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01-10 20: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망나니’의 형이상학: 도덕 뒤에 숨은 기독교


“그리스도교는 사형 집행인의 형이상학이다.” 인간의 영혼을 살려주는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이 폭언의 주인공은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판단이 어떠한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이 말은 그의 책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명제다.(Friedrich Nietzsche, 『우상의 황혼』, 니체전집 15(KGW VI 3), 백승영 역, 서울: 책세상, 2002, 122쪽) 서양 기독교를 니체는 선악을 의도적으로 날조하여 인간에 적용한 도덕 종교로 파악한다. 즉 삶에 지친 자들이 남을 탓하면서 피해의식에 젖은 자신을 ‘선한 자’로 여기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 자를 ‘악한 자’로 규정한다. 이렇게 서양 기독교는 삶을 견디지 못한 채 원한과 복수심을 억지로 참아내는 ‘선한 자’와 주어진 삶을 그대로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의지력이 강한 ‘악한 자’의 대립에 생리적 토대를 두고 있다.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는 의지박약한 자는 반드시 피해의식 속에 사로잡히며 또한 주어진 삶을 강하게 긍정하며 사는 타인에게 자기 불행을 탓하게 된다. 니체는 유약한 삶의 의지를 가진 자들이 품고 있는 이러한 특성을 ‘원한감정’(resentment)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바탕에는 복수심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병리학적으로 보면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없는 나약함이 증오심으로 분출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니체의 지적에 따르면, 정신박약자의 질환은 매우 그럴듯한 가면으로 가려지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도 또한 그 병리 현상의 일부가 된다. 다시 말해 자기 불행의 탓을 타인에게 돌려 항상 복수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드러날 때는 타인을 향해 이타적 도덕으로 포장한다는 데 그 속임의 전략이 있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용서와 자비는 복수심에 의한 자기 기준의 선과 악의 분리라는 무서운 배타성이 그 동력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도덕가의 눈물방울에는 또한 한의 피눈물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서양 기독교를 지배해 온 ‘도덕은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없으며 또한 타인에 대한 무한한 복수심을 가진 자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자기 몸에 주입해야 하는 마약과도 같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금욕주의자의 엄격한 자기 관리는 금욕의 통한 도덕적 판단의 실천을 강화할수록 그 속에 품게 되는 타인에 대한 지배 본능과 복수의 칼날도 그만큼 예리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간악한 복수심을 숨기기 위해 금욕주의자는 ‘천사의 말’과 같은 온갖 미사여구 특히 도덕적 감정에 호소하는 역겨운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금욕(禁慾)은 다름 아니라 가장 사악한 ‘권력의지’인 셈이다 !   

“그리스도교는 죽어가는 사람의 약점을 악용하여 양심을 고통받게 만든다.”(Friedrich Nie-tzsche, 『우상의 황혼』, 126쪽) 니체의 이 명제에 담긴 뜻은, 도덕이라는 요설(饒舌)과 교리를 그럴듯한 개념 구조(형이상학)로 조작하여 건강한 자를 병자로 만들고 또한 삶에 지쳐 죽어가고 있는 자는 두 번 죽이는 부도덕한 종교가 바로 서양 문화를 지배해 온 서양의 기독교라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서양 기독교의 몰락과 부패 과정을 지배해온 도덕의 특성을 이렇게 정리한다.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야수와 싸울 때 야수를 약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은 야수를 병들게 하여버리는 것일 수 있다. 이 점을 교회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인간을 망쳐버렸고 약화시켰다.”(Friedrich Nietzsche, 『우상의 황혼』, 127쪽)

서양 기독교 나아가 서양 문화 전체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그의 죽음(1900년) 이후 매우 거세게 유럽과 지구의 정신문화를 휩쓸어 왔다. 절대가치인 ‘신의 죽음’이라는 말과 함께 니체의 이러한 지적은 니체 스스로는 물론 그에게 공감하는 많은 자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가치가 인간의 조작물처럼 보이는 것도 계속 드러난다. 특히 사악한 기독교도들의 도덕적 자기 포장에 대한 역겨움은 창자가 끊어질 때까지 토해 봐도 성이 차질 않는다. 니체를 끝내 해결 없는 몰락으로 몰아넣었고 그를 추종하는 후예들도 처절한 자기 파멸의 길을 반복하고 있다. 도덕적 언동(言動)에 내려진 돌이킬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약속된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길, 그 무한한 은총의 손길이 나를 이끌어주시길……     

20 너희는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어찌하여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의식법에 복종하느냐? 21 곧“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손대지도 마라.”하는 것이니, 22 이것들은 모두 사용되다가 없어질 것으로서, 사람들의 계명과 교훈에 따른 것이다. 23 이런 규정들은 자의적 경건과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의 모양을 가지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익하다.(바른성경, 골 2:20~2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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