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창세기 1장 1절 말씀과 성경 해석의 중요성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너무나 잘 알려진 만큼 그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신자들조차 많이 모르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라는 선언이 명백하지만 이 말씀에 담긴 말씀의 권위가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면상의 한계를 핑계로 이하에서는 창세기 1장 1절을 창세전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의 관점에서 숙고해 보고자 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성경계시의 완성 부분인 요한계시록 21장 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로써 창세기 1장 1절이 성경 전체 해석에서 얼마큼 중요한지 그 말씀에 나타난 신적 권위를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한글 번역본 구약성경은 ‘태초(太初)에’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시점(時點)’과 관련된 말이다. 시점 혹은 시간과 관련되지만 우리가 삼차원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 개념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 이전부터 존재하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천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며 사역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초’라는 개념 이해는 시간 이전부터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이러한 차원이 도대체 어떤 차원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 근원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창조 이전에 존재하는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역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허락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은혜임을 우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초월한 태초라는 차원에서 일어난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해 우리는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원한 사역 곧 영원한 창조 사역의 근거를 잠언 8장 22-31절을 통해 더 분명하게 접근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 ‘여호와’가 이 본문의 주어다. 이 여호와는 세상을 만들기 전에 곧 태초에 영원한 사역을 하신다. 그런데 그 영원한 사역 이전에, (논리적) 순서상, 이보다 먼저 하신 사역이 나온다. 바로 ‘지혜’[여호와의 자녀-미필자 주]를 소유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다시 창세기 1장 1절로 돌아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을 이해해 보자. 태초는 시간이 시작하기 이전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이 일어난 차원과 상황과 정황에 해당하는 개념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태초 창조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시간관념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사역’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창조’의 의미는 무(無)에서 창조했다는 의미 그 이상의 차원을 계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창조 개념을 ‘무에서 창조했다’의 말에 담아두기에는 너무 큰 한계가 있다. 천지의 창조는 창세전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잠 8:22-31 참조)이자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역(요 1:3; 골 1:16)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원을 달리하는 ‘태초의 영원한 창조 사역’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전 모든 계획과 작정을 모두 완성하는 사역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근거를 찾아보자.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 그런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다. 여기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어쨌든 영원한 천지는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창조는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초월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영원한 사역에 속한 피조물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없어질 수 없는 영원한 차원의 하늘과 땅이며, 우리는 여기서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세기 1장 1절에 나타난 ‘천지’와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시간관념을 초월한 영원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 바로 그 사역이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의 천지 창조’이며,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나타난 없어진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는 그 차원이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보면 다시 한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밝히고 있다. 없어져서 지나가 버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영원한 사역을 그대로 제시하는 차원이 아니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세기 1장 1절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인 ‘태초의 천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계시록 21장 6절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의 천지’와 요한계시록 21장 1절의 논리적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의 천지’는 피조만물의 모든 차원이 모두 사라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계 21:10)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 1절 이해는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논리적 비약의 오류를 감수하고서라도 요한계시록 21장과 창세기 1장 1절에 나타난 ‘태초의 천지 창조’ 사건을 연관 짓고자 한 것은 성경말씀의 권위 그 자체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차원의 절대진리이며 그 분명한 증거가 창세기 1장 1절부터 분명하게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더 생각해 볼 점은, 창세기 1장 1절을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으로서 태초의 천지 창조로 이해한다면, 이 말씀과 창세기 1장 2절은 어떠한 필연적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호에서 계속해서 이어가 보고자 한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1-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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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여호와’ 호칭이 창세기 2장 4절에 나와야 하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