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0-01-28 11: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성경 해체 전략


쟈크 데리다는 가치판단의 절대 기준이었던 신의 죽음을 말한 니체 계열의 철학자다. 데리다의 사명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성경마저 해체하는 것이다. 현대 해석학에서 데리다를 거론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그에게 오면 성경이 이제 독자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니체는 텍스트의 고유성을 부정하고 모든 텍스트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 허구적 창작물이라고 본다.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진리를 발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의 해석에 대한 해석을 반복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을 따르는 데리다는 성경을 포함한 문자로 된 모든 텍스트는 특정한 ‘해석과 관점, 가치와 차이’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절대자의 음성과는 거리가 멀다. 기자의 자기 해석이며 자기 관점일 뿐이다. 자기 해석이기 때문에 객관적 진리일 수 없으며 자기 필요에 의해 그때마다 조작된 가치평가들이다.  ‘성경=하나님 말씀’이라는 등식이야말로 허구 중에 허구다. 기자 자신의 상상에 불과한 것을 신의 목소리로 착각하고 귀한 문자들을 단지 성경권위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글쓰기가 갖는 자유로움은 소멸되고 말았다. 그래서 데리다는 바로 글쓰기 자체의 자유로움을 회복하려고 한다. 

  서양철학에서 진리의 핵심개념으로 이해하는 ‘존재’(being)는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현전/現前/presente)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의 생각 속에 존재 자체가 아무런 매개 없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문자를 통해 드러나는 글쓰기 활동은 단지 궁극적 진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초월적이며 궁극적 존재(신)와 같은 개념들은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창작물이다. 다시 말해서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문자를 활용한 사고활동의 결과물이다. 문자들의 갖가지 조합방식에 따라 많은 표현들이 생성되며, 그 가운데 추상적 개념들의 창작도 일어나고, 그 개념들이 일정한 논리적 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개념을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들이 생기고, ‘존재’나 ‘신’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초월적 개념들은 다양한 문자 활동의 흔적들이다.

  자기 존재의 원인을 스스로 갖는다는 ‘신’이라는 존재도 불변의 로고스가 아니라 문자들의 관계가 만들어놓은 특별히 눈에 띄는 흔적일 뿐이다. 이 신이라는 허구는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었고 글쓰기 활동을 통제하면서 군림해 왔다. 특히 기독교 역사 2000여년 동안 최고존재자 즉 ‘절대자’인 신은 글쓰기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왔다. 성경에 의해 그리고 성경권위를 위해 쓰고 말해야 했다. 데리다는 이것을 문자에 대한 횡포로 보고 막으려고 한다. 다시 말해 성경권위에 의해 억압당했던 글쓰기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것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글쓰기의 결과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 존재의 운명은 글쓰기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자유로운 글쓰기가 신도 자유자재로 창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데리다의 성경비판에 초점을 맞추면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가 되고, 문자와 글쓰기를 강조하면 ‘문자학’(grammatolgoy)이 된다. 해체는 글쓰기 활동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해석의 필연성을 말한다. 글쓰기가 텍스트를 구성하는데, 이 텍스트는 창작의 결과이기 때문에 또 다른 창작을 위한 해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자해석의 필연성의 관점에서 볼 때 고정불변의 의미인 성경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제까지 서양기독교는 고정된 진리를 절대화하고 글쓰기 활동을 오랫동안 억압해왔다. 특히 기독교가 성경을 중심에 놓고 모든 글쓰기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억압했다. 따라서 데리다의 문자학은 성경을 해체함으로써 누구나 성경처럼 권위있는 텍스트를 창작할 수 있음을 천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문자학은 이미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임을 떠올린다.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다음 호에는 ‘문자언어: 진리와 허구 사이’를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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