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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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5 21:0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생명이란 무엇인가 (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4~5)

1. 시작하는 말

인류 역사 이래 ‘생명’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과학자들을 비롯해 철학자들이나 종교가들도 한결같이 ‘생명’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가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꼽는다면 당연히 ‘생명’에 관한 문제다. 곧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원천이나 속성은 무엇일까. 또는 그 요소나 기능은 어떠한 것일까. 이와 같이 생명과 관련된 무거운 난제들이 남아있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서 ‘생명’을 만들어 보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철학자들 역시 ‘생명’을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가정하고 이를 근거로 진리를 찾아 확증해보려는 욕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종교가들은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나름의 종교적 교리체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유도한다. 물론 일반 대중들 역시 ‘생명’에 대한 관심은 예외 없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곧 모든 인간이 죽지 않고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이나 철학 또는 종교가 ‘생명’에 관한 문제의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진리를 추구한다는 말은 구호에 그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모든 지식은 결론이 없는 과정적인 주관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 궤변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의 근원인 ‘생명’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리의 결론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근원도 모르고 결과도 모르는 상태에서 논의하는 모든 학문적 이론이나 종교적 교리는 허구에 불과한 궤변이 아니겠는가.
과연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인류 모두가 심대한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누구나 ‘생명’의 기능이 작용하는 표면적 상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지금까지 아무도 설명한 사실도 없고 앞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더러는 생물학자들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경우를 종종 본다. 소위 줄기세포 조작으로 생명을 번식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마치 생명창조의 길이 열린 것처럼 과장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생명’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학자들의 우둔함의 결과이며,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오만방자함의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는 절대적인 최고의 진리를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유일한 종교라고 감히 강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절대 진리인 성경만이 ‘생명’의 본질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본 주제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규명해 보기로 한다. 
2. 생명의 어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란 말에 대해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생명’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 단순한 설명을 굳이 요구한다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것이 단순하게는 ‘움직이는 것’ 또는 ‘자라나는 것’ 그리고 ‘호흡하는 것’, ‘의식하는 것’, ‘번식하는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견해들은 한결같이 ‘생명’의 기능이 작용하는 표면적인 상태만을 보고 단순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곧 근본적인 ‘생명’ 자체의 본질에 대한 설명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 눈에 보이거나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생명’에 대한 단어를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원문으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생명’이라는 말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하이(y j')’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살아있는’ 또는 ‘생존하여 있는’, ‘생명’ 등의 뜻이다. 어원은 ‘살다’ 또는 ‘살려두다’, ‘육성하다’ 등의 뜻을 가진 ‘하야(hy:j)’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네페쉬(vp,n)’라는 단어도 사용하는데, 이는 ‘숨 쉬는 존재’ 또는 ‘영혼’, ‘생명’ 등의 뜻이다. 어원은 ‘숨을 쉬다’ 또는 ‘기운을 차리다’, ‘호흡하다’ 등의 뜻을 가진 ‘나파쉬(vp'n:)’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신약에서는 ‘생명’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조에( z w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생명’ 또는 ‘살아있는 상태’, ‘생애’ 등의 뜻이다. 어원은 ‘살다’ 또는 ‘숨쉬다’, ‘거하다’ 등의 뜻을 가진 ‘자오(zavw)’다. 그리고 ‘프쉬케(yuc h)’라는 단어도 사용하는데, 이는 ‘영혼’ 또는 ‘목숨’, ‘생명’ 등의 뜻이다. 어원은 ‘숨 쉬다’ 또는 ‘바람 불다’, ‘호흡하다’ 등의 뜻을 가진 ‘프쉬코( yuvcw)’라는 동사에 둔다. 이상과 같은 용어들 외에도 품사를 달리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없지 않으나 크게 의미를 달리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성경에서 언급하는 ‘생명’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의미 역시 근본적인 ‘생명’ 자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생명’의 기능이 작용하는 표면적 상태를 다각도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일반적 상식에 의한 사전적 견해로는 ‘생명’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은 할 수 없다. 적어도 ‘생명’의 기능이 작용하는 표면적 상태가 아닌 이면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진리에 대한 전 포괄적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 곧 성경에 계시된 신관을 비롯한 인생관 또는 역사관 및 세계관에 기초를 둔 전 포괄적 진리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그렇게 규명해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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