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09-06-30 17:3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른성경과 개역성경 무엇이 다른가?(4)

4. 바른 번역


바른 성경은 개역과 개역개정이 잘못한 문제들을 원문을 통해서 발견하고 교정하며 이해시키도록 최대한 노력한 번역이다. 이제까지 가져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적해 본다.


1) 잘못된 역사적 사실/문화적 배경

(1) 열왕기하 23:29 

“이집트 왕 바로 느고가 아시리아 왕에게 가려고”(바른 성경)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개역 성경)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개역개정 4판)


주전 609년에 일어난 사실 중 하나인데 이집트 왕 바로 느고가 바빌로니아를 대항하고자 아시리아를 지원하려고 아시리아 왕에게 간 것이다. 역사적인 설이 있기 때문에 “알”(에게)을 “에게” 혹은 “위하여”라고 보아야지 개역이나, 개역개정처럼 “치고자 하여”라고 번역함으로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2) 아모스 9:9 

“보아라, 내가 명하여 이스라엘 집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도록 하되, 체로 흔들듯 할 것이니, 돌멩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바른성경 )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개역성경)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개역개정 4판)


이것은 체질하는 내용과 체로르(rwrx, 돌멩이)라는 단어를 “알갱이”로 잘못 번역하여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에 내리는 여호와의 심판은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죄인들을 체로 체시는 데 이들은 마치 돌맹이가 체에 남듯이 남을 것이다. 이 체에는 불순물만 걸린다. 예를 들어 돌멩이 같이 큰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은 불순물이 체를 빠져나가고 알갱이가 남은 것처럼 반대로 해석하였다. 하나님은 지금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3) 에스더 2:6

“그도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혀 왔다.”(바른성경)
“예루살렘에서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개역성경)
“예루살렘에서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개역개정 4판)


여기서 유다왕 여고냐는 여호야긴을 말한다(대상 3:16). 유다왕 여호야긴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가 될 때는 주전 597년이었다(왕하 24:10-17). 모르드게는 이보다 112년 후인 아하수에로 왕 때, 곧 주전 485-465년에 수산에서 관리가 되었다. 따라서 모르드게가 유다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다고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그”는 모르드게가 아니라 5절 마지막에 언급된 모르드게의 조상 “기스”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개역 성경과 개역 개정의 번역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번역상 문법적인 오류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모르드개라는 이름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바른 성경처럼 잡혀온 사람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아야 한다.

2) 잘못된 번역된 지역 이름

(1) 열왕기하 25:6 

“리블라에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로”(바른성경)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개역성경)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개역개정 4판)

개역과 개정은 립나와 리블라를 여러 번 혼동하고 있다. 립나는 가나안 땅에 있는 지명이며(민 33:20, 21; 수 10:29, 31, 32, 39; 12:15; 15:42; 21:13; 왕하 8:22; 19:8; 23:31; 24:18; 대상 6:57; 대하 21:10; 사37:8; 렘 52:1), 리블라는 하맛 땅에 있는 지명이다(민 34:11; 왕하 23:33; 25:6, 20, 21; 렘 39:5, 6; 52:9, 10, 26, 27; 겔 6:14). 시드기야는 하맛 땅 리블라로 압송되어 갔다.

(2) 민수기 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친 광야에 도착하여”(바른성경)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개역성경)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개정 4판)
지도에 보면 신(i/ys) 광야와 친(/x)광야는 다른 곳임을 알 수 있다. 이곳들은 히브리어로도 분명히 단어가 다르다. 그러나 영역본을 대본으로 쓴 개역 성경은 이러한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출 17장과 민 20장의 사건에 혼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성경 자체도 분명히 이곳이 다른 곳이라는 것을 민수기 33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12절은 출 17장이 말하는 신 광야이고, 36절은 민수기 20장이 말하는 친 광야이다. 따라서 이 구분을 정확하게 해 주어야 출애굽기 여정에 대한 바른 생각을 주며, 출 17장과 민 20장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장소를 다르게 언급한 곳들도 다 고쳐야 한다(민 13:21; 20:1; 27:14; 33:36; 34:3; 신 32:51; 수 15:1).

