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역사를 도덕화하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라!
니체는 역사를 도덕화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선/악 판단은 공감과 공존의 여지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태도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근본 오류를 니체는 비판적 수사학을 동원해 이렇게 경계한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과거에는 어떠했나’라고 주입한다. 도덕은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한다’라고 각인시킨다. 이렇게 역사는 사실적인 부도덕의 편람이 된다. 동시에 역사를 사실적인 부도덕의 심판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가!
사건을 기록할 뿐 도덕적·윤리적 평가 능력이 없는 역사가 옳고/그름과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역사=정의(正義)의 심판자’임을 전제하며 이는 승리한 권력자가 결국 옳다는 정당화를 꾀한다. 이러한 태도는 헤겔적 역사주의, 유물론적 역사관이나 진보주의 역사관을 지배하는 주류적 관점이다. 역사를 정의의 심판자로 착각하는 것은 ‘승자=정의의 승리자’라는 위험한 역사 숭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역사란 그 자체 ‘실제적인 비도덕의 무덤’이다. 선과 악의 평가를 초월하는 사건 기록의 누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역사에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부여하는 것은 역사 숭배의 가장 위험한 오류 중 하나며, 권력과 폭력을 미화하는 자기기만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태도를 니체는 이렇게 정리한다. “너희는 성공을, 사실을 너희의 우상으로 만듦으로써 악마의 변호인이 된다.”(361) 다시 말해 겉으로는 역사적 사실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객관적 관찰자인 척하지만 실제는 역사 속 악의 실제(폭력, 억압, 권력)를 변호하고 정당화한다. 역사적 결과에 대한 숭배가 결국 역사 속 악마적 현실을 옹호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니체의 의도는 역사에 대한 맹종과 숭배가 아니라 역사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역사적 동력을 선/악으로 고착화하는 역사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투사(Kampfer)’를 길러내려는 것이다. 니체는 미래 창조의 역사를 이렇게 소망하며 또한 예견한다. “투사들이 설령 후예로 태어난다 해도-이 사실을 잊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앞으로 올 종족들은 그들을 장자로서만 알 것이다.”(362) 이 경우 장자(長子, Erstlinge)란 시작하는 선구자나 원조(元祖)를 뜻한다. 비록 뒤늦게 태어났지만 그의 삶이 앞 세대보다 더 창조적인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가치 창조의 역사에서, 단지 시간상으로 늦게 태어난 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만든 맏아들(첫 열매)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니체는 미래 투사를 낳기 위해 우선 당시 문화를 비판적으로 규정한다. 니체에 따르면 당대 19세기 정황은 ‘아이러니(Ironie)’ 즉 자기 모순이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시대다. 스스로 자기 시대를 찬양하면서도 그 바탕에 냉소(cynismus)를 품은 자기분열증 환자와 같다. 겉으로는 진보와 희망을 말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오만과 허무를 품고 삶을 병들게 하는 퇴폐적 태도가 지배한다. 희망을 말하지만 이미 희망을 믿지 않는 그 시대의 ‘자기기만’은 단지 특정한 행태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그냥 둘 수 없는 심각한 질병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 개념이다. 19세기 독일 민족은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지식의 발전과 과학 문명의 발전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매우 낙관적이었다. 니체는 이러한 희망 속에 팽배해지는 창조적 의지의 쇠퇴를 간파한다. 이러한 역사주의의 확신은 오만함의 산물이며 이면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냉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자기 시대의 창조적 역량을 자화자찬하지만, 실상은 허상을 쫓고 있는 모습이었다. 니체의 지적이다.
역사의 고찰이 이렇게 멀리 비약한 적은 결코 없었고, 꿈조차 꾸지 못했다. … ‘우리는 목표에 이르렀다. 우리가 목표며 우리가 완성된 자연이다.’ … 19세기 오만한 유럽이여, 그대는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의 지식은 자연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의 자연을 죽인다. … 너는 하늘을 향해 지식의 햇빛을 기어 올라가지만, 혼동으로 깊이 떨어지기도 한다. … 너에게 토대와 바탕은 무지로 퇴각한다. 너의 삶에는 어떤 받침목도 없다. 있다면 단지 거미줄인데, 그것도 너의 인식이 붙잡을 때마다 찢겨 나간다.(364)
니체는 역사와 이성을 동일시하고 그 역사를 통해 인간 정신이 완성되고 나아가 인간이 자연의 목적이자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19세기 헤겔주의자들을 (완성이 곧 퇴락의 시작인) ‘허무주의’의 관점에서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인간을 세계 목적의 최종 실현으로 보는 이러한 역사주의적·계몽주의적 오만은 허구이며 자기기만의 정점이다. 이러한 진보 사관은 그야말로 역설적으로 창조적 생명력을 마비시킨다.
이렇게 니체는 당대 독일인 스스로 자연의 완성이라 자부하는 것에 대해 역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결과이며 인간의 생명력을 철저하게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가령 모순, 부조리, 투쟁, 비극은 헤겔주의자들에게 마치 극복된 것처럼 보였다. 나아가 역사주의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인식의 나무에 열린 가장 잘 익은 열매”(363)라고 찬미하지만 역설과 모순과 비극의 현실은 왜곡하거나 ‘숨기고’ 있었다. 니체의 예리한 지적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견유주의(das Cynische)로 빠지고 역사의 진행을, 아니 세계 발전 전체를 현대인이 휴대할 수 있도록 견유주의 규약에 따라 정당화하고 있다.”(363. 강조는 원문에 의함) 견유주의는 삶에 대한 냉소적 시각에서 비롯한다. 이는 삶의 궁극적 가치나 목적 설정을 근본에서 부정하고 현실을 단지 권력 쟁취·성공 수행·생존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니체가 말한 ‘견유주의 규약’이란 냉소적 태도가 삶의 기준·규범·척도를 지배한다는 말이며, 세계 역사를 지배하는 본질은 권력과 승자와 강자의 논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태도는 가치 창조와 이상(理想) 설정을 늘 냉소하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삶에 비관적이고 체념적이지만 동시에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기회주의자들을 니체는 ‘인류 완성=역사 완성’이라는 허구적 객관성을 조장하는 헤겔주의자와 연관 짓는다. 니체는 대립과 모순 그리고 비극을 간과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낙관적 이성주의자의 행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역설 속에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그런 식의 견유주의의 쾌감으로 도망친다.”(363) 결국 헤겔주의에 경도된 당대의 역사학자들은 삶을 체념하고 현재를 완전한 것으로 변명하면서 ‘역동적인 삶’ 앞에서 패배하는 견유주의자들에 불과하다. 이러한 19세기 정신문화는, 니체에 의하면, 허무주의의 논리가 독일 정신문화를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모순과 대립, 갈등과 투쟁의 현실을 긍정하지 못하면서 객관적 지식의 이름으로 삶을 병들게 하는 퇴폐주의 곧 ‘데카당스’의 전형이 바로 19세기 역사학이었으며 지배적 지식이었다.
<281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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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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