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바르트의 교의학, 교의 개념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 §1. “교의학의 과제”에서 ‘교의학’의 개념을 정립했다. 1. “교회, 신학, 학문”에서 교회의 학문인 신학을 일반영역의 학문 수준과 동일하게 놓았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적 철학(Philosophia christiana)”을 교의학으로 규정하고, 학문과의 경계를 교묘하게 용인했다(fur die Theologie nicht tragbaren Wissenschafts-begriffs mit sich selbst zur Kirche rechnet). 바르트는 만신전은 거부하면서, 학문과 신학을 단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용인했다(GG., 37: KD., 10. Eine Begrundung dieses Glaubens kommt nicht in Betracht, aber seine Verleugnung noch weniger. Seine Verleugnung konnte aber der Sinn einer allzu reinlichen Unterscheidung der Theologie von den ”Wissenschaften“ rein).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 §1. “교의학의 과제”는 1. 교회, 신학, 학문에서 2. 탐구로서의 교의학(DOGMATIK ALS FORSCHUNG), 3. 믿음 행위로서 교의학으로 진행한다.
바르트는 교의학(dogmatics)과 교의(Dogma)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Dogmatik ist die Selbstprufung der christlichen Kirche hinsichtlich des Inhalts der ihr eigentumlichen Rede von Gott. Den gesuchten Rechten Inhalt dieser Rede nennen wir ”das Dogma“. 교의학은 신에 관한 교회의 말함 내용(Rede von Gott, talk about God)에 대한 기독 교회의 자기 검증이다. 이러한 말함(Rede, word)의 추구된 올바른 내용을 우리는 교의(Dogma)라고 칭한다(GG., 37). 바르트는 ‘교의학(dogmatics)’에 대해서는 §7(하나님의 말씀, 교의, 교의학)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바르트는 교의학과 교의를 올바른 내용에 대한 자기 검증(Selbstprufung, self-examination)이라고 개념화했기 때문에, 그 개념 위에서 교의학을 ‘탐구(Enquiry)’로 규정한다.
반틸 박사(Cornelius Van Til, 1895–1987)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신학을 대항해서 개혁파 신학을 변호한 대표 방파제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그레샴 메이천(John Gresham Machen, 1881-1937)은 자유주의 신학을 대항하여 변호한 대표 방파제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반틸 박사 이후 칼 바르트 신학을 반틸처럼 방어하지 못했다. 결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청교도주의를 포용하는 신학 조류에 칼 바르트 및 현대신학을 비평하며 순수 신학을 변호하는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 칼 바르트 신학은 박형룡 박사와 반틸 박사에게 익힌 서철원 박사가 네덜란드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Free Univ)의 베인호프(Jan Veenhof, 1934-2024)의 지도 아래서 바르트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82년). 베인호프는 칼 바르트가 바젤에서 강의에 참석하였고, 바르트를 옹호하는 발티안(Barthian)이다. 자유대학교는 베르카우워(G. C. Berkouwer, 1903-1996), 헨드릭스 베르크호프(Hendrikus Berkhof, 1914-1995) 등이 바르트 신학을 옹호하며, 자유대학교를 바르트주의 신학으로 구성했다. 칼 바르트 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비평한 연구자는 서철원 박사일 것이다. 박형룡 박사(1897-1978)는 성경에 대해서(이다(is)와 된다(become)) 비판했다. 반틸 박사는 칼 바르트 신학의 기독론에 대해서 비평하며 거부했다. 그리고 서철원 박사는 바르트 신학이 삼위일체가 없음 혹은 부정함, 인간예수를 근거한 상승기독론으로 비평했다.
