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02-27 21: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르트 신학의 시작, “교회와 Dues dixit”


우리는 칼 바르트의 계시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를 계시발생주의, 계시연속주의, 계시일원주의로 규정했다. 그리고 루터가 제안한 ‘드러난 하나님과 감추인 하나님(Deus revelatus et Deus absconditus, 계시된 하나님과 은닉된 하나님)’을 차용해서 자기화시켰다. 루터의 용어로 칼빈은 사용하지 않았고 루터 사상과 전혀 다르다. 루터는 복음의 신비와 하나님의 경이를 표현한 것이고, 바르트는 인식된 학(學, scientia)과 인식 밖에 대해서 구분한 것이다. 바르트에게 계시는 인식 작용으로 인지된 어떤 정보(감정, 영향력, 기타 등등을 포함)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 <교회교의학 I/1> “§ 6. 하나님의 말씀의 인식의 가능성”까지 진행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교회교의학 I/1, I/2>에 있음을 제시했다. 그것을 계시일원주의로 규정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이 계시 안에 포함된 구조를 계시일원주의로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의 중요한 문장인 “그리스도는 계시의 객관적 현실이고, 성령은 계시의 주관적 현실이다”(KD., I/2, 222)는 이해되기 쉬운 문장처럼 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계시 안에 하나님이 있다(인식되었기 때문에)”는 개념이다. 계시 밖은 인식 밖이고, 인지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트는 최소한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 자세이다.

우리는 <교회교의학 I/1> “§ 7. 하나님의 말씀, 교의, 교의학”에서 바르트의 교리 이해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제시한 뒤에 들어가려고 한다. 바르트 신학의 출발이 ‘교회’라는 것은 제시했다. 마치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 선언과 유사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의심할 때 존재한다는 의식이 있다. 의식이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회의(懷疑)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심에서 시작한 계몽철학을 믿음의 학문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위대한 업적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바르트 신학은 정통신학에 대한 거부를 체계화한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삼위일체 하나님 믿음, 성육신 믿음, 예정론, 그리스도 무죄성 등을 믿지 않게 한 믿음 체계를 구축했다. 그것은 천천히 증명해 갈 것이다.

바르트는 ‘교회’가 지상에 가시적으로 상존(常存, Sosein)하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표준으로 생각했다.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교회로 둔 것이다. 이 교회는 교회당을 말한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 교회당에서 행해지는 한 인간의 발언(Rede, 언설)에서 하나님의 말씀(Deus dixit)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앞에 있는 한 인간이 발화(發話)하는 것을 듣는 인간의 자의적 탐구, 검증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한 행동을 한 공동체가 경험하지만, 거기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주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발생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거기에서 한 가치를 주장하면 그것이 이단적 행위가 된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가룟 유다의 수준에 대해서 정죄하는 것을 거부했다. 바르트는 가룟 유다의 행동도 신적 결단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한 행동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거부했다(KD., I/1, 165-166). 이러한 논의에서 바르트의 교묘한 표현은 임마누엘을 “죄인과 함께 하는 하나님”으로 규정했다(고경태, 칼 발트와 존 칼빈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비교 연구, 총신대 박사논문, 2007, 171쪽). 바르트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도식(peccatores iusti)을 창조와 죄의 변증 구조로 해소한다(KD., I/1, 452). 멋진 표현이지만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기독교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도식을 명확하게 규명한 유일한 종교이다. 바르트는 가장 명확한 진리를 가장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렸다. 그것을 교회당 안에서 발생하는 발언에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한다면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양심을 억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양심을 억압한다는 바르트의 주장은 어쩌면 옳다.

그러나 교회를 규정한다면 다를 것이다. 그것은 보편화한 기독교 사회에서 교회와 사회 갈등이 전혀 없는 20세기 중엽에 발생할 법한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 등으로 인해 유럽은 100년이 되지 않아서 교회가 사회와 갈등을 겪지 않도록 사라져 버렸다. 교회당은 존재하고 그리스도인은 사라진 유럽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교회에 있었고 누구나 교회에 와야 하는 시대에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 교리(피로 죄 씻음)는 하나님의 자유와 인간의 지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교회교의학 I/1>이 출판된 시점이 1932년이다. 히틀러 나치당이 출범하는 시기이다. 바르트는 1934년 바르멘 선언 이후에 본(Bohn) 대학에서 해직되고 스위스 바젤로 돌아간다. 독일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위인은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였다. 본회퍼는 루터파 독일 사람이었고 바르트는 개혁파 스위스 사람이었다. 바르트는 자기 눈에 보이는 일상적인 교회를 기준으로 신학을 전개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교의학구도, Die Christliche Dogmatik im Entwurf>(1927)에서 <교회교의학>으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 ‘교회’로 바뀐 시기에 발생한 바르트의 변화는 샤를로테 폰 키르쉬바움(Charlotte von Kirschbaum, 1899-1975)이 연구에 합류한 것이다. 샤를로테는 1924년 25세에 바르트를 만났고 5년 후인 1929년 30세에 바르트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면서 연구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32년 <교회교의학 I/1>을 함께 출간했다. 바르트는 ‘기독교’는 보편타당한 가치가 될 수 없고, ‘교회’가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언설이 있음도 보편타당한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은 인간학이다. 인간이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를 신학의 기초로 삼는다. 정통신학의 가치는 영원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죄를 심판하신 공의의 하나님과 거룩하신 하나님인데, 그 가치는 절대로 인류에 보편타당할 수 없다. 바르트는 교회와 학문을 보편타당한 가치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세상을 향한 교회”를 표방한다고 해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사람도 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갈 때, 죄인이 의인이 되는 구속 은혜는 버리고 가야 한다.

슐라이어마허가 계몽철학의 지성인들에게 <종교론>을 설파할 때, 보편가치인 절대의존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으로 기독교를 변호하려다가 자유주의의 교부가 되었다.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으로 주도했고, 칼 바르트는 ‘인식’으로 주도했다. 인식의 시작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인간 언설에서 ‘하나님이 말씀한다’는 행위에 있다. 참고로 자유주의를 내재신학으로 바르트를 초월신학으로 구분하는데, 내재신학이나 초월신학이나 모두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초월신학에서 인간 밖으로 나가는 것이, 과정신학에서 생태신학으로 그리고 탈인간화(decentralization of human)를 선언하면서 동물신학(animal theology)까지 변모하고(mutatis mundi) 있다. 신학은 인간 의식을 선도한다. 우리에게 바르트 신학은 구습이다. 칼빈,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하는 것처럼 바르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 세태의 근원점이 바르트에게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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