(3) 창세기 12:9 

“그 후 아브람은 점점 이동하여 네게브로 갔다”(바른성경)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개역성경)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개역개정 4판)

꼭 지역 표기가 잘못 되었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한글로 번역한 곳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성지에 실제로 살면서 느낀 사람들이나 지리적 연구를 통해서 고유명사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 있다. 네게브나 쉐펠라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스라엘 남쪽 지역에는 네게브라는 사막이 있다. 이곳을 히브리어 네게브(bgn)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남방”이라고 지칭하면 그 정확한 지역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막연한 남방이 아니라 고유명사, 네게브라고 번역해야 옳다.

(4) 오바댜 1:19 

“쉐펠라 사람들은”(바른성경)
“평지 사람들은”(개역성경)
“네겝...평지와”(개역개정 4판)

쉐펠라는 동서로는 블레셋 해안 평야로부터 유대 산악 지대 사이의 고도가 해발 100-400m에 이르는 경사진 평원을 일컫는 지명이다. 이 지역에 아세가, 소고, 아둘람, 조라, 아얄론, 마래샤, 라기스 등의 중요한 도시가 있으며, 동서로 아얄론 골짜기, 소렉 골짜기, 엘라 골짜기, 구브린 골짜기 등이 있어서 남북으로 통행을 가로 막고 있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여러 과수목을 재배하여 많은 도시들이 발달하고, 요새화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대상 27:28). 또한 갈멜 지역에도 이스르엘 평야와 악고 평야 사이에 쉐펠라가 있다.  개역성경은 이곳을 보통 명사“평지”라고 번역하고 있어서 과연 어디에 있는 평지인지 알 수가 없다. 쉐펠라는 고유한 지명이다. 따라서 “평원”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되고 쉐펠라라고 명기해야 한다. 그리고 개역개정은 오바댜 1:19에서 남방은 네겝으로 하고 있으나, 쉐펠라는 여전히 “평지”라고 번역하고 있어서 이것은 상의는 양복, 하의는 한복을 입은 것과 같은 표현이다.


3) 잘못된 번역

(1) 여호수아 22:10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지파의 절반이”(바른성경)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개역성경)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개역개정 4판)

개역성경이 원문을 보고 번역하지 않았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원문에는 갓 자손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은 비평 각주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100년 정도 못보고 지나쳤다는 것은 개역개정 역시 원문을 보고 번역한 것이 아니라, 개역성경을 단어 정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 정도를 교정한 것이 한 눈에 드러나는 예이다.

(2) 신명기 18:10-11

“네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주술하는 자나 술객이나 /주문을 외우거나 신접한 자나 영매나 혼을 부르는 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바른 성경)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마라.”(개역 성경)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자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서 용납하지 마라 ”(개역개정 4판)

이 부분은 개역성경의 오역과 비일관성의 대표적인 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코셈 케사밈(<ymsq <sq)은 주로 “점쟁이”(One who practices divination)을 의미하는데 개정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메오넨(/nwum)은 “길흉을 말하는 자”(One who tells fortunes)이고, “메나헤스(vjnm)는 “주술하는 자” (interprets omens)이나, 개역과 개정은 “요술하는 자”로 번역하여 마치 마술가를 말하는 어감을 준다. 메카세프([vkm, 마법사, sorcerer)는 마법사와 같은 술객을 말하지, 무당은 아니다. 무당 호베르 하바르(rbj rbj)는 주로 “주문을 외우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개역과 개정은 “진언자”는 사전에도 안 나타나며 의미도 모호하다. 쇼엘 오브(bwv lav)는 “신접자”를 의미하여 일치하며, “잇데오니”(ynudy)는 “영매”(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의사가 통하여,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람. 곧 무당이나 박수가 이에 해당한다)로 남자와 여자를 다 포함한다. 그런데 개역과 개정은 남자 무당인 “박수”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제한하였다. 레위기 20:27에 보면,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이라고 개역은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개역 개정은 이를 인정하여 박수무당이 되거든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잇데오니는 남자와 여자를 다 포함한 “영매”가 되어야 한다. “도레시 엘 함메팀”(<ytmh-la vrd)은 “죽은자를 찾거나 죽은 자에게 묻는자, 곧“혼을 부르는 자”이다. 물론 개역과 개정은“초혼자”라고 번역했으나 이는 사전에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이며, 풀어쓰는 것이 적절하다. 이상의 어휘들을 살펴보면 개역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3) 레위기 19:31

