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2–23 개역성경)
심포지엄(Symposium), 오케스트라(Orchestra), 드라마(Drama), 필로소피(Philosophy: 철학), 아카데미(Academy), 데모(Demo, δῆμοc(demos)), 뮤직(Music), 미국 유명한 스포츠용품 브랜드명 000(니케(Νiκη): 승리의 여신) 등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오늘날 학술, 문화, 정치, 예술 전반에서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러한 어휘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왔다. 그리스인! 그들의 개념과 가치관 즉 토론, 공동체, 합리성, 예술성 등이 현대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들의 영향력은 그리스의 독특한 국가 형태인 도시국가 폴리스(Polis)가 한몫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럽 문명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로 가보려 한다.
아르카익 시대, 그리스 건축의 기초가 세워지다
그리스는 암흑기를 지나 아르카익 시대(Archaic Period, 기원전 약 800년~480년)를 맞이했다. ‘아르카익(Archaic)’은 ‘옛것’, ‘초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세련되었다기보다는 다소 투박한 아르카익 시대는 고대 그리스 건축의 기초가 본격적으로 확립되는 시기였다. 초기에는 목조 건축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대리석을 사용한 건축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인들은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의 가장 높은 언덕, 즉 도심의 중심부인 아크로폴리스(Akropolis)에 웅장한 신전과 성채(城砦)를 세웠고, 신전을 바라볼 수 있는 비교적 낮은 평지 아고라(Agora, ἀγορx)는 공공의 광장, 시장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폴리스 사회의 발전은 대중을 기반으로 하여 가속화되었으며, 과거 일부 특권층만 사용하던 상형문자 대신, 표음문자인 그리스 알파벳이 등장하고 이것이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 폴리스로 퍼지면서 의사소통과 기록문화가 널리 퍼졌다. 산악지형이 많은 그리스에서는 통일국가의 형성이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귀족층, 상인층, 농민층 등 다양한 세력이 등장하면서 소규모 공동체로서의 폴리스가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 폴리스는 귀족뿐 아니라 재산의 증가로 신흥 상인과 농민이 주축이 된 공동체적 도시국가였다. 이러한 것은 기원전 7세기경에는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상인과 농민이 약진하면서 도시가 성장해 국가적 단위를 이루는 현상, 즉 고대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르카익 시대인 기원전 776년에는 고대 올림픽이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 올림픽은 제우스 신을 기리기 위한 종교적 제전(祭典)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각 도시국가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던 범(汎) 그리스 경기였다. 고대 올림픽은 본래 신화적 기원을 가진 제우스 신에게 바쳐지는 종교 의식이었으며, 그리스인들은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을 통해 제사, 연설, 운동 경기 등을 진행하면서 문화적 교류와 경쟁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폴리스 간 결속과 정체성이 강화되었다. 그리스 폴리스들은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공통된 언어와 종교를 바탕으로 강한 동족 의식을 유지하며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생활하였다.
그리스 신전은 종교, 철학에서의 기하학, 미학이
집약된 구조물이다
폴리스 사회가 상업을 기반으로 세속화되면서, 과거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종교는 점차 사회적·건축적으로 독립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 종교 의식 또한 일부 특권층만 참여하였던 폐쇄적 형태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열린 형태로 변화했으며, 이를 수용하기 위해 예배 공간은 사방이 개방된 야외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신전 건축물이 폴리스 곳곳에 세워졌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철학에서 비롯된 기하학과 조화의 미학이 집약된 구조물이었다. 그리스 아르카익 시대부터 고전기까지 도시국가에 세워진 신전은 비례, 대칭, 균형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따랐으며, 기하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신전은 신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과 도시의 재산을 보관하는 보물창고 역할을 했다. 신전 전체 구조가 하나의 조각품처럼 건축되었으며, 예술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신전을 동서 방향으로 세웠다. 왜냐하면, 동쪽은 해가 뜨는 생명의 신성한 공간이고, 서쪽은 해가 지는 죽음의 공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동쪽 전면에 제단을 만들어 제례 의식을 치렀다. 이처럼 동서 방향을 중시하는 그리스 신전 건축 양식이 중세 이전까지는 기독교 건축 양식에도 적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신전은 지배계층이 주도하는 폴리스의 핵심적인 성역이었으며, 정치적·종교적 권위가 집중된 장소이기도 했다. 아테네 해안가에 건설된 포세이돈 신전 같은 것은 캄캄한 멀고 먼 바다에서 하얀 대리석 기둥으로 만든 신전을 바라보면서 신을 의지하는, 종교심을 일으키는 동시에 항구로 안전하게 입항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대 역할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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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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