박형룡, 코넬리우스 반틸, 서철원 등은 개혁파 신학자로 교의(Dogma)에 대한 개념이 같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교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했다. 그래서 반틸 박사가 제언한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를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반틸의 전제주의는 사유의 전제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규정은 창세기의 아담의 실재성, 선악과 등의 실재성에 대해서 전제가 다르다. 바르트는 역사와 초역사(Urgeschichte) 개념을 통해 창세기 기사를 해석했는데, 이는 반틸이 보기에 성경의 객관적 진리성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바르트의 접근법은 현대적 역사 비판학과 타협하면서 성경의 문자적 진리를 포기한다고 반틸은 판단했다. 그래서 전제, 사유의 기초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바르트의 Dogma의 개념, 전제가 다르다는 것까지는 밝히지 않았다.
서철원 박사는 교리(Dogma)를 삼위일체, 그리스도 양성교리(한 위격에 두 본성), 이신칭의로 개념화했다. 그런데 바르트는 교의(Dogma)를 “하나님에 관해서 말함에서 추구된 올바른 내용”으로 개념화했다. 바르트의 교의 개념에 근거해서 조지 린드백(George A. Lindbeck, 1923-2010)의 『교리의 본성』(The Nature of Doctrine, 1984년) 등 다양한 저술이 출간되어 교의의 개념을 다변화시켰다. 린드백은 예일 대학 신학부 교수로 에큐메니칼 전문가였고, 예일학파(Yale School)를 주도했다. 최덕성 박사는 예일 유학 시절 수학했다고 한다. 최 박사는 린드백이 동양 유학생이 어린 시절 경험한 것과 순수한 복음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흥미롭게 경청했다고 회고했다. 린드백은 루터파 신학자로 1962년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학자이며, 후기자유주의 신학(Postliberal Theology)으로서, 교리를 언어 게임, 문화 언어적 관점에서 재구상화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교리의 기원』(The Genesis of Doctrine, 1990년)을 출간했다.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Redens von Gott)이 교회의 고유한 것이지만, 올바른 내용을 인식하는 것 혹은 탐구하는 것을 교의학이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바른 내용이 교의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에 관한 말함은 인간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신학의 대상을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함에 두었다. 개혁파의 신학 대상은 원형계시(Archetypal Revelation)와 모형계시(Ectypal Revelation)에서 모형계시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바르트와 설교에 중점을 두는 유사한 패턴이 있다. 바르트는 설교를 “하나님에 대해서 말함”으로 하지만, 개혁파에서 설교는 “복음을 선포함”으로 한다. 모형계시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신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형계시에 근거해서 선포된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구도이다. 칼 바르트가 말한 그 말함을 탐구하고 분석해서 바른 내용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성경계시에 합당한 것인지가 설교내용의 적합성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바르트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신에 대해서 말함 사건에서 바른 내용이 발생하면 교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 범위에는 제약이 없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은 택한 범위의 성경본문과 선포된 복음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에 관해 말함이라는 언어 사건에 주목하는데, 이 언어 사건은 인간이 말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에 관해서 말함의 행위에서 사건이 발생해서 올바른 내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내용이 교의가 된다. 즉 바르트에게 교의는 규범적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개혁파 신학은 고대교부 신학을 회복한 회복신학이고, 사도의 가르침을 유지하는 정통신학이고,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밝히고 순종하려는 성경신학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함에서 어떤 규범이나 한계가 없다. 교회에서 말함에서 교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바르트에게 교의는 확정적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될 이상적인 기대치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에서 교의는 과거에 확정된 것이며, 변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보편 교회의 결정이다.
바르트는 자기 사유 체계를 진행할 때, 그 기본 개념들을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개념들을 맹종하는 것은 정통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정통신학을 거부하고 자기 신학을 세웠다. 그의 추구는 성공했고, 20세기 이후 21세기까지 최고 위치에 있다. 모든 신학계(WCC, WEA)는 그의 그늘에 있다. 바르트가 말한 교의 개념으로 한다면, WCC가 교리를 떠나 한 가르침 체계를 세운다고 할 때 자유롭게 교리를 개방하고 설명해준다면 좀 더 빠르게 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칼 바르트가 말한 교의(Dogma) 개념은 개혁파 신학에서 말하는 교의 개념과 너무나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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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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