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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3 21: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Ⅳ : ‘여호와증인’이 왜곡한 이름 ‘여호와’ 회복하기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호 12:5).


지난 호(159호)는 신약성경에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살폈다. 아직 그러한 번역이 신약에는 없더라도 ‘주(퀴리오스) 하나님(데오스)’은 대개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읽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하나님 이름 ‘여호와’를 강조하면 웃지 못할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하나님 이름을 소개하면서 개혁파 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강조하면 ‘여호와증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창세전부터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기념 칭호 ‘여호와’(잠 8:22)를 소개하려면 그 잘못된 증인들 때문에(/덕분에) 반드시 오해를 받는다. 올바른 여호와를 증언하기 위해 반드시 받는 축복으로서 오해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전국 곳곳에 보이는 ‘왕국회관’의 회원들인 그 증인들 덕분에 자기 조상의 함자(銜字)는 모르지만 여호와 이름 한 번쯤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는 하나님의 희한한 복음 전파의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부터는 성경권위를 바탕으로 제대로 ‘여호와’ 이름을 증거해야 할 적기(適期)가 되었다는 간절함도 생기면서 성경적인 여호와 이름을 소개할 모든 준비가 마련되었음을 선언적으로 말하고 싶다.
(성경 전체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 부분만 종말론이 아니지만 어쨌든) ‘여호와증인’은 종말과 심판의 언급이 많이 등장하는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만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런데 이 자체가 벌써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균형 잡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한계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이들은 다른 교단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으며 가가호호 방문으로 접근한다. 세속 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세상 권력과 정당을 ‘사탄을 돕는 동맹자’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물론 병역 의무 수행을 거부하며 공공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타 교단도 악의 수단으로 보는가 하면 ‘사탄의 교묘한 수단’일 것이라는 의심을 한다. 또한 ‘목사’, ‘교회’, ‘회중’ 같은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1874년을 예수님의 재림으로 보았다가 이를 다시 1914년으로 바꾸기도 했다. 재림 날짜를 함부로 계산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을 신봉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예수님께서도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왕국회관'에서 집회를 가지며 침례를 베풀고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며 원칙적으로 이혼을 불허하고 수혈을 거부한다. 주마다 5시간을 왕국회관 집회 참석을 해야 하며 ‘개척선포자’는 직업을 가지고 매월 100시간을, 사례비를 받는 봉사자는 매월 140시간을 채워야 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종말에 받을 복을 위해 율법과 같은 의무와 책무는 반드시 강조한다.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복음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다. <daum 백과 참조> 이렇게 현실을 또 하나의 율법으로 만들고 종말론으로 성도들의 삶을 이분화하는 ‘여호와증인’은 그야말로 ‘여호와에 대한 바른 증인’이 아니다. 이제는 신약성경에도 하루바삐 여호와 명칭을 복원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여호와 계시’로 이해하는 성경해석의 총괄적 이해로도 나가야 할 때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출 6:2~8).

본문에 보면 여호와 명칭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명하신 이름이다. 3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여호와의 자기 맹세(8절)와 연관되며 이것은 이스라엘 열조에게는 ‘언약’(5절)으로 확정되었다. 위의 상황은 애굽에서 언약대로 430년 종살이(출 12:40, 41)를 끝내고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바 있는 출애굽을 이루어주실 것을 확인해 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목적은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7절)’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여호와는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설명은 본문 몇 절과 연관해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설명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여호와’의 의미는 구약과 신약의 성경 전체 주제와 직결된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구약 전체는 보내 주실 메시야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이며, 신약 전체는 보내 주신 메시야에 대한 ‘여호와의 성취’ 내용이다. (박용기 저, 《성경신학총서(20권)》, 진리의말씀사 참조) 다시 말해 성경 전체는 여호와의 창세전 영원한 언약과 성취에 바탕을 둔 ‘언약과 성취’로 계시된 ‘여호와의 자기 계시’ 기록이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께서는 구약에 기록된 영생의 말씀은 바로 자기 자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구약의 정의를 내린다. 신약을 해석하는 근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서와 서신서 전체는 우연한 인간의 문서 편집물이 결코 아니다. 구약에 근거를 두고 복음서가 기록되었으며 또한 구약과 복음서를 근거로 서신서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창세전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맹세’에 근거하여 이미 확정된 영원한 ‘로고스(요 1:1)’의 ‘비밀을 보여준 계시 기록(엡 3:3, 4, 9)’이다. 
또 한 번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에 애타게 된다. ‘여호와증인’이 왜곡시킨 것 이상으로 간절하게 신약성경에 여호와 명칭 복원과 동시에 성경 전체를 ‘여호와의 계시’로 확정한 것(www.ibt.or.kr)을 한국 교회와 세계의 교회가 확인해주길 간절히 애원한다. 다윗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여호와의 법궤를 되찾아서 성막에 모실 때 그는 너무 기뻐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찬양했다. 우리 한국 교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합당한 영광이 회복되길 간절히 바란다.

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 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5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 16:29, 34~3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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