“너희는 신접한 자들을 따라가지 말며 영매를 좇아가...”(바른성경)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개역성경)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개역개정 4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개역은 “오브”는 “신접자”, “이데오니”는 “영매”라는 개념이다. 개정역시 레위기 20:6, 27, 에는 “박수무당”(남자여자)를 포함하여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정은 본문을 체계적으로 다 찾지 않고 이 본문에서는 박수(남자무당)라고 번역하여 단어에 대한 조사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4) 창세기 33:10,11

"제가 형님께 은총을 받았다면 부디 선물을 제 손에서 받아 주십시오. .... 부디 제가 형님께 가져온 제 복을 받으십시오.” (바른성경)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개역성경)

개역성경에서 10절과 11절에서 다같이 쓰고 있는 “나의 예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민하티"(ytjnm)와 "브라카티"(ytkrb)이다. 여기서 "민하티"(ytjnm)는 “예물”이라는 의미보다는 “선물” (present, gift)이 더 적당한 말이고 "브라카티"(ytkrb)도 “예물”과는 거리가 멀고 문자대로 “나의 복”이라는 의미이다. 에서로부터 복을 빼앗은 야곱이 이제 에서에게 “내 복”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5) 에스더 2:15

“모르드게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신의 딸로 삼  은 에스더 ...” (바른성경)
“모르드게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같이 양  육하는 에스더가...” (개역성경)

히브리어구 “라카흐-로 르밧”(tbl wl-jql)이라는 말은 “딸같이 양육하다”는 말이 아니라 “딸로 삼았다”는 뜻이다. 곧 입양을 의미한다. 2:7도 마찬가지이다.

(5) 이사야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 ...” (개역성경)
“내가 선택한 금식은 불의의 사슬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 ...”

히브리어 원문은 바하르(rjb, 선택하다)로 읽고 있으며 “기뻐하다”는 말이 없다. 서양의 모든 성경들도 본문을 “기뼈하다”로 번역하고 있지 않다. 개역성경에서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금식을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회 정의를 무시한 체 행하는 금식이라는 경건행위를 오히려 역겨워 하시고, 오히려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경건 생활을 선택하시겠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6) 사사기 14:20

“삼손의 아내는 그의 친구에게 주어졌는데 그는 삼손의 결혼식 들러리였다.” (바른성경)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 바 되었다”(개역성경)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개역개정)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들러리로 왔던 한 친구의 아내가 되었다.”(새번역)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메레아(hurm)와 레아(hur)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쓰고 있다. 레아(hur)는 보통친구가 아닌 특별한 친구(the best man, ESV)로서 결혼식 들러리로 선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에서 “동무” “친구”라는 말은 오역이다. 새번역은 NIV와 함께 “들러리”(the friend who had  attended him at the wedding)라고 옳게 번역하고 있다.


4) 잘못된 단어 선택

위의 문제와 연관되는 문제이다. 개역개정이 개역 성경의 단어들을 일치시키고 현대에 맞는 단어들로 고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본문이 있다. 한 가지 예이다.

(1) 신명기 10:3 

“그래서 내가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고”(바른성경)
“내가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고”(개역성경)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개역개정 4판)

오경에서 싯딤(시타, acacia)이라는 나무는 아카시아 종으로 추정된다. 번역시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쓰거나 의미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주는 것이 번역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에서는 많은 곳에서는 “조각목”(출 25-27장 30, 35, 36-38장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없음)이라고 하고 있고, 신명기에서는 음역하여 사용하고 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조각목으로 다 변경하였지만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소리 나는 발음도 아니고, 의미로 한 것도 아니다. 개역개정의 작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이라고 볼 수 있다.

5) 잘못된 의미

(1) 느헤미야 1:3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바른 성경)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개역 성경)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개역개정 4판)


학개시대는 스룹바벨 성전을 회복하였다(주전 516년, 에스라 6:15). 이 때 같이 동역한 사람들은 스가랴였다. 그리고 에스라(주전 458년) 느헤미야 시대(주전 445년)에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다(느헤미야 6:15). 성이라 하면, 성 전체를 의미하거나, 그 안을 말한다. 성벽은 그 둘레에 쌓아 놓은 돌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단어는 호마(hmj)라는 말이다. 성내나, 성전체 그리고 마을 의미하는 단어로는 “이르”등 다른 단어들이 있다. 또한 이 단어가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의 사역 전체가 “성벽재건”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개역에서도 12장 27절에서는 “성곽”, 3:15, 27에서는 “성벽”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일관성이 없는 번역이다.

