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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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02 10: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뉴스와 해설/퇴보하는 한국교회

말씀은 사라지고 의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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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의식화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이다. 초대교회 때만 하더라도 규정화된 예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가정이나 회당 또는 야외에 모여서 말씀을 강론하고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임이었다. 지금과 같은 예배형태나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예배시작을 알리는 강단의 종소리도 없었고, ‘앉고-일어나’는 의식도 없었으며, 연보함을 돌리는 사례도 없었고, 목사가 가운을 입고 등장하거나 성가대나 현금위원이 가운을 입고 참석한 사례도 없었다. 더욱이 헌금봉투를 일일이 호명하며 축복기도를 하는 사례도 전무후무했다. 특히 어떤 날을 지정하여 특별한 의식이나 예전에 따라 예배를 드린 사례는 더욱 없다.

바울은 이날을 저 날보다 귀하게 여기지 말 것이며, 모든 날은 주님의 날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날마다 영적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피력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특별한 절기를 강조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식을 가미하여 신성화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부활절, 강림절, 성탄절, 추수감사절 등의 절기가 공식화되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24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드려진 2011년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의, 의식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몇가지 장면-집례자 목사가 단상에서 청중을 향해서 물을 뿌리며, 부활초 점화를 시작으로 십자가와 불붙은 부활초를 들고 입장하는 행렬, 무엇이 거룩의 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운을 걸치고 의식에 맞추어 집전되는 성만찬 예전, 한국의 전통 국악과 예배의 조화라는 판소리 찬양 등의 순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을 기점으로 하여 각 지역에 교회당 건축이 공식화되었고, 교회건물은 이교도의 예술작품들로 화려하게 치장되었으며, 제단에 계단을 설치하여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막을 세워 제단을 거룩한 자리로 지정하였다.

설교자는 로마 재판관의 관례에 따라 감독자의 권위의 상징인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집례하였고, 성직자와 로마황제의 등장 때 등불과 향을 피우는 관습이 있었으며, 성직자는 집전 시에 로마 행정관들의 복장과 유사한 의복(가운)을 착용하고, 행진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로마의 의식을 도입했다.

이상과 같은 예전과 제의를 전통과 법칙으로 수용한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권위와 제의적 규범에 의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지배했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황의 절대권위와 전통적인 제의(祭儀)에 반(反)하여 초대교회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교황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를 주창하고, 교황에게 속죄권한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속죄의 효능이 있으며,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 구원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이신칭의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작금(昨今)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신학사상이 실종된 상태에서 다시금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의와 형식을 추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건물이 웅장해 지고, 교회당 내부에 그림과 조각으로 치장하며, 심지어 태극기가 설치되고, 제단이 화려하게 꾸며지며, 목사가 가운을 입고 등단하고, 가운이 절기마다 바뀌며 화려해 지고, 예배분위기는 웅장하고 근엄하며 어떤 때는 오페라 공연장 같기도 하다.

예배의 본질은 의식과 절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있다. 말씀에 있다는 의미는 성경을 차례대로 강론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영적예배에 관해서(롬12:1-8)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는 것이라 천명했다. 기독교의 예배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변하고 깨닫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예수와 사도들 역시 예배를 드릴 때 어떠한 의식이나 제의를 시행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만을 강론하였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만을 증거하였다. 누구하나 가운을 입고 강론한 사람도 없었고, 오늘날과 같이 예식을 갖춘 성찬식을 시행한 바도 없었으며, 축도가 목사의 전유물이 되어 축도를 받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라고 협박한 바도 찾을 수 없다.

초대교회에서는 집사 빌립도 말씀을 강론하였고 세례도 베풀었다. 성도가 성도에게 축복을 빌어줄 권한과 의무는 모두에게 있다. 목사는 사도가 아니며, 구약의 레위지파나 제사장도 아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에 말씀을 가르칠 뿐이다. 목사가 축복한다고 복을 받고, 저주한다고 해서 저주받지 않는다. 성찬도 그 시대의 식사문화이며 식탁의 교제이다. 단 식사할 때 마다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누가 가운을 걸치고 금잔을 돌리며 예전으로 둔갑시켰는가.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입각하여 초심으로 돌아가고 오직 성경만을 중시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식과 제의가 잘못되었기에 종교개혁이 발흥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 교회는 성경을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강론하는데 주목해야 한다. 성경이 목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며, 청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미디어국장 (지난 4월 24일 드려진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십자가와 부활초, 성경을 높이 들고 입장하고 있는 예배 순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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