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3-10-11 09: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상해 ‘인성학교’와 민족 교육 운동(2)

banner


지난 호에 이어 상해 ‘인성학교’와 민족 교육 운동의 관계를 서술하고자 한다. 인성학교 위치는 중국 상해시 노만국 마당로 협성리 1호였다. 인성학교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의 한을 안은 채 상해로 건너온 조선 사람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던 곳이었다. 인성학교는 1916년 9월 27일 설립된 상해 한인 기독교 소학교를 계승한 것이다. 인성학교는 1917년 2월 정식 초등학교로 출범했으며, 조선 사람 간부 여운형(呂運亨)이 설립한 조선인 아동 초등학교 기관이었다.

당시 인성학교는 교육 이념과 내용에서도 설립 이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상해에 잇는 우리 사회에는 정치 운동의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히 잇슬뿐아니라 조국을 더나 다른 나라 땅에서 생장하는 어린 학생들도 만히 잇다 이 어린 학생이 모혀 공부하는 곳은 인성학교인데 이 인성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을 근본으로 하며 그 외의 상해에 잇스면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을 망라하야 조직한 소년회는 지덕체삼육과 밋 공부에 열심하는 결심을 고취하며 따라서 일후 사회공헌의 훈련을 하기로 주지를 삼고 지금부터 다섯해 전에 설립되야 어린 학생의 수양과 인격 양성의 큰 공효를 내엿든바”... 이처럼 상해 인성학교는 ‘조선혼과 ‘지덕체’를 강조하였다. 상해 인성학교는 단순히 임정 시기의 소학교 교육 기관을 넘어, 임정기에 민족 독립운동의 정신을 드러내는 교육기관이었다. 1924년 3월 1일 인성학교 학생들은 교민 거주지를 중심으로 만세 행렬과 교내 기념식을 하고, 독립군을 주제로 한 연극을 펼쳐 상해 동포들의 감회를 새롭게 했다.

인성학교의 교육 이념과 내용은 임정의 교육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반영한다. 임시정부의 교육 문화정책은 두 가지 면에서 검토되어야 하는데 그 하나는 국내에서 일제 식민정책이 강화되어 가자 민족교육과 문화정책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국가의 광복을 이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1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근대 의식과 근대 문화가 크게 성장하였는데 구한말 개화기 이래 성취하려던 민족의 전통문화를 근대 민족 문화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여 근대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인성학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인성학교의 기본 방침에 따라 교과 내용도 그에 합당한 방안을 실시하고 있었다. 교과 내용은 한국 내의 보통학교 과정을 기존으로 하고 교과목은 국어, 국사, 본국 지리에 치중하고 그 외 한문, 산술, 이과, 수공 등을 가르쳤는데 인성학교는 한글을 가르쳐주는 것이 큰 교육 목표였기에 일본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중국어, 영어 등의 외국어는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 인성학교가 소학교였기에 중국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교과목을 모두 가르치지 못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동교 졸업생의 중국 중등학교 진학을 위하여 수업연한 5년을 6년으로 1년간 연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학습의 정도가 미치지 못한 자나 한국으로부터 유학 오는 학생 중 어학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하여 보습과도 설치·운영하였다. 이처럼 인성학교는 교과목과 교수 방법에 있어서도 민족성의 고취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인성학교의 기본 방침에 따라 교과 내용도 그에 합당한 방안을 실시하고 있었으니, 인성학교 졸업생은 민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차후 민족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임정 기간에 상해의 한인 단체들은 인성학교 설립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학교 설립, 의무 교육 실시, 교과서 편찬 등을 교육의 기본 방침으로 정하고 민족 교육 운동을 시도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상해 인성학교는 상해 거주 한인 자녀 아동들에게 ‘조선혼’ ‘민족혼’을 키워주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하면서 민족 교육 운동에 역점을 두었다. 인성학교의 교장과 교원들이 독립운동가들이 많았고, 민족 교육을 받은 인성학교 출신들이 이후 독립운동에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고, 상해 인성학교의 교육 방침과 이념이 이후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교육 정책을 정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사실을 통해, 인성학교는 한국 근대사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교육 기관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조선혼’을 강조한 민족 교육 운동의 산실임을 알게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나사렛 예수(I)
오병이어 기적(奇蹟)과 나사렛 예수의 정체(正體)(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