(2) 에스겔 4:2

“담, 공격용경사로, 성 부수는 무기”(바른 성경)
“운제, 토둔, 공성퇴”(개역 성경)
“사다리, 흙으로 언덕, 공성퇴”(개역개정 4판)


개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원문 단어의 개념이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은 것이다. 예를들면 에스겔 4장의 다예크(qyd)는 “담” 혹은 “포위 담”, 솔렐라(hlls)는 “공격경사로”, 카르(rk, battering ram)는 “성 부수는 무기”라는 의미이다. 개역개정은 더 문제가 있다. 운제가 바로 한자로 “사다리”라는 말인데, 이것은 한글로 바꾼데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개정이다. 원문을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거나 읽지 않고 한자를 한글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3) 예레미야 31:36(같은 경우, 33:25).

“내 앞에서 폐기된다면”(바른 성경)
“내 앞에서 폐할찐대...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개역성경)
“내 앞에서 폐할진대”(개역개정 4판)


“할진대”라는 표현은 네이버 한글사전에서는 “앞 절의 일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뒤 절 일의 조건이나 이유, 근거로 삼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라고 정의하는데, 이 말은 앞 절이 “반드시 한다.”는 표현이다. 이 같은 경우나 “그대와 같이 건강할진대 무엇이 걱정되랴”라는 경우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즉 세상의 모든 규정과 법도가 폐한다면, 이스라엘도 멸망시킨다는 말로 이것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개역성경은 잘못 번역하여 반대의 개념을 주었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31:36에서는 잘못 번역하고, 33:25에서는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이라고 하여 바른 의미로 번역하고 있음으로 2번의 경우가 서로 맞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즉 한 가지는 잘못 번역한 것이 된다.

(4) 다니엘 33: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형상을 만들었는데...”(바른성경)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개역성경)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개역개정 4판)


히브리어 체렘(<lx)이라는 말은 꼭 신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석적으로 보아도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신을 만들었는지, 자신을 우상화시켰는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형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자유여신상?). 바른 성경은 3장을 “금 형상”이라고 번역했다.


6) 잘못된 단위

(1) 에스겔 40:11

“너비가 열 규빗”(바른성경)
“광이 십척이요”(개역성경)
“너비가 열 척이요”(개역개정 4판)


성경에서 길이 단위는 암마(hma)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데 이를 영역본에서는 규빗(Cubit)으로 번역하고 있다. 1 규빗은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함으로 대략 45센티미터를 의미한다. 창세기에서 6-7장에서는 개역도 암마(hma)라는 말을 쓰고 있어서 이 단위는 창세기 때부터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한글 번역에서는 규빗보다는 히브리어 암마(hma)를 음역해서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영어의 규빗이 이미 토착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대로 규빗으로 쓰기로 했다. 그러나 개역성경에서 척이라고 번역한 것은 개역자체 원리와도 모순된다. 1척은 30cm 정도이기 때문에 규빗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단어에 잘못된 번역은 30번 이상 에스겔에서 나타난다.

7) 잘못된 구절 번역/강조 용법에 대한 문법적 오류

(1) 시편 150:2

“그분을 찬양하며, 그 지극히 위대하심을 좇아 그분을 찬양하여라”(바른 성경)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개역성경)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개역개정 4판)

개역성경은 1절에 “하나님을”,“그를”,“여호와를”(6절)을 제외하고는 찬양의 대상을 제외시켰다. 따라서 2-5절까지의 번역이 엄격하게 본문과 다르다. 개역개정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바른 성경에서는 2절에서 빠진 “주를”,“그를”등을 제외하고는 (5절에도 한번) 모든 본문에서 찬양의 대상이 제대로 강조가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운율이나 강조점을 다 살려서 번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원문의 강조를 최대한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즉 원문에서는 2-5절까지는 각 절에 할루후(whwllh) 2번씩 8번 나타나고 1절은 하레루야(hy wllh), 하레루 엘(la-wllh), 그리고 6절에는 하레루야(hy-wllh)로 마무리 하고 있다.


