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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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8-22 10: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의 영원한 작정 사역 알기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지혜-필자 주]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잠언 8:22-31)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호칭이 있다. ‘여호와(YHWH/yehowah/Jehovah)’다. 첫 표기는 히브리어 자음만을 영어 알파벳으로 나타낸 것이며, 두 번째는 ‘아도나이(adonay)’의 모음을 앞의 네 글자(신성 4문자, Tetragammaton)와 결합한 표기이고, 세 번째는 영어 발음으로 기록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3계명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 아예 발음하지 않으려고 자음으로만 표기했다. 그것이 신성 4문자이며 이를 대체한 단어가 ‘아도나이’다. 하나님의 호칭 여호와가 성경에 등장할 때 히브리인들은 아도나이(주, 主)로 바꿔 발음했다. 한글 성경에서는 구약만 여호와가 등장한다. 필자는 본 신문 238호와 239호에서 신약성경에도 145회 이상(현재는 200회 이상 나옴을 확인했으며 신학회에 발표 계획 중) 나온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할 때 성경의 본래 주어 하나님의 호칭 여호와로 통일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하에서는 하나님 호칭 여호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인용한 본문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며, 나아가 인용한 본문을 통해 기독교의 작정론이 단지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 이론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만물을 역동적으로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經綸)의 근거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앞의 본문은 창세전부터 존재하는 ‘지혜’를 인격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능력 면에서 창조주(30절)임을 밝히고 있다. 성경 전체로 볼 때 요한복음 17장과 함께 창세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밝혀주는 놀라운 기록이다. 두 본문 모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명시한다.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언약하는 예언서(요 5:39 참조)로서 잠언 말씀의 전체 정황으로 볼 때도 창세전부터 존재하는 지혜는 본성(本性)이 신성(神性)이신 그리스도(엡 1:3 참조)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봐야 한다. 본문의 주어는 여호와이다. 여호와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 지혜 곧 장차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지셨다(‘가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나’이며 이는 ‘창조하다, 취득하다, 얻다’라는 뜻이다). 여호와는 창조 사역 전에 그리스도를 가졌으므로 그리스도는 세움을 입었고(23절/‘입었다’의 히브리어는 ‘나사크’며, 이는 ‘주조하다, 임명하다, 세우다’는 뜻이다) 이미 (영원한 존재로) 출생한(24-25절) 상황이다. 바다, 큰 샘, 산, 언덕, 땅, 먼지, 바다 수면, 구름과 하늘, 바다의 샘, 바다의 한계, 땅의 기초를 만들기 전에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영원한 존재로 ‘낳았다.’ 인간의 출생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존재가 분명하다는 점이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창세전 영원한 사역을 통해 피조세계의 만물과 만사를 작정하고 확정 지었다는 것이다. 30절에 보면 영원한 아들인 지혜 곧 그리스도는 ‘창조자’가 된다. 창조주의 개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시공형의 상식적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분리 불가의 영원한 존재와 사역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사역에 대해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여호와 앞에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 역시, 인간 이성의 합리적 판단을 중지하고, 분리 불가의 영원한 존재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고 31절은 만물 창조 이후에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류 시조 아담과 그 후손들을 확정한 내용을 담았다. 31절 ‘인자(人子)’는 히브리 본문에는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인(人)’은 히브리어 ‘아담’의 번역이며, ‘자(子)’는 복수형으로 히브리어 ‘벤(아들, 손자)’의 번역이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언약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근거가 잠언 8장 31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잠언 8장 21-33절 본문은 창세기 1장에서 계시되는 시간 역사적 사건의 근거가 여호와와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역과 작정에 있음을 분명히 확증한다. 여호와 호칭은 그리스도와 맺은 영원한 언약에 바탕을 두고 모든 사역을 작정하시며 또한 반드시 성취한다는 뜻이다. 
창세전 언약대로 만사 만물을 성취하는 여호와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사역을 통해 피조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작정하셨고 반드시 성취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작정론은 형식 논리학의 이론적 전제처럼 이해해서는 안 되며, 초월적 관념론과 같은 단순한 개념적 판단과 이해 수준에서는 접근할 수도 없는 차원이다. 우리의 상식적 선/악 판단의 시각으로는 더더욱 다가갈 수 없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지상 사역을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확정된 사건임을 고백하며 하늘에 속한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신다.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했으므로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 승천하더라도 제자들을 비롯한 택한 백성을 내버려 두지 마시고 보호해 주길 간구한다. 이처럼 계시된 시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와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역을 배제하고는 어떤 설명도 불가능하다. 창세전 영원한 작정 사역에 근거를 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다시 확인해 본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요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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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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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과 가정교회
진리 감독으로서 장로직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