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09-12-30 13:3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로고스 중심주의와 말씀운동


서양철학에서 ‘존재’니 ‘진리’니 하는 말들은 영원한 본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을 따르면 모든 언어적 표현은 불변의 의미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나아가 기호와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창작 활동은 그 자체 별의미가 없다. 창작력이 돋보인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를 얼마나 분명하게 다시 확증해주고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될 뿐이다.   
  그런데 글쓰기 행위를 부차적인 행위로 여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본래부터 존재하는 ‘신의 음성’과 같은 절대적 진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하게 들리는 신의 목소리가 글쓰기를 시작하도록 한 원인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구약의 첫 기록자였던 모세에게 들렸던 여호와의 목소리가 모세의 글쓰기를 시작하도록 한 최초의 원인이 된다. 신의 목소리 즉 절대자의 현현(顯現) 과 그 광경에 대한 선포와 기록이 인간의 영혼 속에 분명하게 담기도록 해 주는 활동이 글쓰기다.
  이 경우 창작의 의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아예 창작활동을 무시해야만 절대자의 음성과 그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가 제대로 담겨진다. 의미를 구성하는 창작활동(‘시니피앙/signifiant’)은 늘 이차적인 부분이 되고, 신의 목소리에 비유되는 영원한 절대적 의미(‘시니피에/signifié’)의 목소리가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다. 데리다는 이러한 상황을 한 마디로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라고 비판한다. 분명 이것은 영원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해체와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의미의 근원으로 2천여 년 동안 보존된 성경의 권위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이다.
  (지난 호에서 말한 데리다의 유명한 명제인)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성경읽기의 무효성을 선언하는 말이다.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단지 한 권의 책에 불과하며 수 많은 해석만 난무할 뿐이지, 신적 영감이나 권위 운운은 쓸데없는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일찍이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면, 데리다는 죽어버린 신에 관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에도 더 이상 속박당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니체 이후 언어학과 관련된 철학적 명제는 성경 해체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성경이 왜 인간의 저술일 수밖에 없는지를 주장한다. 또한 왜 성경을 읽지 않아도 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왜 성경이 신적 영감과는 무관한 일반적 문서에 불과한지를 증명하고자 한다. 성경 읽기의 속박에서 빨리 벗어나 자기 자신이 바로 의미를 창조할 수 유일한 원천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로우며 신성한 행위는 문자적 글쓰기 운동이며 텍스트를 창작하는 행위다. 인간의 고유한 운동의 관점에서 글쓰기를 이해한다는 사실은 영원한 진리의 보고(寶庫)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말이 된다. 달리 말하면 데리다의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는 성경의 ‘말씀운동(logos movement)’(히4:12)을 부정해야만 성립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말씀운동(www.logos.or.kr/)은 데리다가 해체하려는 절대진리로서 로고스에 대한 변호와 보수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데리다가 볼 때 다양하게 기록된 66권의 성경은 서구 “신학과 로고스 중심주의를 백과사전적으로 지켜내려는” 음모의 결과다. 하지만 성경은 산발적 편집과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인 문서 모음집에 불과하다. 성경권위를 믿는 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권위를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신학이든 철학이든 현대 해석학은 대부분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 아래 이리 저리 모여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지적 판단이라는 말은 가장 먼저 성경의 권위부터 부인한다는 말과 같다. 전쟁 상황에 비유한다면 처참하게 패하고 단지 흩어진 시체 수습만 남은 듯하다.   
  로고스의 권위는 로고스만이 세울 수 있으며, 또한 약속대로 반드시 세워가신다는 것(히4:12), 이것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로고스 중심주의를 심판하는 ‘말씀운동’이다.     
<다음 호에는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성경다시쓰기 전략’를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성경 해체 전략
쟈크 데리다: 성경(the Book) 해체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