8) 일관성 없는 해석

(1) 같은 단어

단어라는 것은 사전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그 뜻이 여러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 의미론적 범위(semantic range)가 설정되어야 한다. 그 의미가 원래 의미를 벗어나서 어떤 의미로도 해석될 때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바른 성경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러한 단어의 의미적 범위를 통일성을 가지려고 했다는 것이다.

1] 에스라 7:6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서기관으로서...”(바른성경)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개역성경)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개정4판)


히브리어로 소페르(rps)는“서기관”을 의미한다. 개역성경에서 왜 이 단어가“학사”, 개역 개정에서는“학자”라고 번역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소페르(rps)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책을 베끼거나 기록하는 사람이다.

2] 에스겔 3:17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 (바른성경)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개역성경)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개역개정 4판)


자하르(rhz)라는 단어는 “경고하다”(warn)는 의미이다. 따라서 “모르는 것을 깨우치다”라는 의미는 원래 단어의 핵심적인 면에서 멀다. 뿐만 아니라 에스겔 33장에서는 개역성경과 개역개정 모두 다 “경고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하여 같은 단어를 “의미론적 범위”에 해당 되지 않는 뜻을 제시함으로 번역상 일관성과 통일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성경 읽는데 혼돈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해석을 오도하고 있다.

3] 에스겔 6:9

“몹시 싫어할 것이며”(바른성경)
“스스로 한탄하리니”(개역성경)
“스스로 한탄하리니”(개역개정 4판)

쿠트(fwq)는 “몹시 싫어하다”,“혐오스럽게 여기다”라는 의미이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은 20:43과 36:31에서“스스로 미워하리라”,“스스로 밉게 보리라”라고 바르게 해석하고 있다. 3번 나타나는 단어의 의미를 한번은 잘못된 의미로 2번은 바른 의미로 서로 상충되게 번역하고 있다.
반면에 바른 성경은“창기, 기생, 창녀”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같은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단어의 경우는 차별하여 번역해야 원어의 의미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본다.

4] 출애굽기 7:3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바른성경)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개역성경)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개역개정 4판)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의미로 카사(hvq, 출 7:3), 하자크(qzh, 출 7:14) 그리고 카베드(dbk, 출 7:14)라는 어휘가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는 비슷한 의미이지만 히브리어는 전혀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히브리어의 원뜻을 살려서 번역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바른성경은 역자는 카사(hvq) 와 하자크(qzh) 는 “완고하다”는 의미로 혼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역은 출 7장에서 카사(hvq, 출 7:3), 하자크(qzh, 출 7:14) 그리고 카베드(dbk, 출 7:14)를“강퍅”,“강퍅”,“완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개역개정은 “완악”,“완악”,“완강”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른 성경에서는 “완고”, “완고”, “완강”으로 번역하고 있다.

5] 예레미야 44:4

“이 역겨운 일을”(바른성경)
“이 가증한 일을”(개역성경)
“이 가증한 일을”(개역개정 4판)


히브리어 토에바(hbuwt)는“역겹다”는 의미이다. 레위기 11장, 그리고 오경에서 많이 나타나며, 에스겔등 선지서에도 나타난다. 비슷한 의미로 명사형,“쉬쿠츠”(Jwqv, 혐오스러움)이라는 어휘 역시 32:34에 나타난다. 여기서 바른 성경은 이 두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차별화 시켰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가증한 물건”과 개역개정은 “가증한 물건들”이라는 복수형 정도로만 변경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원래의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번역하지 못했다. 또한 가증하다는 말 역시 1차적인 뜻은 사전에서, “가ː증-하다可憎 [형용사][여 불규칙] 괘씸하고 얄밉다. 밉살스럽다.”는 뜻으로 예를 들어,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가증한 일이다”라는 용례와 같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뜻을 고수함으로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같은 숙어

같은 표현은 같은 해석으로 해 주어야 오해가 없다. 개역성경은 이런 원문에 같은 표현을 무시하고 해석한 경우들이 있다. 개정 역시 다 개정하지 않은 것이 많다.

