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09-29 13:3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나라와 권세와 영광


성경에는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용어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다. 이 둘의 순서가 바뀔 수 없다. 이 의미는 뒤에서 즉 신약성경부터 본다는 것과는 다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논리체계라는 것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이유는 바로 언약과 성취 때문이다. 이 언약과 성취의 일치는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논리체계가 바로 자손(국민)과 땅(국토)과 통치(국권)를 만들어 내었다.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라를 만들고 조성하셨다. 이러한 나라를 만드신 것을 아주 강조하는 것들 중에서 이사야서는 매우 유명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 권세와 영광 때문이다. 또 달리 나라를 만드셔서 그분의 영광과 권세를 드러내신다.
성경의 많은 논리체계 중에서 여기서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집중적으로 간략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예수께서 기도로 소개하신 주기도문은 바로 이 세 가지를 들어 마무리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중요성은 구약성경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어찌 역사 섭리(창세기~에스더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역사 섭리의 중요한 내용이 바로 나라이다. 이 “나라”는 다니엘서에 가장 많이 나온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와 이사야서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지금 이 시대의 풍토와 분리하면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인공지능이나 빅(Big) 데이터 등에 연계되면 많은 의미와 흥미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모든 생활에 파고들고 있는 빅(大) 데이터와 연결하면 논리성과 체계성 등을 증명하는 데 강하고도 큰 근거와 설득력을 얻어낼 수 있다.
이제 짧은 지면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 세 가지가 왜 또 무슨 내용으로 그리고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간략히 분석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부분을 가지고 강조하고자 한다.


1) 구약성경에서의 선지서

선지서는 이사야서부터 말라기서까지이다. 이 선지서는 기본적으로 역사 섭리와 밀접하게 어우러지고 또 시가서와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권세와 영광은 각각 모두 역사 섭리와 시가서를 합친 것보다 선지서에서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이사야서의 주제인 때리고 싸매심에서 여호와의 권세와 영광을 배제시키면 그 진정한 의미를 얻어낼 수 없다. 실제로 그 내용을 통한 의미적인 체계에서 권세로서 때리시고 싸매신다. 또 영광으로 때리시고 싸매신다. 이러한 권세와 영광의 근거와 기초는 바로 나라이다. 예레미야서(애가)에는 “땅”이 제일 많이 나온다. 이 땅은 나라의 요소에서 중간의 매개로서 중요하다. 앞의 국민과 뒤의 국권과 늘 같이 동반된다. 예레미야서에서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지명은 바로 예루살렘과 바벨론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동을 진정한 권세와 영광 없이 어찌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에스겔서와 연관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니엘서는 그 내용의 논리체계가 나라를 멸하고 세우심이다. 다니엘서는 다른 대선지서에 비해서 분량이 매우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권세”는 제일 많이 나오고 있다. 12소선지서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12소선지서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자 할 때 우선 ‘왜 열두 개로 나누어 구성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관심사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 세 가지의 논리체계에서, 나라는 호세아서부터 미가서까지에 더 밀접하다. 권세는 나훔부터 스바냐서까지에 더 밀접하다. 학개서와 스가랴서와 말라기서는 영광과 매우 밀접하다.


2) 신약성경에서의 주기도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구약성경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아브라함과 다윗에서 그 중심은 다윗이다. 이 점을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 등에서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를 여러 번 강조하셨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에도 우리를 생각하여 해석한다면, 그 의미는 대단히 깊어질 수 있다. 바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 등과 결코 분리되어 해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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