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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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5 21:0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원한 승리! 있나?


올림픽 경기가 8월 초부터 브라질의 리우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올림픽은 남미(南美)에서 최초로 열렸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여 개 이상의 국가들이 참여한 이번 올림픽은 지구촌의 축제이며 특히 남미의 기회이다. 이러한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직접 현장에 가기도 한다. 그 수는 지구촌의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통하여 시청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국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기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 즉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에게 올림픽은 더 이상 자기 국가의 메달 소식에 열광하는 행사가 아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친숙한 이들은 자기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종목과 스포츠인들의 활약을 좇아 자신만의 축제로 즐긴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올림픽을 즐기는 가운데서도 모든 경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승리의 문제이다.
이 스포츠에서의 승리는 각 국가의 이익과 직결된다. 비록 운동 경기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정치와 경제에까지 연계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완전한 승리나 온전한 심판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심판이 자국이나 개인에게 유리하도록 판정하는 것이 많았다. 이번에도 한국의 레슬링 경기 판정에 그러한 경향이 있는 셈이다. 승리를 갈구하는 심정은 누구에게나 강렬하다. 대한민국과 온두라스의  8강전이 끝나자 대한민국의 핵심 멤버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러한 울음은 승리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영국 육상의 장거리 스타 모 패라는 남자 10,000미터 경기 도중에 넘어지고도 금메달을 땄다. 여기 적는 것은 필자가 시청한 것만을 적을 수밖에 없다. 승리와 관계된 것은 이번 올림픽의 모든 경기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 승리에 있어서 영원한 것을 사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도서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였다. 이 믿음은 승리에 대한 믿음이며 영원에 대한 확신이다. 이렇게 영원히 승리를 보장해 주는 근원이 있다.
첫째, 주 여호와의 승리이다. 성경은 출발부터 경기이며 싸움이다. 인간 아담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이것이 하나님 여호와의 실패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의 한 과정일까? 모든 시대에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 시대까지 전쟁이 있었다. 구약성경 특히 마무리 부분인 학개와 스갸랴와 말라기에서 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승리하는 만군의 주 여호와로 정리하고 있다.
둘째, 주 십자가의 승리이다.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는 패배자인가? 부활의 승리가 없다면 사망에 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낙원을 말씀하시니 그것이 영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셋째, 사단과의 승리이다. 욥기서에도 사단은 주 여호와에 의해서 부려지는 종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12장에 하나님의 군사들이 큰 용이며 옛 뱀인 마귀를 내어 쫓았다. 이 모두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긴 영원한 승리다.
넷째, 교회의 승리이다. 교회승리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며 핵심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교회의 승리가 하늘의 영원한 승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역사의 최종적인 승리이다. 교회의 역사적인 승리를 일곱 교회를 통해 주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다. 그 약속대로 21세기의 교회는 승리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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