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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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18 20:5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666


이 세 단위의 수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교기독인도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이다. 그것은 아마 미래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두 달 전에 알파고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것도 미래에 큰 가치를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의 일에 관심을 제공해 주는 것 중에 이 666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성경 중에서 극히 부분적인 것이기는 하나 요한계시록에 나오기 때문에 그것의 연관성은 매우 크다. 요한계시록 13장 맨 끝에 붙은 이 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의문을 통하여 미래와의 연관성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인간과의 관계 중에서 그 본질을 짚어보는데 징검다리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대개 인간 자기 자신의 최대 관심사는 인간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해탈(deliverance)도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누구나 이렇게 구원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 자기 자신이 자기를 구해 낼 수 있는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에도 밀접하게 연관된 이 666에 대해서 좀 더 쉽게 접근해 보고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다른 수를 응용하여 본다.  그 수는 바로 144,000이다. 이 수는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온다. 이렇게 확실하게 구원 얻는 수를 확정(確定)한 곳이 여기를 제외하고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같이 강한 확증(確證)이라면 구원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것을 듣고는 무시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구원을 얻는 과정은 중생되는 통로와 밀접하다. 7장에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인침을 받은 이들의 수로 서술되어 있다. 각지파의 수는 각각 모두 12,000이다. 이 수들은 666의 의미를 보고자 할 때 관계되지 않을 수 없다. 14장에서 동일하게 등장하고 있는 144,000의 수치를 우리가 이 땅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 14장에 나오는 이 모든 계시가 영원성을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제시하면서 666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로 좀 더 가까이 가 본다. 구체적으로 그 수는 짐승의 숫자이며 사람의 숫자이다. 이러한 숫자 표현에 상징적인 숫자와 연계지어 세 가지 측면에서 각각 간략히 확인해 보고자 한다.  첫째, 사람의 숫자이다. 사람은 창조 시에 여섯째 날에 지음을 받은 인간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렇게 6이라는 숫자는 연관되고 있다. 창세기 2장에서 이렇게 지음을 받은 사람의 본질은 생령(생명체)으로 설명되고 있다. 666이라는 세 단위의 숫자에서 각각 상호 간에 연관되고 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여섯째 인(봉인)과 여섯째 천사의 나팔과 그리고 여섯째 천사의 대접 등은 모두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징의 숫자이다. 요한계시록에서의 이 상징은 영원성과 밀접하다. 여기에서 666 숫자 자체가 액면 그대로의 역사적이며 산술적인 수라면 굳이 상징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상징의 숫자로 사람에서 짐승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셋째, 짐승의 숫자이다. 요한계시록 앞에 있는 베드로후서와 바로 앞의 유다서에서 사람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666은 하나님의 영원한 권세와 영광을 계시하려는 목적에서 성경 전체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나 시야는 666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할 때 매우 중요하지 않겠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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