창세기 7:4

“...내가 밤낮 사십 일 동안...”(바른성경)
“...내가 사십 주야를”(개역성경)
“...내가 사십 주야를”(개역개정 4판)

히브리어로 아르바임 욤 베아르바임 라일라(hlyl <yubraw <wy <yubra,창 7:4, 12; 출 24:18; 34:28; 신 9:9, 11, 18; 10:10; 왕상 19:8)를 개역 성경은 “사십 일 사십 야”(출 24:18; 34:28), “사십 주야”(창 7:4, 12; 신 9:9, 11, 18; 10:10), 사십 주 사십 야(왕상 19:8)라고 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는데 이 같은 숙어는 번역을 통일하는 것이 적절하다. 개역개정은 “사십 주야”를 “사십 주 사십 ”를 신명기(신 9:9, 11, 18; 10:10)에서는 바꾸었는데, 창세기에서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3) 같은 구절과 표현

 요나 1:2; 3:2 

“그(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을 향하여 외쳐라”(바른성경)
“그것을 쳐서 외쳐라”, “일어나...그들에게 선포하라”(개역성경)
“그것을 향하여 외쳐라”“일어나...그들에게 선포하라”(개역개정 4판)

요나서 1:2; 3:2에서 보면 3장 2절은 후반부 “내가 네게 명한 바를”이라는 구절이 들어가지만, 원문에서는 앞의 단락 쿰 레크 엘 니느베 하이르 하게돌라 우케라 알레하 ( hldgh ryuh hwnyn-la 'l <wq
hylu arqw)라고 하여 문장이 동일하다. 따라서 “너는” 이라는 주어를 같이 넣든지, 해야 하며, “그 성 사람들”(알레하) 라고 하는 문장이 일치해야 하며, “그 성읍을 향하여 외치라”는 말과 같이 후반부가 동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은 단락의 일치를 전혀 시키고 있지 않다. 개역에서 단지 개역 개정으로 바뀐 것은 전치사 알(lu)을 “쳐서”또는“향하여” 정도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문의 구조를 충분히 살려서 번역하지 않은 것이 개역과 개역개정의 가장 큰 문제이다.

(4) 같은 발음

사무엘하 11:6 이하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헷사람 우리야를 내게 보내라.”(바른성경)
“기별하여 헷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개역성경)
“기별하여 헷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개역개정 4판)


이사야 8:2에 제사장 우리야(hyrwa)와 히브리어로 같다. 같은 이름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개역과 개정은 달리 음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다.

(5) 같은 본문-병행본문

1] 신명기 5:7 -십계명(출 20장 신 5장)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마라”(바른성경)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개역성경)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개역개정 4판)

원문에서의 명령법은 동일하다. 그러나 개역자체에만 보아도“너는”이라는 주어를 넣거나(출 20:3) 혹은 빼거나(신 5:7) 일관성이 없다. 바른 성경은 이에 반해서 원문을 대조하여 같은 병행 본문들은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2] 이사야 2장: 미가 4장

성경에서는 병행하는 본문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본문이 이사야 2장과 미가서 4장이다. 이 본문은 원문으로 다 비교해 보면 바른 성경이 얼마나 원문을 참조했는지 알 수 있다.

이사야 2:2; 미가 4:1

“마지막 날이 올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 꼭대기에 서고, 언덕들 위에 높아지며,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니,”(사 2:2 바른성경)
“마지막 날이 올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 꼭대기에 서고, 언덕들 위에 높아지며, 백성들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니,”(미가 4:1 바른성경)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사 2:2 개역성경)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    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가 4:1 개역성경)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개역개정 4판)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가 4:1 개역개정 4판)

이사야는 “모든 민족”(<ywgh-lk) 그리고 동사는 “모여들다, 몰려들다, 흐르다”(rhn)라는 의미를 빼고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병행 본문들은 바른성경은 원문을 일일이 대조하며 거의 일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개역은“이르러는”“산들의”,“굳게 서며”,“뛰어나고” 등 같은 문장을 변형을 주고 있다. 개역개정은 베햐야 베아하리트 하야밈 ( hyhw
<ymyh  tyrjah, 말일에 )를 “끝날에 이르러는”으로 바꿔 주었는데 이것은 개악이다. 그 외 사무엘하 22장: 시편 18편과 많은 병행본문 역시 원문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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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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