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3-05-24 09: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령의 부어짐(8) 마스터(Meister/Master)


3. Durch die Ausgießung(outpouring) des Heiligen Geistes wird es darum in der Freiheit des Menschen möglich, daß ihm Gottes Offenbarung widerfahren kann, weil ihm in ihr das Wort Gottes unausweichlich zum Meister(주인, 지배자, 대가, 신준호 - 스승) wird(KD., 289, CD., 265).
성령의 부어짐을 통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수여된다는 사실을 다음의 이유로써 인간의 자유 안에서 가능해진다. 즉, 그 부어짐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써 인간의 스승이 되시는 것이다(신중호, GG., 333).

칼 바르트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구원의 메커니즘을 인간 이성이 명료하게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바르트는 상당히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나타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있다면, 바르트의 제시를 보면서 구원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가능성이 인간 존재 내부에서 발생한다고 규정하면서(GG., 355), 책임질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가능성이 개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고 제시한다(GG., 355). 바르트는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을 하는 것처럼 했지만 결국 “어떤 것”이라는 모호한 메커니즘을 제시할 뿐이다. 그 어떤 것을 “성령의 부어짐”으로 연결시킨다. 우리는 수 없이 반복한다. 바르트의 전개 방식은 정통신학의 전개가 아닌 바르트의 사유체계이기 때문에, 신학도들은 주의 깊게 탐색해야 한다.

바르트는 성령의 부어짐이 하나님과의 대면 가능성으로 스스로 규정했다(GG., 355).
바르트는 성령을 Offenbarsein으로 규정하며, Offenbarsein이 되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성으로 연결해서,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내부(leiblichseelischen Existenz)에서 발생하는 성격으로 규정한다.
※ Offenbarsein = 계시된 존재(신준호), 계시사건, 계시될 수 있음, 계시 실존, 계시의 현실재, 계시됨 등 다양하게 어휘로 번역되었는데, Offenbarsein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예단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revealedness로 번역했는데, ‘드러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존재의 드러남(revealedness of Being)”, “하나님의 드러난 상태(the revealedness of God)”이고, 칼빈의 이중적 섭리 이해, “숨겨짐(hiddenness)과 나타남(revealedness)”의 구도도 이신열은 제시하기도 했다. 바르트에게 계시는 숨겨진 하나님이 어떤 계기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바르트는 인간 실존의 육체와 영혼의 공간에서 계시가 드러나 참여(Anteilnahme)하게 되어 참여자(Teilnehmer)가 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현상의 메커니즘을 ‘수수께끼(Rätsel)’로 규정했다. 신적 가능성에 인간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사건인데 파악될 수 없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바르트는 이러한 메커니즘에 모순(Widerspruch)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바르트는 이러한 현상을 철학과 신학의 범주의 차이로 제시했다. 철학에서는 현실성과 이념을 하나로 보는 것(Wirklichkeit und Idee in eins zu denken)으로 규정했고, 신에 관한 것은 신학의 범주로 분류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만이 알고 있는 영역으로 제시했다(GG., 336). 그리고 계시의 기적(das Wunder der Offenbarung)으로 논리를 전개해 간다(GG., 337).
바르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폐된 사실을 파악하게 되는 기적을 “하나님의 은혜”로 제시한다. Gott in Gnaden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번역했고, 영역에서는 God in grace라는 번역이 없고, accepted with God로 번역했다(KD., 292, CD., 268, GG., 337). 즉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죄인(große Sünder)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루터가 말한 “의인이면서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도식을 “은혜 안에 있지만 큰 죄인”으로 변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적 가능성이 인간의 경험과 행동이란 그릇에 담을 수 없는데, 인간의 육체적 영혼 실존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됨의 현실성(Wirklichkeit des Offenbarseins Gottes, the reality of God’s revealedness)이다. ※ 신준호는 이 부분을 “계시의 현실성”으로 번역했다. 계시의 현실성과 계시됨의 현실성이 있는데, 계시됨의 현실성이 계시의 주관적 가능성(subjektiven Möglichkeit der Offenbarung)이 된다.

바르트는 이러한 일을 수수께끼, 비밀 등으로 유지하며, 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은혜적 사역(Gottes gnädiges Werk)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식한다(Gottes Erkenntnis)고 규정한다. 우리는 ‘은혜’를 어떻게 받은 것(참고. 계 1:3)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는다면 바르트의 미숙한 설명에 빠져들 것이다. 바르트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은혜가 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모순을 유지하는 주체를 신으로 규정했다(GG., 337).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은혜의 비밀(Geheimnis der Gnade)이며, 인간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das Geheimnis Jesu Christi)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 비밀은 곧 하나님이 인간이 된 기적이다(GG., 337). 그런데 바르트는 여기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소유한다고 제시했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된 것은 곧 인간이 하나님을 소유하는 기적이라고 제시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기적을 위로부터 온 것과 인간의 결합으로 제시했다. 매우 드라마틱한 전개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개에서 결정적인 것이 생략되었는데,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설교)의 역할”이다. 바르트는 기적이 발생되는 현장, 시간을 신의 자유에 위탁하여 임의로 배치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은혜의 시간이 임의적으로 배치되는데, 은혜받을 시간은 규범적이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을 모두 언급했다(GG., 337-338).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됨은 하나님은 인간의 소유가 되는 기적이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을 극복하는 현실성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삶을 인도하는 스승(Meister, Master)의 역할로 규정한다. 정통신학에서 성육신과 부활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는 핵심적 가치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성육신과 부활에서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규정했다.

정태홍 목사는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사상을 수용하는 것을 비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Master라고 생각할 때 선(禪) 사상에 근거한 영성훈련의 최고단계의 권위자로 평가한다고 비평했다. 기독교가 신비주의로 변용되는 현상으로 평가했다.

바르트는 믿음의 유비(analogia fidei)를 주장했는데, 이 믿음의 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이해하는 개념이다(GG., 338). 비록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두지만, 그 비교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정통 기독교와 같지 않다. 정통 신학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비교에서 차이가 없는 동일실체(homoousion)의 하나님이시다. 존 스토트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정옥배 역, IVP, 2002)에서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높였지만 인간 세계에서 최고봉일 뿐이다.

[참고]
이신열, “칼빈과 판넨베르크의 섭리 이해에 나타난 창조의 역할”. 고신신학, 201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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