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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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2-02 19:05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적 공정분배론
12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 20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눅 19:12-13,20-26)


 위의 본문은 예수께서 장차 이루실 하나님 나라에 관해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이다. 주인이 다시 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하면서 주인은 열 명의 종에게 각각 한 므나(고대 그리스 화폐 단위)씩 맡긴다. 이 본문은 누가복음 전체 흐름상 장차 재림하실 예수께서 그때까지 지상에서 성취하실 사역에 대한 약속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예수께서 맡겨주신 자신의 사명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의 깊이를 요하는 것은 비유에서 보여주듯이 왕이 되어 돌아온 주인이 종들이 장사한 내용에 대해 평가하고 상과 벌을 주는 부분이다. 어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의 이득을 남겼고, 어떤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다. [많은 설교가는 이 부분을 성도들이 각자 받은 사명을 감당하라는 교훈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이 비유는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도록 기록된 본문은 아니다. 오히려 성도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그 사명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두 장차 오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계 17:14)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관하시고 관리하신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본문이다.]

 주인은 장사를 통해 이득을 남긴 종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상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한다. 그런데 어떤 종은 한 므나를 그대로 바친다. 이유인즉 그러하다. 주인이 무서운 분이므로 혹여 받은 므나가 손실을 당할 시 가혹한 벌을 받을까 걱정스러워 그냥 잘 간직했다가 되돌려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엄격하고 가혹한 분으로 마음대로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득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변명까지 한다. 이에 대해 주인은 종이 했던 말을 근거로 그 종을 ‘악한 종’으로 정죄한다. 주인은 장사하라고 했던 명령을 자기 멋대로 받아들인 종의 태도를 ‘악한 것’으로 규정해 버린다. 심지도 않고 열매나 갈취하는 주인으로 알고 있는 종에 대해 주인은 차라리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라며 책망한다. 그러면서 주인은 그 악한 종에게 맡겼던 하나를 빼앗아 열을 남긴 자에게 더 준다. 이에 열을 남긴 종은 자신에게는 이미 열이 있다고 사양하자 주인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분배의 원칙을 못 박아 버린다.

 세상의 일반 상식과 상벌의 기준 그리고 공정성의 기준으로 보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 비유의 말씀은 계시 진리의 본질상 예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특히 미래에 확정할 나라와 그 나라의 심판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시는 내용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앞의 사건에서 상벌의 기준과 공정성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상 통념으로 보면, 하나를 받아서 하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아쉬움은 적지 않다고 해도 어느 정도 용인받을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현상 유지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도 조금의 공이라도 들어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앞의 비유의 말씀은 이러한 통상의 기준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반드시 하늘에 속한 결실을 맺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원천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에 나타난 주인의 의도는 반드시 장사를 하여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이 정한 뜻이다. 이 사실을 일반화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으로 받은 정한 지분 내지 자기 은사가 반드시 존재한다. 오직 하나님만 관여할 수 있는 은총이므로 세상의 어떤 누구도 빼앗거나 어떤 누구에게도 함부로 양도할 수 없는 절차로 진행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공정한’ 분배적 정의다. 타인에게 임의로 양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유의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겸양지덕으로 함부로 양보조차 할 수 없는 이미 정해진 소유의 지분이다. 세상의 절차적 정의, 공정한 분배, 양보의 미덕, 자발적 선행 차원을 넘어서는 ‘하늘에 속한 공정한 분배론’이 존재한다. 아니, 더 강조하고 싶다면, 그런 차원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성경이 인간이 만든 문서들의 조합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특별계시 기록의 말씀이고, 세상과 구별되는 차원을 꼭 보여줘야만 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앞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처음부터 의도한 바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이 더 많은 결실을 맺도록 정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신적 주권과 은혜로 ‘반드시’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받아서 결실을 맺은 것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열매이며 더 영광스러운 것은 그 나라의 주인(예수 그리스도)과 함께 그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말씀은 세속적 가치들의 분배 원리가 아니라 장차 확정하실 하나님 나라의 분배적 정의 규칙에 속한다.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그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에 속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열매는 어떠한 경우에도 (게으르고 악한 자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나라에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없다.

 이 세상에 생존하는 세인의 한 사람으로 정치적 정의, 경제적 공정, 법률적 원칙을 염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통치 원리를 조금만 고려하면, 그러한 바램은 순진하거나 어리석거나 무지의 소치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이 세상에 남겨진 이상 국가 조직이나 사회 지배 구조 혹은 자신이 속한 이익 집단에 소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항상 국가와 관련 조직에 대해 ‘공정한 분배’를 요구한다. 이익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세상은 그것을 사회인으로서 고양시켜가야 할 고유한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은 또한 불공정과 불법, 편법과 부당함이 훨씬 더 강한 지배적 원칙으로 보일 때가 허다하다. 절차상 부당한 경우는 교회 밖이든 안이든 비일비재하다.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교회로 거론하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시대다. 세상이나 교회나 외형적으로 볼 때 그리 큰 차이가 없어져 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파했던 그 당시나 현재나 혹은 미래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은혜 중심의 공정한 분배의 원리를 수립하지 못한다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게 하려는 것처럼 공정한 분배를 찾아 헤매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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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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