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2-11-09 20: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安全한 영혼


시간 앞에서의 인간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날아가 버린다. 이것은 생로병사와 같은 논리와 잘 부합된다. 인간의 본질이나 뿌리가 영혼에 있음을 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22년 10월 29일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비통함으로 아우성이다. 생명의 아쉬움에 대한 탄성이다. 그 와중에 북한은 남한으로 미사일을 쏘았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상황 인식을 통하여, 그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음이 더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다.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한 나라의 정치적 판도를 바꾸어 놓을 만큼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가져다주었다. 온 나라가 슬픔에 휩싸일 정도의 대참사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인 방향 모색의 통로로 삼으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권의 각도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비난 일변도의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태수습이나 유가족 위로와 진정한 보상 등과 같은 것에 대하여, 대안이나 묘안이 없음에 있다. 큰 아픔이 다른 상처나 여러 방면의 고통으로 도미노(domino)식으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 “사후 약방문(After death, the doctor)”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Lock the stable door when the horse is stolen)”와 같은 속담은 특히 안전사고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일단 안전사고가 있으면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00년도 안 되는 역사 속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고 있다. 1950년의 6.25는 그 중심의 자리에 차지하고 있다. 산전수전을 통하여 진정한 안전을 추구하는 것도 큰 지혜가 아닐까? “안전할 수 있는 길은 결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The way to be safe is never to feel secure)”와 같은 속담을 제시하면서, 안전한 영혼의 상태나 성질 등을 세 가지로만 간단히 내세우고자 한다.
첫째, 영혼의 주인에게 있다. “내 새끼”나 “내 자식” 등과 같이 소유심의 강렬한 표현은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나 곤궁에 처하지 않으면 인간의 본질이나 정체성에는 무관심할 수 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는 이론적으로 잘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실천적으로 진정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혼에 있지 않을까? 소속감은 사람들에게 큰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참다운 안전지대에 속해 있다는 확신과 확증은 참으로 중요하다. 인간은 이 땅에 속하지 않았음을 대개 인정한다. 인간 영혼의 주인은 어디에 있나? 바로 성경에서 확인하여 확증할 수 있다.
둘째,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은 땅 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목숨은 목으로 숨을 쉬는 자신이다. 인간 자신은 발로 이 땅을 딛고 있지만, 그 머리는 하늘과 연결되어 있음이다. 이 하늘은 동양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에서의 하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하늘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할 때에 바로 그 하늘이다. 인간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면 해와 달과 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영혼으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지 않겠는가?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지 않았던가?
셋째, 혼(魂)나도 영혼으로 있다. 이 혼은 인간이 힘을 쓸 때 크게 작용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이 나가면, 멍한 상태나 정신이 없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혼이 나갈 정도의 큰 슬픔에 젖었어도, 인간의 영혼은 영혼의 주(Lord)를 찬송할 수 있다. 인간 자신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활동의 근본이나 동인(動因)을 파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지정의(知情意)는 인격의 요소들이다. 이 의지 앞에 자유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몸과 함께 가다
66권에서 관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