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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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6 04: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탄절을 맞는 자세


올해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날이다. 오랫동안 대망하던 세상의 구주는 오셨고 천지는 기쁨에 잠긴다. 이 날이 성탄절이다. 영어로는 성탄절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한다.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이다. 프랑스어로는 ‘노엘’(Noel), 독일어로는 ‘바이나흐스트페스트’(Weinachtsfest:신성한 축제의 밤이라는 뜻) 혹은 ‘바이나흐텐’(Weinachten)이라고 하며, 라틴어로는 ‘나탈리스’(Natalis), 이탈리아어로는 ‘나탈레’(Natale), 포르투칼어로는 ‘나탈’(Natal), 스페인어로는 ‘나티비다드’ (Natibidad)이다. 스코틀랜드 등에서는 ‘유울’(Yule)이라고 하며, 성탄 무렵을 “율타이드 시즌”(Yule-tide season)이라고 하여 서로 선물을 나누며 즐기는 것이 지구촌 풍습이 되었다. 금년 성탄절은 다음과 같은 일을 생각해 보고 싶다.

 1. 성탄절은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탄 날짜가 어찌하여 12월 25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때로는 성탄일을 1월 6일로 하는가 하면, 혹자는 3월 25일이 성탄일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3월 28일을 성탄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성탄절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를 확정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전혀 없다. 만일 그 날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영혼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다면 성경은 그것을 명기하였을 것이다. 성탄 날짜에 집착하는 무의미함을 위해 한 예를 들어보겠다.

[일찍이 교부 키프리안은 그의 243년의 작품 중에 성탄절의 날짜를 1월 6일이나 12월 25일이 아닌 3월 28일이라고 하는 한 주장을 소개하였다. 거기에는, 먼저 창조의 첫 날을 춘분으로 설정한다. 만물이 생명으로 깨어나고 하나님께서 똑 같이 나누심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더욱이 달(月)은(이틀 후에 창조 된) 만월로써 창조되고 그 창조의 첫 날은 3월 25일 일요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와 달은 만월이 되는 3월 28일 수요일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또한 해와 달의 싸이클을 응용하여 구약의 연대기적 데이터를 따라 4월12일 월요일을 출애굽의 유월절의 날짜라고 설정한 후 그는 출애굽과 성탄 사이의 간격을 같은 싸이클로 하였는데, (1) 출애굽으로부터 열왕들의 통치와 함께 포로 기까지의 기간을 995년으로 하고, (2) 70주로 정해진 다니엘9:24-27절까지의 해석에 의존하는데, 이 70주는 62주, 7주, 1주로 분류하고 이를 장차 있을 종말의 기간에 속한 것으로 한다. 그 7주는 49년인데 이는 성전 건축 기간을 의미하고, 62주는 434년인데 성전건축으로부터 메시아 탄생의 기간이 틀림없다고 한다. 그밖에 포로기 70년이 더 해 진다. 그렇게 하면 메시아의 탄생은 출애굽으로부터 1548년이 된다는 것이다. 또 유월절 어린 양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써 그분은 그 해의 유월절 때에 탄생해야 하셨는데 그러한 싸이클에 의하면 이는 그 해 3월 28일, 즉 태양을 창조하신 날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논증은 숫자의 상징을 터무니없이 적용함으로써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면, 62주를 434년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100을 빼면(이삭의 탄생 시 아브라함의 나이) 334 년이 남는다. 헬라어 300은 γ인데, 십자가의 상징이며, 34는 31+3, 즉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예수님의 나이에 무덤에서의 3일을 합한 수이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님과 태양 사이의 평행은 양력이 365¼일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지지된다고 한다. ¼일은 3 시간이며 이는 아직 해와 달이 없을 때의 첫 창조의 3일을 상징하는 한 편 무덤에서의 3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 등 ¼일이라는 숫자는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365일은 300+16+31+18을 의미하며, 300은 γ로써 십자가의 상징이며, 16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티헤리우스 통치의 햇수를 상징한다. 31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예수님의 나이이고, 18은 'Jesus'라는 글자가 가진 숫자이다. 그 밖에도 성탄일은 실제적으로 태양의 창조의 날과 같다고 하는 유사 논증들이 수다하다. 이런 추론에 의하여 이 논문의 저자는 성탄일을 3월 28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들은 무익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면서 주님을 환영하면 된다.

2. 진실한 회개로 성탄절을 맞이하자.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비하이시다. 마치 수백만 볼트짜리 전압선을 건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선을 넘어서서 멸망의 문을 열어젖힌 인류가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은 회개보다 더 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문 앞에 엎드린 죄’(창4:7:죄라는 용어가 성경 최초로 나옴)가 ‘하늘에 사무치는’(계18:5:죄라는 용어가 성경에 마지막으로 나옴) 과정이 인류역사의 행보이다. 지금 그 죄의 시계는 어느 지점을 가리키고 있을까? 잠수교가 위험수위에 육박하듯 하지는 않을까? 형식적인 신앙으로 머리 위에 걸린 심판의 불벼락을 피한 줄로 착각하고 있을 때는 이제 지났다. 성탄절을 기뻐하기에 앞서 통회하는 마음자리부터 준비하는 것이 순서이다. 지금은 저 성탄 당시의 유대주의 상황처럼 자기 목적을 위하여 그리스도라도 죽이려 하는 시대다. 기독교는 공신력을 잃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깊은 회개로 이번 성탄절을 맞자.

3. 이번 성탄절에 은혜를 많이 받고 또 나누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장이 마리아에게 한 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1:28)라고 한 대로 은혜를 받아야 하겠다. 죠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천지간에 은혜만큼 활동적인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 은혜가 동정녀 탄생을 성사시켰으며, 그 은혜가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하였고, 저 마게도냐 교회로 하여금 극한 가난 중에도 넘치도록 풍성한 연보를 하게 하였다. 성탄절은 실로 은혜의 계절이다. 사랑의 나눔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환영하는 성도들에게 이 은혜는 넘친다. 이번 성탄절에는 겸비한 심령창고에 하늘 은혜를 가득히 채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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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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