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09-11-26 04: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쟈크 데리다: 성경(the Book) 해체론자


현대철학의 거장들은 반드시 ‘신의 죽음’을 말한 니체 주변에 모여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현대철학은 바로 절대자의 장례식과 함께 시작하기 때문이다. 많은 거장들 중에 대표적인 철학자가 이미 다루어 본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다. 반드시 소개해야 할 또 한 명의 철학자가 같은 프랑스 철학자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다.
  알제리의 유태인 집안 출신인 데리다는 대학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니체는 물론 루소, 까뮈, 앙드레 지드,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하이데거에 몰두했다. 이렇게 철학 공부를 시작한 데리다는 1965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회화, 정신분석학 등 문화 전반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특히 현대철학 사조 중 ‘해체주의’는 마치 그의 이름처럼 유명하다. 
  니체(1844~1900)와 관련해서 데리다를 신학적 맥락에서 정의해 보자. 니체가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한 철학자라면, 데리다는 신적 영감(靈感)의 기록인 ‘성경(the Book)의 죽음’을 선포한 철학자다. 이러한 사명(?)을 수명하는 데리다의 성경 해체 전략들은 정교하면서도 독특하고 복잡하면서도 어렵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우선 파악해야 할 점은 그의 주장을 따라가면 결국 성경의 권위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의 비판은 단순한 서양형이상학의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책의 고유명사였던 성경의 해체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하 몇 차례에 걸쳐 데리다의 사상 가운데 그가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는 ‘글쓰기(writing)’의 전략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성경 해체의 전략들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문자와 그 문자의 결과물인 텍스트는 조작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허구다. 특히 신적인 권위가 부여된 책들은 근원에서부터 가장 체계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데리다는 기독교가 서양에 들어오기 전 플라톤부터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적용한다. 플라톤과 그 이후 서양형이상학은 불변의 존재 혹은 절대 가치를 설정하고 그 권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도덕적으로 가장 선한 삶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마치 신의 계시를 환상 중에 엄숙하게 듣고 그대로 전달하는 예언자의 태도와 동일하다. 이 경우 문자는 단지 초월적 세계(이데아)를 기록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기록하는 행위와 기록된 결과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데리다는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는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서양형이상학과 기독교는 문자를 통해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창조적 역동성’을 주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배척해 왔다는 것이다. 문자적 창작 행위가 무시당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데리다는 서양형이상학을 ‘음성중심주의’(phonocentrism)라고 규정한다.   
  음성중심주의는 언제나 완전한 존재를 설정하고 단지 그 이름만을 바꿔어 왔다. 이데아, 영혼, 신, 주체 등이 그때마다 옷만 바꿔 입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언어의 수사학적 은유에 불과하다. 고상하게 품위를 유지하고 권위를 부여받았던 절대적 가치들은 날조된 허구들이며 수사학적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폭로를 통해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에 억압당한 문자언어의 고유성을 찾으려 한다. 그 고유성을 찾는다는 것은 의미생성의 근원이 글쓰기 즉 문자의 창조행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여기에 해석의 원형이나 계시의 원천 같은 것은 거론할 수 없다. 오히려 데리다는 원형이나 원천을 찾아야할 필요성을 없애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데리다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문자로 기록된 것은 끊임없는 창작과 해석의 과정일 뿐이다. 이 책 외부에 계시의 주관자와 같은 존재는 없다.
  데리다는 서양 정신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텍스트인 성경의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靈感)과 성경의 무오(無誤)를 우슷개소리로 만들고 있다. 아직도 이렇게 간절히 믿어진다면 데리다의 주장이 우슷개소리인지 나 자신이 우슷개소리를 믿고 있는지, 성령의 주권적 심판에 의존할 뿐이다.
 
<다음 호에는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와 말씀운동(logos movement)’를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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