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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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7 14:4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 건축의 시작 ‘바실리카’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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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 분묘인 카타콤으로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성도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예배 장소는 지상으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건물이 시급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므로 이에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당을 짓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므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뿐 아니라 주요 성지에 많은 교회당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교회당을 하나님의 집이라 생각하고  건물의 내부는 크리스트교 의식에 필요한 직사각형의 넓은 실내 광장과 제단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신전에 제단을 마련했던 고대 그리스의 건축을 로마시대에는 공공건물로 지어진 것을 크리스트교가 교회당으로 계승한 것뿐이다.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공간이 우상의 신전을 연상할 수 있는 건축물을 교회 예배당으로 변화시킨 양식을 바실리카라고 한다.
그런 이교도의 양식과 제단이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장소일까. 성경신학적 시각으로 볼 때 바실리카 양식은 이교도의 양식을 계승할 뿐 아니라 성막의 제단을 상기시키는 설계 양식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영원한 제사를 퇴색시키고 교회가 율법주의 신앙으로 이끌어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다가 우물가에서 이방 수가성 여인과 대화하는 중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장소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드리는 산에서도 말고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에서도 말라고 하시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하셨다. 이때 신령과 진정은 성령과 진리 되신 예수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눈에 보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 예배가 되는 것이다. 무서운 박해에도 카타콤에서 드린 예배야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였으므로 훌륭한 예배의 장소였다. 그러므로 빈 들판이나 다락방이나 어떤 곳에서도 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육체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고 비바람도 막아야 할 건축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교도의 신전과 같은 인간의 정성 드려 지은 집을 하나님의 집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제단과 같은 의식을 심어주는 교회당의 건축은 어린 성도에게는 하나님을 왜곡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바실리카 초기 양식을 보면 외부의 모습은 금욕적이며 아무 장식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모자이크 장식으로 찬란한 광채가 비취는 빛과 색채의 조화로 하나님 나라의 위엄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이때 교회당 내부의 넓은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모자이크가 개발되었다. 모자이크는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기법이지만 바실리카 양식 건물 내부에서 화려하게 변모하였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의 성막이 외부는 빛바랜 해달의 가죽으로 씌워 있어 볼품없는 크고 허름한 텐트와 같은 모습이지만, 성막 안 지성소로 들어가면 영광의 그룹으로 싸여 있는 법괘가 있었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다. 바실리카 양식은 그런 의미를 담고 건물을 설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리 휘황찬란한 빛과 색의 효과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흉내 낼 수는 없다. 하나님 영광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나는 광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빛이기 때문이다.
중세로 들어가면서 교황의 권위는 황제의 권력보다 더욱 높아졌으며 하나님을 빙자한 교회에서 교황의 권세를 드러내기 위하여 교회 건축은 점점 크고 웅장하며 값비싼 대리석과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며 성도들의 신앙까지 유린하였던 그야말로 캄캄한 흑암의 시대였다. 바실리카 교회 건축양식은 중세 많은 성당의 원형이 되었고 현대 교회 건축 역시 외형을 중시하고 제단과 장식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바실리카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을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도행전 17:25~2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완재 전도사 (아둘람교회)

동방의 신비주의 ‘비잔틴’
초기 크리스트교 미술 <카타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