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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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4-05 22:0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코로나19, 불편과 고난과 고통이지만 꼭 명심할 진리
2021년 4월 1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누적 확진자 미국 3,000만, 프랑스 450만, 독일 280만, 폴란드 230만 명 이상이다. 4월 2일 오전 9시 기준 신규 확진자 미국 6만 명 이상이다. 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높다. 그 뒤를 이어 인도 5만, 터키·브라질·폴란드 각 3만, 프랑스 2만, 독일·스웨덴·이탈리아·아르헨티나·우크라이나·이란 각 1만 명 이상이다. 신규 사망자는 브라질이 가장 많으며 누적 사망자 수는 루마니아와 칠레가 벨기에 및 캐나다보다 많아졌다. 4월 1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 총 1억 2,777만 3,202명, 사망자 수는 279만 4,823명이다. 사망 숫자는 한국전쟁(1950.6.25.-1953.7.27.) 당시 남한의 인명 피해자 1.5배를 넘는다.[국가기록원 통계에 따르면,한국전쟁 희생자 수는 한국군 및 유엔군 인명 피해 772,608명, 민간인 인명피해(사망, 학살, 부상, 납치, 행방불명) 990,968명, 총 1,763,576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월 4일 기준 누적 확진자 105,279명, 사망자 1,744명이다. 그야말로 지금은 코로나19와 전쟁 중인데,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과 비교하면 이러한 나라에서 견디는 것이 새삼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교회는 감염 확산 초기부터 지금까지 주요 감염원으로 지목을 받으면서 사회적 비난과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형교회들은 기도원이나 수양관을 코로나19 환자 수용시설로 제공하는가 하면, 많은 교회들이 감염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적이다. 대면 모임을 전 교인 대상으로 갖지 못한 시간이 벌써 일 년을 훌쩍 넘겼다. 교회 모임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더욱 큰 혼란과 혼돈을 겪는 경우는 성도들이었다. ‘주일성수’를 마치 율법처럼 교육받은 성도에게는 처음 접한 비대면 예배는 적잖은 당황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그것도 가정이 아닌 아무 데서나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점점 일상으로 익숙해지고 있다. 반드시 주일날 교회에 나와야만 주일성수가 온전하며, 만약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 율법의 안식일을 범한 것처럼 교육받은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빨리 현실에 적응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교회에 나가지 않은 주일성수’란 성도들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비해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던 많은 목회자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안타까움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이지만, 성도들에 비해 심적 불안과 영적 혼돈은 훨씬 적어 보인다. 그야말로 목숨을 던져 사수해야만 하는 것이 주일대예배이고 주일성수라고 가르쳤던 지도자들은 더 혼란스러워 해야 하고 극도의 패닉 상황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성도들도 점점 주일대예배 중심의 주일성수에 둔감해지고 참석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에 큰 변동은 없다고 느낀다. 목회자들도 주일의 대면 방식 대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점점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그렇게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는 주일성수에 대해 저렇게 상황 논리로 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면 주일날 대면 대예배 참석이라는 주일성수의 실체가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진다. 주일성수는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만들어진 종교적 이데올로기였단 말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성도로서 꼭 짚어볼 문제가 있다. 경우야 어떠하든 교회에 자유롭게 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지체들을 볼 수 없는 상황은 너무도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교회의 절대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은 큰 문제로 삼지 않는 듯하다.  주일대예배 참석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확인하는 진리의 말씀이 그 본질이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착실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교회들이야말로 구약의 제사 행위와 같은 예배 참석 여부가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성경권위(sola Scriptura)’를 교회의 지표로 삼는 개혁파 전통의 교회라면 참석 여부보다 진리의 말씀을 충분히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과 아픔이 더 커야 할 것이다. 국가로부터 재난 지원금 받아 보너스 받은 기분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던 순간,  우리는 재난 상황을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 진리를 먹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둔감하지 않았던가? 주위 목회자나 성도들이 교회에 가지 못해 진리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줄어들어 통탄스럽다고 하는 말은 많이 듣지 못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으로 보인다. 목회자가 평상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데 얼마나 역점을 두었는지 혹은 성도들이 얼마나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불편한 내막들이 코로나19 전염병 감염사태를 지나면서 드러난 것은 분명하다.
주일날 함께 할 수 없었던 가족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함께 진리 묵상을 하는 귀한 시간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성도들의 가족은 얼마나 될까? 주일은 무조건 가정이 아닌 교회에서 보내야만 한다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가정교회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신앙의 부모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가족들이 모여도 평상시에 진리의 말씀이 삶의 바탕을 이루지 못한 가정은 함께 있는 상황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가족들끼리 함께 산책하거나 가정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하는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성도 각 개인의 경우, 대한민국에서 겪는 코로나19는 이제까지 관습적으로 타의든 자의든 분주했던 교회 일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상고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확증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율법적 제사 행위를 하려고 교회에 가는 것도 아니고,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공덕을 쌓으려고 교회에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교회의 절대적 표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전파하기 위해 양육하고 양육 받으려 교회에서 모였다. 그렇다면 이 코로나19 감염사태는 불편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 전에 성경진리에 전념할 수 있는 양육과 수양의 기회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진리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고 그것을 우선 실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확진자 수는 늘고 사망자도 늘어난다. 사망자 무덤이 부족해 수십 년 전 무덤에서 유골을 들어낸 자리에 코로나19로 죽은 시신을 매장하는 상황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주전 586년 남유다 패망 당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살육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 사태가 창궐(猖獗)하게 하는 심판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서는 예레미야를, 바벨론에서는 다니엘과 에스겔을 불러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회복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의 몸 된 모든 교회가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소홀히 하는 일은 늘어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아무도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기를 또한 기도한다.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12 먼 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13 그 살륙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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