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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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7-05 09: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世界의 進路


세계(世界)는 매우 광활하고 방대하다. 누구나 세계의 앞날 곧 진로(進路)에 큰 관심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두 생존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전쟁은 유사(有史)의 이래로 지금 21세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인류는,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코로나라는 병마(病魔)와 다투고 있다. 밀레니엄(millennium)에 대한 감동과 감탄이 약 23년 전에 전 세계를 흔들어 놓지 않았던가? 세월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흘러 2023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로 된다는 뜻이다. 또한 현재에서 미래로 밀려 나간다는 것이다. 중국의 항공모함은 자주 대만 가까이에 접근하여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1950년에 전쟁을 치르고, 아직도 평화협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23년에 접어들어 북한은 벌써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위험은 모든 개인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인류는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위험에 처해 있다. 인간을 기본으로 삼아 공간과 함께 시간까지 포함하여 세 가지로만 세계의 진로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세 가지는 바로 세계사적인 측면이다.

첫째, 생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21세기에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약육강식은 짐승세계의 기본적인 질서 유지 방식이다. 정보 자체가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아졌다. 또 정보를 전달해 주는 매체도 빨라졌고 다양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화나 세계화를 가속화시켰다. 시간적으로는 기존의 정보가 있다. 거기에 새로운 정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첨가된다. 이 정보는 인간과 시간과 공간과 함께 늘 동반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접하여 울고 웃기도 한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해 한다. 이런 추구에 발맞추어 2022년 연말에는 챗쥐피티(ChatGPT)가 등장하였다. 알파고의 출현으로부터 만 6년이 지나서 이러한 초(超)거대 AI시대로 접어들었다. 21세기를 정보사회라고도 한다. 그것은 많은 정보가 빠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 삶의 전 영역에 깊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 정보는 인간과 시간과 공간과 함께 늘 동반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바로 이 정보와 아주 밀접하다. ‘인공(人工)’에서 ‘人’이나 ‘工’은 모두 사람을 가리킨다. 인공지능은 그 본질에서 인간을 결코 제외시킬 수 없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半導體)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다. 이것은 정보전쟁을 가져오기까지 하였다. 2022년에도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정탐을 시도하였다. 주로 경쟁 상대국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 경쟁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둘째,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삼으면, 세계는 오대양 육대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은 국제화나 세계화와 매우 밀접하다. 하나의 세계는 국가 간에 서로 주고받으면서(give and take) 같이 가고 있다. 하나의 세계임을 내세우면서 개최하고자 준비해 온 2020년 도쿄올림픽은 연기되었다. 온 세계는 매우 심각하게 서로 경계하며 긴장하여 왔다. 특히 후쿠시마 방류를 세계는 함께 바라보고 있다. 교류에서 문화예술과 체육 등은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특히 문화예술과 스포츠 방면에서 세계의 교류는 많이 증가되었다.

셋째, 시대의 변천이 빨라지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옛것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금은 자고 일어나서 변화한 것을 보는 것은 일상사이다. ‘세월유수(歲月流水)’에는 시간의 빠름과 동시에 그 힘이 묻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힘은 바로 역사의 힘이다. 현재의 힘은 과거에 노력한 것의 결과이다. 이러한 힘은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삶의 경쟁력이나 국가경쟁력에 모두 적용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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