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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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1 22:2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어 성경과 종교개혁


오늘은 원어 성경에 비추어 큰 도틈을 다루고 싶다. 16세기 전후 일어난 교회개혁 문제이다. 루터가 어쩌다 95개조를 게시한 때박을 기념한다고 한다. 중세 로마교를 벗어나서 다시 교회를 옳바로 세웠다는데 무엇을 고갱이로 붙들어야 할까? 26년 뒤에 태어난 깔뱅 때 교회개혁을 정비했다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일까? 알맹이가 빠진 채 인간놀음으로 전락한 종교개혁이다. 지엽에 치우쳐 빈 깡통소리만 요란하다. 개혁의 삼원리던 깔뱅파 교리던 한 때 받은 선물이지만 더 근본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보다 성경을 번역하여 가르친 일이 맨마루이리라. 트렌트회의에서 교황이 모르게 성경 번역하면 죽임을 선언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 이후 성경번역사를 잘 살펴보면 늘 피 흘림을 동반한다. 지금이야 방식이 바뀌어 옛날 방식으로 핍박하지 않지만 영적으로야 마찬가지다. 사탄이 노리는 수법 중에 거짓교사를 통해서 복음을 왜곡하는 일과 성경 번역을 비트는 일이 으뜸이다. 성경에서도 거짓 선지자와 거짓 사도 같은 거짓교사를 무척 경계한다. 마지막 때 흐리스토스를 맞서는 원수들이 초대교회 때 부터 수두룩하다. 지금도 조금만 있을까? 광명의 천사, 양의 탈을 쓰고 하나님 백성을 거짓 가르침으로 사냥한다. 가르치는 재료인 절대권위의 성경을 어떻게 공격할까? 적어도 정통교회로서 믿음이 분명하다면 성경번역 문제를 보편한 사명으로 알아야 한다.

사탄이 거짓교사들을 속여서 성경번역의 저본인 원어성경 조차 철저히 망가뜨렸다. 이성과 합리를 앞세워 선교를 빌미로 온 세상에 로마주의를 퍼뜨렸다. 개신교도 이미 16세기부터 동시에 변질했다. 성경번역으로 작정섭리 가운데 복음이 크게 드러났지만 개신교 안에서 가라지들이 꿈틀거렸다. 깔뱅을 이어받았다는 베자만 보아도 성경번역과 원문비평에서 다른 소리를 교묘하게 나타냈다. 오늘날이야 오죽하겠는가? 몇 해 전에 종교개혁을 기념한답시고 서울 강남에 어느 길을 칼빈로 라고 이름 지으려던 조작에 코웃음이 절로 난다. 속은 줄 모르고 속아서 오히려 기념한다면서 왜곡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성경번역 상태를 아는가?
원어성경편집에 로마주의부터 유대주의까지 한통속으로 그럴싸하게 겉꾸며서 속였다. 이걸 아는 이 드믈다. 개신교가 자유주의만 아니라 개혁신학도 모두 넘어갔다. 그러니 교회가 성경에서 더욱 멀어진다. 별별 성경 공부 교재가 나오고 별별 신학이 나와도 오히려 거의 대부분 성경을 짓밟는다. 원어 성경 비평작업이 고대로 모든 나라 성경 번역에 교묘하게 반영된다. 성경책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금시초문이리라.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말씀회복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중세 때보다 성경에 무지해졌으니 어찌 할꼬? 성경공회가 성경 위에 있는 때이다. 성서공회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누가 제대로 파악하여 아는가?

