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30일 (금) 

> 신학 > 신학 > 성경의 언어 <178>
기사공유 작성일 : 22-08-10 20:0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생사화복
생사화복(生死禍福)은 생사와 화복이 결합되어 있다. 공중의 기도 시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로 시작할 때가 많다. 또는 생사와 화복을 따로 떼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생사화복의 주관에 대하여, 이 말의 사용보다 주관자를 확인하여 확증하는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은 땅 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유독 사람들의 목숨만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유(萬有)와 만사(萬事)가 모두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성경은 공중의 새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있다. 모든 것 곧 만사에 대한 해석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어떤 공간과 시간에 동시에 처해 있다. 성경은 천하의 범사에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선포한다. 이 목적은 일반적인 운명론과 구분 지어 주는 중요한 한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대개 운명론의 핵심인 인명재천(人命在天)을 거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의 죽음 앞에 무기력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피조계인 하늘(sky)을 포함하는 근원(heaven)을 의미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에서의 하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하늘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할 때에 바로 그 하늘이다. 이 하늘은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특별히 의미 있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도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며 살라고 한다. 물론 하늘의 의미 차이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로부터 문제의 제기를 가져올 수 있다. 오늘의 문화가 너무 땅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나 개인사 이 모두가 하늘에 의해서 진행되지 않는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기서는 생사를 생로병사(생로병사)에 그리고 화복을 전화위복(轉禍爲福)에 연계시켜 간단히 분석을 시도한다.

1) 생로병사(생부터 사까지)

생사병사(생로병사)에서, 생(生)은 시작이나 출발이고 사(死)는 끝이나 결과이다. 그 중간의 노병(老病)은 과정이나 중간이다. 인간의 출발로서의 태(胎)를 여호와께서 조직하여 놓는다고 시편이나 전도서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 자체는 자신의 배꼽을 보며 당연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으로 생각하게 된다. 입으로 먹고 말하는 활동에 대해서 잠언서는 반복되게 강조하여 서술하고 있다. 전도서 기자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정한 때를 나열하고 있다. 시작하면서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간 자체가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고 스스로 지나가는 것일까? 이것은 시간의 정체성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시간의 정체성에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시간의 존재여부이다. 시간은 정말 있는 것일까?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고, 현재는 지나가는 중인 찰나이고, 미래는 지나오지 않은 것이니…….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니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 회피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피하려고 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인간 가까이에 있다. 세월이 원망스러워도 멀리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시간은 오묘한 점이 없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항상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보면서 그 어딘가에 묻고 싶다. 성경 외에 다른 곳에서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있을까?

2) 전화위복(화부터 복까지)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재난이나 재앙 등이 시간이 지나서 결국 복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전화위복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복이 되는 것과 화로 여겨지는 것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위복의 큰 의미를 부각시킬 때에 창세기의 요셉의 일생을 떠올릴 수 있다. 형제들에게 팔리는 것! 인간의 삶에서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 수 있을까? 피붙이에 의해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아닌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을 수 있을까? 요셉과 같이 성경에서 전화위복과 연계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되어진다. 여호와 하나님 자기가 스스로 저주받은 인간의 몸을 입고 결국 죽고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주)한국크리스천신문(http://www.kcnnews.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교회와 주관적 현실성
참 교회에 대해서
 
 
헤드라인
총회,교계뉴스
신학
성경바로알기
과학
철학
역사
사설
시론
칼럼
많이 본 기사
박홍기 저 『개혁파 신학의 다양
매물로 나온 유럽 교회, 야벳 후
계시를 수용할 공간과 장소로서
시편 50장 1∼15절 제물보다 중
강기총과 인터강원, 한국전쟁 72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길    |    광고안내    |    광고신청    |    구독신청    |    기사투고    |    후원안내    |    후원자명단
등록번호 : 경기다01155   /   등록연월일 : 2009년 4월 14일   /   제호 : (주)한국크리스천신문
발행인 : 김혜영   /   청소년 보호책임자 : 김혜영
주소 : 461-370,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설개로 40 호크마하우스 4층 (주)한국크리스천신문
대표전화 : (031) 777-8092   /   팩스번호 : (031) 777-8094   /   E-Mail : kcnlogos@hanmail.net
Copyright ⓒ 2009 (주)한국크리스천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