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19세기 독일 지성: 염세주의에 대한 집단적 광기
<지난 285호에 이어서>
니체는 하르트만이 허무주의를 역사의 필연적 결론으로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려고 했다고 평가한다. 니체는 하르트만의 허무주의 도래에 대한 진단은 인정하지만 독일 교양에 대한 그의 진단이 깊어질수록 삶을 더욱 병들게 하는 퇴폐적 사유가 된다고 비판한다. 니체에게 허무주의는 피해 가야 할 단순한 오류가 아닌 향후 모든 인류가 반드시 직면해야 하고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시대적 위기로 보았다. 인간 실존을 정당화하고 긍정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의지의 회복을 제시하려는 니체에게 하르트만과 같은 태도는 필요적으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정신병이다.
합리적 분석과 진단을 통해 시대정신을 규정하려는 하르트만류의 철학은 세계를 고통과 불행의 덩어리로 규정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존재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떠한 창조 의지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생존을 견딜 수 없어서 구역질만 반복한다. 이들에게 역사 발전은 자기 존재의 무가치함을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형이상학적 비관주의의 전형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 부분에서 하르트만과 일정 부분 공명한다. 다시 말해 독일 지성계처럼 과학 발전에 토대를 두고 물질적으로 발전하는 서구 문명에 대해 하르트만과 니체는 그것은 자기 긍정이 아니나 자기 부정이며 무가치함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니체가 사용하는 개념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허무주의’가 도래한 분명한 증거다.
하지만 니체는 하르트만의 이러한 비관주의를 또다시 비판한다. 왜냐하면 하르트만은 허무주의에 대한 인식을 단지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서구 역사의 필연적 귀결로 정당화하여 인류 종말을 조장하는 ‘적그리스도’의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와 세계 부정을 ‘최선의 길’로 해석하는 것은 니체의 창조철학에서는 삶의 의지를 병들게 하는 가장 나쁜 퇴폐적 사유이다. 그래서 니체는 하르트만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장난꾸러기 중의 장난꾸러기’, ‘적그리스도’라고 풍자하고 비판한 것이다. 삶을 병들었다고 진단하는 사상들은 얼핏 보면 철학적으로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삶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창조 의지의 원천을 갉아 먹는 병리적 환상을 조장한다. 니체는 자신의 초기철학에서부터 분명하게 허무주의 극복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있다. 니체가 전 생애에 걸쳐 강하게 비판했던 문제는 허무주의 도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미화하려는 태도였다.
니체가 19세기 독일 지성을 ‘적그리스도적 현상’에 비유한 이유는 기독교 그 자체의 부정이라기보다 ‘여기-지금-이 상황’의 실존을 혐오하고 세계를 무가치함 그 자체로 환원하여 전 우주에 걸쳐 창조적 의지를 근절시키려는 사악함 때문이다. 삶의 긍정을 붕괴시키는 19세기 독일 교양은 이러한 의미에서, 니체의 표현을 빌린다면, ‘무서운 손님’이다. 절대가치인 신의 존재의 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하고, 그 이성을 실증주의 학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절대화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가치 창조의 능력을 집단적으로 상실한 광기로 변질하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이다. 니체가 헤겔과 그 추종자들의 전통과 그들이 주도하는 독일 교양을 비판한 이유도 학문적 권위와 철학적 엄숙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창조 의지와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염세주의와 퇴폐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황혼이 깃든 다음에 날기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지혜는 현실을 창조하기는커녕 무기력한 관조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철학의 정점인 양 허세를 부리는 것에 니체는 구역질을 난 것이다. 니체의 말이다. “시대적인 교양-쓰레기들이 맹목적으로 열광하고 너무 열광한 나머지 광기에 빠졌다.”
니체에게 ‘시대의 교양-쓰레기들’은 단순한 교육 수준이 아닌 당대 독일 지식인 사회와 그들의 문화 전체를 지칭한다. 쓰레기인 이유는, 겉으로는 과학 발전에 의존하는 학문적 권위와 형이상학적 신념에 대한 확신을 논리적으로 설파하지만, 실제로 이는 삶을 약화시키고 창조 의지를 마비시키는 질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가치 없는 지적 산물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것에 대해 니체는 그러한 쓰레기 사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것을 집단적으로 숭배하는 태도에 참을 수 없었다. 거짓된 학문적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열광과 추종은 반드시 집단적 광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니체의 진단은 향후 독일 사회에 몰아닥칠 대재앙을 예고하는 듯하다. 삶을 부정하는 비관주의와 허무주의를 학문적 권위와 철학적 엄숙함으로 포장하고 그것을 비판 없이 열광적으로 수용하여 결국 지적 광기에 집단적으로 빠졌다는 니체의 비판과 분노는 독일 사회에 닥칠 무서운 손님을 예고하고 있었다.
<289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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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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