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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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7-29 16: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포커스/권(權)이 아닌 무(務)


교회도 성경의 원리에 입각해서 삼무(三務) 분립을 시행해야 한다.

  교회의 직위나 직무에는 권력과 세력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권(權)이란 명칭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권(權)은 오직 교회의 머리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말씀의 권세에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총회헌법에는 치리권, 강도권, 재정권, 재판권, 인사권 등의 직무에 남용되고 있다. 물론 권한과 직무의 원천은 하나님과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근거에 의해서 전제된 용어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거나 고착화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명명하는 것은 교황의 절대권위로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교회의 법과 교리에 의해서 백성들을 강압적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와 정치 즉 교황과 황제의 권력 싸움으로 비화(飛禍)되기도 했으며, 그 와중에서 치명타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종교개혁의 발발에 동기가 된 것도 이러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비성경적인 권력남용과 일인독재체제의 횡포에서 비롯되었다.

  1517년을 기점으로 종교개혁이 발흥한지 오백여년이 지났다. 신앙의 선배들은 목숨을 담보로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종교 세력과 투쟁했으며,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로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21C에 와서는 개혁사상과 정신이 퇴색하고 있다. 교회는 내용 보다는 외형적인 성장에 치우치고, 목회자는 진리탐구 보다는 목회의 주변적인 일에 집착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그 중에 한 가지는 교황과 유사한 개신교 목사의 권한에 있다.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 골격은 입법, 사법, 행정의 직무 분립에 있다. 대통령제라 할지라도 혼자서 모든 직무를 관장할 수 없으며 간섭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어떤 힘을 갖고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정치와 행정과 입법에 관여하거나 주도한다면 독재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헌법에는 민주주의 정치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독재적인 요소가 산재(散在)해 있다.
  목사는 당회장으로서의 교인들을 다스리는 치리권이 있고, 교회의 재정을 운영하는 제직회의 회장이 되며 말씀을 가르치는 강도(講道)권이 있다. 이러한 권한은 법령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므로 정당성이 있어 보이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비성경적인 부분이 있다. 교황에게 삼권(재판, 재정, 해석)이 집중되어 신(神)적 권위를 발휘하는 것처럼 개신교 목사에게도 치리(권징), 운영(재정), 설교(강단)의 삼권(三權)이 합취(合聚)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목사의 자질에 따라 독재자로 군림하거나 자신에게 신(神)적인 권위가 주어진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의 운영은 목사의 주도대로 집행되거나 목회자의 세습과 같은 파행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반위에 세워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신적인 권위가 부여된바 없으며, 누구도 교회를 독자적으로 주관해선 안 된다. 더욱이 교회는 소수의 이익이나 욕심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며, 어느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성도가 주인이 되면 다수의 횡포가 나타나고 목사가 주인이 되면 독재자가 된다. 교회에 주어진 권위는 목사의 권위가 아니라 말씀의 권위이다. 교회의 치리도 법적인 근거 보다는 말씀에 의한 사랑의 치리가 우선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정치 현실은 일반 정치와 유사하게 말씀 보다는 법에 치중해서 다스려지는 경향이 짙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서 직무가 주어지고, 그 직무는 다른 직무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자율적으로 봉사한다. 성경에는 가르치는 은사에 의한 목사의 직무(권사, 교사)와 다스리는 은사에 의한 장로의 직무 그리고 섬기는 은사에 의한 집사의 직무가 있다. 이 직무를 헌법에서는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로 항존직(恒存職)이라 칭한다. 이 직무는 권세와 권한을 내세우는 세도(勢道)의 자리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봉사직이다.

  성경적인 근거에서 교회의 직무를 정리하면, 성도들의 치리(권징)는 장로회에서(롬12:8), 재정운영은 집사회에서(행6:1~6), 말씀강론은 목사가(롬12:7, 행6:4, 엡4:11~12, 딤전3:1~2) 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로마서 12:4~8의 말씀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다르며, 그 은사를 시행하는 조직이 다르다. 특히 장로교회는 대의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체제로서 교회의 재단과 성도들을 다스리는 당회와 성도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는 공동의회 그리고 교회의 운영을 전담하는 제직회가 있다.

  교회는 위와 같은 직무와 기능을 은사와 조직에 따라 편성해서 운영함이 합당하다. 목사나 유력한 장로에게 권한이 집약되어짐으로서 권력의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교황은 전 세계 카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이 되어 삼권(재판권, 재정권, 강도권)에 의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개혁교회의 목회자들 역시 개교회의 회장이 되어 치리권, 운영권, 강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개혁은 말씀과 행정체제에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에 입각해서 성경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성경대로 하나님만을 증거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청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강론은 금물이다. 목회는 목회자의 생계수단이나 성공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뜻만이 전해져야 한다.

  이제 교회는 본분으로 돌아서야 한다. 교인들을 끌어 모으기 보다는 찾아오는 교인들에게 양질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하며, 성공적인 목회의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성경을 연구하는데 집착해야 한다. 또한 성도 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사람의 종노릇하는 도구로 전락시켜선 안 된다. 교회의 직분은 특수한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것이다. 목사는 주의 종임을 자처하면서 섬김을 받으려 해서도, 독주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내리신 은사는 동등하다. 어떤 은사가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가르치는 은사는 그 직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 담당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뿐이다. 특수한 직무나 사람 자체에게 신적인 권위가 있거나 어느 한 직무가 모든 것을 관장하거나 주관해서는 안 된다. 헌법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할 것이며,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 목사는 성경만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장로는 부지런히 교회와 성도를 살피며 목사의 직무유기를 견제(牽制)하고, 집사는 교회의 재정적인 운영에 심혈을 기율여야 한다.

  한국 교회의 체제개혁은 불가피한 과제이다. 성도들의 신앙의식과 수준이 상향되었기에 주먹구구식의 행정이나 음성적인 운영은 탈피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식과 참여도에 따라 발전하듯이 한국교회도 성도들의 의식개혁과 실천이 중요하다. 천박한 기복주의나 이기적인 개 교회주의에서 벗어나 진리만을 푯대삼아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삼권이 아닌 삼무를 분립해서 교회를 봉사하며 진리를 수호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미디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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