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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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25 11: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알파고식 성경공부 소개


알파고는 2016년 바둑을 통하여 전 세계에 소개된 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의 위력은 인간과의 경기를 통하여 드러났다. 그 위력은 시간과 공간으로 동반되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과 함께 존재한다. 인간은 이 시간과 그 시간 등에 여기와 거기 등에 있다. 이런 가운데 인간의 최대 약점은 시간과 공간에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그 약한 점은 시간에 묶이고 공간의 제약에 존재하는 것이다. 땅 위의 인간은 시간의 1초도 조절할 수 없고 한 발자국도 뛰어 넘어갈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삶에 부딪히면서 마음의 쉼을 갈구하고 더 나아가 종교를 찾기도 한다.
진정한 종교는 그 말 자체로 최고의 교육이다. 종교에 깨닫고 느껴서 결단하는 지정의가 없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한국교회는 기도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 점이 바로 이 주제로 문제를 제기하는 글의 목적이다. 이렇게 기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기도를 부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도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진정한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 예배의 중요한 요소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 등이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등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는 근본적으로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연구나 성경공부에 중심을 맞추어 본다. 인본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성경공부의 어려움이다. 우리의 문화 속에 공부라 하면 어려워서 하기 싫어지는 사상이 배어 있다. 어려우므로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미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잠을 줄이고 때로 굶어가면서까지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알파고식 성경공부’라는 하나의 제의를 던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고 많은 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방법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질이나 의미 속에 대안이 있다.
위의 시간과 공간에서 시간은 상대적으로 뇌의 좌반구에 더 밀접하고, 공간은 우반구에 더 가깝게 연결된다. 이렇게 하여 성경에 연결해 보면 인간의 두뇌와 성경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경을 주신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를 중심으로, 그리고 신약성경은 헬라어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이 인간에게 연결되면, 자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연결된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 등과도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알파고식 성경공부는 인간의 두뇌와 관계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에 다니엘의 뇌 속의 이상(visions)을 말씀하고 있다. 이 뇌의 큰 특징은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다. 성경에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구약성경의 세 구성 곧 역사서와 시가서와 선지서 등과도 관계있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와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다섯 구성과도 관계있다(박용기,성경개론 참조). 이 시점에서 세 가지를 열거하고 끝맺어야 한다.
첫째, 구약성경은 상대적으로 우뇌에 더 밀접한가?
둘째, 신약성경은 상대적으로 좌뇌에 더 밀접한가?
셋째, 신학의 생명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결에 있지 않은가?
인간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좌뇌와 우뇌가 잘 조화되어 협력하는 때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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