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9-26 20: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올림포스 잡신론: 실존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허구


아폴론 속에 감각적으로 구체화된 바로 그 충동이 올림포스 세계 전체를 탄생시켰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폴론을 올림포스 세계의 아버지로 여겨도 된다.

니체는 인간의 충동이 신화의 바탕이라고 한다. 충동을 삶에 대한 본능적 욕구로 본다면 신화는 인간의 본능이며, 서양 신화 가운데 아폴론이라는 잡신이 인간 본능을 대변하는 대부 격이다. 니체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선이 지배하는 신성함이나 거룩성 혹은 자애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사회가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의무를 실천하기 위한 미덕을 올림포스에서 찾지 말라고 한다. 니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민족성의 뿌리에는 애초부터 불변의 실체처럼 존재하는 최고의 선(善), 최고의 미(美)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근원을 지배하는 욕망과 충동 신화의 주인공 디오니소스의 시종(侍從)이 최고의 가치를 찾고 있는 미다스 왕에게 하는 말을 니체는 이렇게 옮긴다. “최상의 것은 그대가[미다스 왕-필자 주]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이네.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무(無)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은-바로 죽는 것이네.”(41) 삶의 의미를 물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삶을 이끌어가는 최고 가치나 도덕적 덕목을 찾을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해 분투하는 것은 생(生)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렇게 서양 문화나 문명의 화려함을 지배하는 어떤 실체가 있었다고 여기는 것은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굳이 삶의 가치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들이 인생의 무의미(無意味)를 근본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처절하게 의식했는지를 보라고 한다. 삶의 무의미를 깨달은 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탁월한 지혜다. 니체는 무가치한 삶의 본질을 깨닫고 충동과 욕망의 자유를 누렸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명랑함을 초월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고문받는 순교자의 황홀한 환상”(41)에 비유한다. 순교자는 불변의 최고 가치를 위해 자기 몸을 불태움에 내어주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변의 최고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삶은 ‘무(無)’의 공허함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와 경악스러운 삶에 자신을 던져버린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삶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경악에 점점 익숙해지라는 생존의 충동과 유혹이 지배한다. 니체의 말이다. “계속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실존의 보완과 완성으로서의 예술을 삶으로 불러들이는 그 충동이 또한 올림포스의 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42) 삶을 보존하려는 욕구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지 불변의 가치가 삶을 지탱시키는 것은 아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 생존 수단을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그것이 예술이며 이 예술 충동의 집합체가 온갖 잡신들로 채워진 올림포스의 신화적 예술이다.

니체가 “실존은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42)이라고 할 때 이는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을 만들어서 이 세상에 살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욕구와 삶의 보존 충동이 오히려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필요한 ‘신’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비취는 거울과 같은 영상을 올림포스에 많은 잡신들로 채웠던 것이다. 자신들의 삶의 욕구와 충동을 신상(神像)에 투영하면서 고통과 경악의 실존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가적 창조 행위는 “가상을 통한 구원에 대한 열정적인 갈망”(45)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허구적 잡신을 만들고 그 잡신을 통해 삶의 충동과 욕구를 지배하는 구조는 그야말로 모순의 극치다. 잡신과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필연적 논리가 성립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생존 욕구는 공포와 경악의 현실을 만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의존하고 싶은 허구적 신화를 만들게 한다. 그리고 그 허구적 신화에 철저히 자신을 종속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잡신의 신화를 통해 인간은 자기 실존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신성화(神聖化)한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만들어 내는 모순의 극치가 일어난다. 그래서 니체는 삶의 충동과 욕구를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 극찬하였고 이를 근본부터 향유(享有)했다고 믿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존 전략을 극찬한다. 니체에게는 인간의 모든 생존을 지배하는 가상(假想)이라는 출처를 모르면 합리적 판단도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인과율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생성”(45)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실존의 지배자가 가상과 허구, 충동과 욕구, 공포와 경악임을 반드시 숭배해야 한다.

철학적 총명함이 넘치는 젊은 고전 문헌학 교수 니체가 극찬했던 고대 그리스의 조작된 올림포스 잡신 신화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알 수 있는 하늘의 지혜가 없다면 철학자들이 향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올림포스 잡신론을 극찬하면 할수록 니체는 성경권위가 지배하는 하늘에 속한 지혜에서는 점점 멀어져 간다.



15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도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사 44: 15-18)

<231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분수에 맞는 인(仁)
중용은 최고의 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