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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3 21: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원이란 무엇인가 (1)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2~4)


1. 시작하는 말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향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다. 그러므로 결국은 죽음이 다가오면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는 철칙으로 맞이하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지, 또는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인지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영원’이라는 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대부분의 철학이나 대중 종교가 ‘영원’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중요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근원을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가정한다. 곧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으로부터 눈으로 보이는 물질세계가 나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우주 만물에 대해 형이상(形而上)에 속한 것과 형이하(形而下)에 속한 것으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형이상(形而上)은 사물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본모습으로 형이상(形以上) 또는 형이전(形以前)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곧 초자연적인 실존으로서 순수한 사고에 의해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형이하(形而下)는 사물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형체를 갖게 된 이후의 모습으로 형이하(形以下) 또는 형이후(形以後)라는 의미를 갖는다. 곧 자연적인 구체적 실존으로서 직관에 의해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모든 만물이 형체를 이루기 이전을 형이상(形而上)이라 하고, 형체를 이룬 이후를 형이하(形而下)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원’에 관한 철학적 상식에 의해 대중종교는 물론 기독교 진리마저 곡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자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가 지나가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온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죽어서 보이는 세상을 떠나게 되면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을 현세와 내세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체계에 의한 견해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를 거치며 끝없이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이분법적 사고체계의 모순으로부터 탈피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전자는 대부분 종교적 성향을 가진 자들의 견해이며, 후자는 대개가 과학적 견해를 가진 자들의 견해로 볼 수 있다.   

2. 일반적 견해

일반적으로 ‘영원’에 대한 견해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철학적으로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경험해 보지 못한 무한적 실체의 속성인 ‘영원’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피조된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영원’을 확실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자기를 낳으신 부모의 심정을 분명히 헤아릴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원’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하나의 관념적인 가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철학적 견해로는 ‘영원’이란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아니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진리처럼 그 의미나 타당성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 또는 ‘신이나 진실성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원(永遠, eternity) 또는 불생불멸(不生不滅, immortality)은 한없는 시간의 지속(持續)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증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관념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끝없이 계속되는 시간’이라고 하며, ‘과거는 무한이며 미래도 무한이라고 생각되는 것’ 또는 ‘시간이라는 관념에서 완전히 떨어진 무시간성(無時間性)이라는 의미에서의 영원’을 말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F.W.니체가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영원회귀’ 사상도 있다. 니체에 따르면,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상승하며 무한히 되풀이 한다. 이러한 견해는 영원한 상태 안에서 모든 만물이 생성과 쇠퇴를 거듭하며 한없이 존속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사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를 거치며 끝없이 지속된다는 견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견해 역시 이원론적 세계관의 모순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의 일환으로 여겨질 뿐이다. 
종교적 견해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과거는 기억, 미래는 기대, 현재는 직관과 영혼에 접촉되는 시간 등을 초월한 것으로서의 영원’ 또는 ‘여기에 영원한 지금, 영원한 현재를 생각하게 되며 순간을 점(點)으로 하여 점의 무한한 집합으로서의 선(線)을 영원이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의 한 점은 영원한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원이란 초시간이요 지속성과 흐름을 가지지 않은 영원한 현재로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철학적인 어떤 견해보다는 상당히 진일보한 견해로 보인다. 
결국, ‘영원’이란 ‘항상 있는 것으로서 시간과 상대적 의미’로 이해하는가 하면,  ‘변하는 시간에 반하는 불변의 상태’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을 앞뒤로 수평의 방향이 아닌 위아래 수직 방향으로 무한히 연장시킴’이라고 이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 세계가 끝나면 또 한 세계가 계속 이어져 시작도 끝도 없다는 그리스의 순환적 세계관’에 대한 견해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원’에 대한 견해는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표현상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크게 다르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 대중 종교가 철학의 일종이기도 하고 그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사고능력이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크게 다를 바 없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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