육되도록 하는 것이 보혜사 성령께서 진리로 교통하게 하시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여깁니다.

6. 현재 담임목사 중심의 교회교육 제도에서는 평생 목사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현재 개신교 교육제도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동역자를 양육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개신교 교육제도의 가장 큰 폐단은 종신토록 제자로 만들어 종노릇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교육의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성경은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가르치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개론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개론서인 『의미분석 성경개론』(진리의말씀사)을 성경 교육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쓰기도 했습니다. 성경개론은 어느 정도 교회에 다닌 사람은 누구나 성경의 전반적인 지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인도하는 매우 중요한 안내서입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굵직굵직이 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더해갈수록 성경 전체의 의미인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확증을 열어주는 안내가 바로 성경개론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대한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개론을 ‘구조 중심’으로 넓게 소개하는 것이 담임 목사 중심의 교육제도의 폐단을 극복하는 성경 교육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7. 점점 인본주의 제도가 교회 교육을 엄습해오는 상황에서 가정교회에서 무엇보다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모는 가정에서 적어도 자녀들에게 성경 기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어야 하며 신앙의 본을 보이는 선배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성경 중심의 교회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교육에 든든한 기반을 두고 세속 교육을 받는다면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치열하게 배워갈 수 있는 소양을 길러줄 수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적어도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 내용은 10세 전후에서 알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은 청소년 시기에 심하게 방황할 때 하나님 중심의 선과 악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되고 점점 성장하면서 관습화된 세속적인 교육제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정교회와 교회학교에서 성경 진리로 자녀와 후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양육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국, 인간 중심적인 세속 교육과 세속 문화에 그리스도의 자녀를 방치하는 결과가 됩니다. 또한 부모라고 해서 자녀를 자신이 양육한다고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녀든 교회 후배든 성심으로 성경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녀 양육 원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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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성경과 성경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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