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의 절대 권위와 정경 확정의 섭리 과정(IV)
<지난 호에 이어서>
4. 라틴어 번역 성경의 성경권위 훼손 역사 (II)
라틴어 번역 성경 불가타(405년)를 완성한 제롬은 불가타 번역에서 시편 번역과 관련해서는 70인역을 텍스트로 삼은 ‘로마 시편’과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을 따른 ‘히브리 시편’을 구분했다. 제롬은 불가타 초기 번역에서는 70인역을 기반으로 번역한 ‘로마 시편’을 사용했다.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던 구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의 시편을 개정하는 형식으로 번역했다. 이 번역은 처음에 비교적 70인역의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사용하는 미사 공식 전례서인 ‘로마 미사서(Missale Romanum)’도 앞의 번역을 사용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로마 시편’이라는 명칭을 얻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1570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교황 비오 5세는 ‘로마 미사’를 전통 라틴 교회들의 전례 전통 예식서로 공포했다.
하지만 앞의 전통과는 달리 5세기에 제롬은 자신의 불가타 후기 번역에서는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을 바탕으로 시편을 번역한다. 이로써 70인역과 그 본문과 의미가 다른 부분도 발생하며 일부 전통적 표현이 변경된다. 하지만 가톨릭 내에서는 논란이 일었으며 일부는 제롬의 번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로마 가톨릭은 헬라어 70인역에 기반을 둔 라틴어 번역을 더 선호하게 되었으며 제롬이 개정하여 번역한 혼합형인 ‘갈리아 시편’을 정경 시편으로 선택한다. 이는 후대 10세기 이후 로마 가톨릭 체제를 옹호하는 프랑크 왕국과 이후 서유럽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정경의 공식 시편으로 자리 잡는다. 현재 로마 가톨릭은 갈리아 시편과 로마 시편을 혼용해 사용하면서 성경 권위를 인간의 전통으로 왜곡하는 혼돈을 거듭한다.
이러한 시편 번역의 왜곡 과정에서 ‘성경권위 회복’을 위한 16세기 종교개혁이 발생했다.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신학자들은 제롬의 ‘히브리 시편’(Psalterium Hebraicum)을 기반으로 삼고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MT)에 충실해서 시편을 번역한다. 정확히 말하면 제롬의 ‘히브리 시편’도 아닌 ‘히브리어 원문 마소라 본문’을 충실히 따르는 번역을 하였다. 루터 성경(독일어 번역), 제네바 성경, KJV(King James Version, 흠정역) 등 모든 개신교 성경은 마소라 본문(MT)을 기반으로 삼아 시편을 번역했다. 그래서 현재 개신교와 가톨릭 성경에서 시편 장/절의 번호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개신교 성경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작하는 시편 23편은 가톨릭 성경[라틴어 불가타 성경, 가톨릭 공용 라틴어 성경 기반 한국어 성경,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한 ‘성경전서’]에서는 시편 ‘22편’ 혹은 ‘22(23)편’으로 병기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5세기 제롬이 완성한 라틴어 번역 성경 불가타는 로마 가톨릭이 전통을 기준으로 정경을 정하는 오류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인다. 그 번역은 로마 가톨릭이 성경권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70인역에서 시작하는 성경권위 훼손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가는 인간 중심적 종교 전통이 로마 가톨릭의 성경권위 훼손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히브리서 4장 12-13절에서 말씀하신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의 절대권위가 로마 가톨릭의 라틴어 성경 번역 과정을 통해 중세와 근대의 서유럽 기독교를 심판하는 엄중한 섭리 역사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성경권위 추락의 역사는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성경권위 회복의 위대한 사건과 성경 중심적 개신교 역사를 새롭게 열어놓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경권위는 끝내 서유럽 개혁교회 전통을 통해 수호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살았고 운동력 있어 좌우에 어떤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계시된 역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5. 신약성경의 권위와 ‘무라토리 목록’ (I)
초대교회 시대의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죽은 후 ‘신약의 정경’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관련된 핵심 물음은 ‘어떤 기록이 교회의 바른 규범이 될 수 있는가’였다. 2세기까지만 해도 당시 교회지도자들이 사도들과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은 기록한 문서만 남겨진 터라 어떤 근거로 텍스트의 신적 권위를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한 것이 ‘무라토리 경전과 그 목록’(Muratorian Canon & Fragment)이다. 무라토리 목록은 2세기 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신약 성경 목록이다. 이 목록은 1740년경 이탈리아 사제와 역사학자, 문헌학자이며 사상가인 루도비코 무라토리(Lodovico Antonio Muratori, 1672-1750)가 발견하였으며 그의 이름에 따라 ‘무라토리 경전 목록’이라고 한다. 현재 밀라노의 암브로시안 도서관(Biblioteca Ambrosiana)이 보관하고 있다.
이 목록에는 복음서 시작과 직접 관련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으며, 누가복음과 요한복음만 언급한다. 사도행전(누가가 기록했다고 명시하였음)과 바울 서신인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를 포함한다. 그리고 유다서, 요한서신(두 권), 요한계시록과 베드로의 묵시록(이후 정경에서 제외됨)을 목록에 넣고 있다. 지금은 정경이지만 당시 무라토리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목록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이며, 무라토리 목록에서 배척한 책으로 ‘헤르마스의 목자서’와 마르키온파, 가현설파, 영지주의적 문서들이다. 이렇게 무라토리 경전 목록은 현재 신약 정경과 상당히 유사한 초기 목록을 제공하고 있으며 2세기 교회가 신약 성경의 정경을 어떻게 형성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매우 유익한 자료다. 초대 교회가 ‘사도적 전승 권위’를 기준으로 정경을 선택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입증해 준다.
그런데 그 당시 논쟁 중이었으나 후에 정경으로 채택되는 서신서가 있다. 이는 당시에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로 칭했다. 헬라어의 본뜻은 ‘이의 제기 받는 것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성경을 ‘계시 체계’로 이해하고 각 문서의 신학적 통일성과 사도성을 강조하면서 정경 논의의 출발을 가능하게 한 오리게네스(Origen, 185년경–253)와 에우세비우스(Eusebius, 260–340)가 사용했다. 특히 에우세비우스는 신약 문서들을 세 부류로 체계화하여 후대에 정경 판단의 중요한 기준을 마련한다. 당시 모든 교회(예루살렘 중심의 동방 교회, 로마 중심의 서방 교회, 에베소 중심의 소아시아 교회 그리고 히포 중심의 북아프리카 교회)가 수용한 정경을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라고 한다. 그 책들은 사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요한1서, 베드로1서이다. 그리고 논란이 되는 책을 ‘안티레고메나’라 분류하였으며, 그 책들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2·3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이다. 그리고 ‘노타(notha)’가 있다. 이는 교회들로부터 위작(僞作)으로 거부당한 문서들이다.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헤르마스의 목자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정경 확정 과정을 보면 어떤 인간이 수립한 법으로 정경 문제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가 실제로 수용해서 사용하고 있느냐를 정경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며, 이러한 배경 하에 점진적이고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정경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약 정경 27권 확증은 주후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298년경–373)가 현재와 같은 신약 정경을 ‘제시하면서’ 정경 목록이 정리된다. 맥그라스는 이러한 정경 목록 확정이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교회 감독이 주체가 아니라, 당시에 이미 그것을 함께 사용하고 있던 교회가 그 주체라고 강조한다. “신약 정경을 형성한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관습이었지, 기독교 주교들의 결정이 아니었다.” 특정 누군가를 강조할 수 없는 것은 교회의 머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리고 교회의 유일 표지인 성경 원저자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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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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