루터를 필두로 개혁자들이 대부분 제나라 말로 성경을 번역했다. 놀라운 섭리이고 개혁의 발판이다. 교회만 아니라 나라 까지도 뜯어고치도록 그 번역을 성령님이 써주셨다. 언어가 달라지니 시민들 사상이 바뀌고 로마 가톡릭에게 맞섰다. 지금 왜 조금도 변하지 않은 로마교에게 개신교가 먹혔는가? 어이없는 일이다. 바로 성경에서 멀어진 열매이다. 복음에서 멀어지고 성경전체의 핵심 가르침을 모르니 속고 속이는 형국이라. 중세 거짓 교회가 세상 온통을 속여서 죽이고 속박했기에 멍청해졌던 사람들이 성경번역과 그 가르침으로 줏대가 생기고 사상이 새로워졌다. 루터와 깔뱅이 번역에서 쓴 언어를 오늘 까지도 대단하게 평가한다.
이런 성경관을 이어받아야 교회개혁을 기념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드높인다 해도 성경 번역 문제를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그 열매를 계승해야만 개혁교회이다. 하지만 세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성경 번역을 보면 철저히 로마 가톨릭 노예로 들어갔다. 거창하게 신학자들을 앞세우고 여러 나라에 성경을 반포한다고 겉치레하지만 개혁자들의 번역관을 계승하지 못한다. 자유주의 비평신학으로 번역하는 정도가 아니라 초교파 범신주의 처지에서 번역한다. 게다가 우리 말글 자체가 변질했기에 그것을 알고 먼저 바로 잡아가면서 번역해야 한다. 이 무서운 철옹성을 뛰어넘기란 하나님의 작정과 주권에 속했다. 

성서공회만 아니라 너나없이 번역한다고 날뛴다. 옳바른 성경관을 전제로 그 신학의 처지에서 옳바른 원어 성경관을 지니고 우리 말글을 갖추어 개혁자들 번역관을 계승발전해야 비로소 우리말로 성경 번역한다. 개혁교회라면 이것이 기본이고 보편한 교회로서 사명이다. 알맹이가 없는데 종교사업 벌인다고 날뛰어야 끝날에 어찌 되려나? 16세기 개혁자들의 번역원리를 이어받아 넘어서는 한글성경이 아직 없다. 심각하고도 시급한 비상사태이다. 개혁파 신학교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비평신학 처지에서 학문으로 원어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어찌 옳바른 번역을 기대하겠는가? 언어식민지 같은 현실에서 우리말의 개혁 조차 버겁다.
1887년판 예수셩교젼셔랑 최근 개역개정판만 견주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적으로 번역이 자꾸 망가지는가 살펴보라. 낱말이건 문장이건 번역 원리이건 담긴 신학문제이건 온 누리를 속이는 사탄이 신학계와 번역계를 어떻게 속이고 주무르는가 알아야 한다. 대일항쟁기 35년간 력사를 망가뜨렸고 우리말을 창씨개명과 지명 바꿈으로 뭉개버렸다. 철자법과 맞춤법 따위로 지금도 그 후예들이 틀어쥐고 속이지만 아직도 살아있으니 크나큰 땅불쑥한 은혜이다. 일반은총으로서 말글만 회복된다면 력사의식과 사상이 줏대 있게 바로 서리라. 그래야 우리말로 성경을 제대로 뒤친다. 500돐을 진정으로 기리려면 성경 번역을 이룩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성경신학을 반석 우에 세우려면 그 내용을 손질하는 일도 중요한데 성경 번역을 제대로 서둘러서 마련해야만 한다. 우리말로 성경신학에 이정표를 세웠는데 우리말 성경번역으로 증거해야만 한다. 기존 한글성경에 머문다면 미완으로 멈추리라. 종교개혁의 꽃이 성경번역이라면 그 성경신학으로 열매를 나타내야 한다. 교회에서 가르침으로 검증하면서 성령님이 이끄심을 나타내야 한다. 그 성경신학이 정통신학을 계승하여 배달겨레에게 주신 선물로 세계 신학계가 받아들여 개혁하기를 바란다. 성경 번역에 앞서는 일 중에 원어 성경연구야말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서구신학의 범주에서 머뭇거린다면 주류에서 멀어진다.
섭리 가운데 16세기 교회개혁을 성경회복에 초점 맞춘다면 우리야말로 보편한 사명인 성경번역으로 그 고백을 증거해야 한다. 원어성경을 직접 간접으로 지지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일이야말로 언제나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말글을 훈민정음 원리에 따라서 바로 잡는 일과 아울러 원어 성경 개혁에 온 교회가 옹골차게 일어서야 한다. 지금 거짓 무리들이 성경왜곡을 원어성경부터 번역성경에 이르기 까지 뒤덮었다. 이런 때 남겨둔 이로써 성령님이 교회를 개혁하시되 성경을 똑바로 가르침으로 이루신다. 이제 우리가 16세기 종교개혁의 본질과 성깔을 근본 부터 헤아려서 오직 성경의 절대권위를 들어올리는데 전력해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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