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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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5 21: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광이란 무엇인가 (2)


3. 영광의 분류

‘영광이란 무엇인가’라는 본 주제에 대한 해답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영광’이라는 말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주제의 핵심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기에 앞서 반드시 정리해야 할 과제가 있다. 곧 ‘영광’이라는 말을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영광’이라는 말에 대해 몇 가지로 분류해서 이해하도록 밝혀주고 있다. 곧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피조물의 영광과 타락한 피조물의 영광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1)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은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영상(映像)이 드러나는 영화로운 광채를 말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며 시작한 날도 없고 끝나는 날도 없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은 영원한 빛의 근원이시며 빛의 본체이기도 하시다. 그 빛의 영화로운 광채가 드러나는 영상이 곧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이다. 이는 그 어느 무엇과도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드러나는 절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 빛의 영화로운 광채를 영원한 창조세계에 드러내신다.

2) 영원한 피조물의 영광

영원한 피조물의 ‘영광’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화로운 광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때에 영원한 세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창조하셨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영화로운 광채가 곧 ‘영원한 피조물의 영광’이다. 이는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에 의존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는 영화로운 광채를 발현할 수 없는 종속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비록 ‘영원한 피조물의 영광’이라 할지라도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에 종속하여 영원토록 영화로운 광채를 드러낸다.

3) 타락한 피조물의 영광

타락한 피조물의 ‘영광’은 불순종으로 육체가 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타락한 세상의 영화로운 광채를 말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고 저주를 받아 영적으로 죽어 육체가 되었다. 이러한 인간이 누리는 것이 곧 ‘타락한 피조물의 영광’이다. 이는 누구나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대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곧 패자의 비참한 좌절감이 없이는 승자의 ‘영광’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타락한 피조물의 영광’은 타락한 인간이 저주 아래서 누리는 영광을 말한다.

4. 영광의 정의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정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앞서 언급한 언어의 의미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전적 개념의 의미는 인간들이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절대적 개념을 지닌 계시적 용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앞서 밝혀놓은 언어의 의미만 가지고는 그 정의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교회의 많은 부작용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언어의 혼란에서 파생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 개념을 절대적 개념으로 그 차원을 달리하여 규정하는 과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누리는 상대적인 ‘영광’은 자기 스스로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누구나 상대와의 경쟁에서 진 자가 있어야 이긴 자가 승리의 영광을 누리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패한 자의 비참한 좌절감을 안겨주지 않고는 승리한 자가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광’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상대자인 어느 누군가에게 비참한 좌절감을 안겨주는 비열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화되고 있는 ‘경쟁’은 결국 최종적으로 인류 최대의 비극인 ‘전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는 타락성에 의한 상대적인 ‘영광’을 추구함으로 필연적으로 자초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어떠한 상대도 절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영광스러운 상태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대상에 의해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지니고 계신 절대적인 ‘영광’을 누리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 스스로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우주만물의 창조 및 섭리를 통해 스스로의 절대적인 영광을 나타내시며 존재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광’은 상대적인 피조물에게 비참한 절망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탄과 찬양을 불러일으켜 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신령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는 그 영화로움에 감탄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비참한 절망감이 아닌 감탄과 찬양에 의한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하나님의 근본 영상(映像)에 의해 비춰지는 영화로운 광채(光彩)>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근본 영상에서 나타나는 찬란한 빛살을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근본 영상에 따라 나타나는 계시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거듭난 자들은 신령한 눈으로 피조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감탄하며 찬양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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