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11-30 20: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나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子曰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자왈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

『논어』, 「술이」편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묵묵히 기억하는 것,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떤 것이 나에게 있는가?”
‘지(識)’는 ‘기억(記)’하는 것이다. ‘묵지(默識)’는 “말하지 않고 마음에 두는 것(不言而存諸心也, 불언이존저심야)”이다. ‘지’는 또한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해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不言而心解也, 불언이심해야). ‘염’은 ‘싫어하는 것’이고, ‘권’은 ‘게을리하는 것’이다.

묵묵히 기억해 가는 일이나,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등은 반드시 성인의 지극한 경지가 아니라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일들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런 세 가지 일들 중에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공자는 이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이 이들 수준에 이르지 못 한 사람으로 자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자는 그의 말을 겸손하고도 겸손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말없이 묵묵히 기억한다는 것은 뭘 좀 배울 때마다 요란하게 배운다는 티를 내고 조금만 알면 그것을 자랑하고 떠들어대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혼자 제사 놀이나 제사에 쓰는 제기들을 가지고 놀이하는 형식으로 배워왔다. 그는 실제 경험을 통해 배운 일들이 많았다. 그에게 자신을 가르쳐주었다고 내세울 만한 스승이 없었다. 그의 뛰어난 지식에 대해서도 그는 가난하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마도 공자는 자신의 처지를 통해 살아가면서 묵묵히 배워가는 것을 천명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자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충신들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자신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이러한 그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한 것은 그의 배움의 열정과 배움에 대한 사명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우는 자의 결과론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배움은 동시에 가르침으로 드러나야 한다. 배움이 배움으로만 끝나서는 배움의 참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배움은 그 배움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그 자체로 자신과 타인에게 가르침이 된다. 따라서 가르침이 전제되지 않은 배움은 그 의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공자는 배움을 가르침으로 전환시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배움과 가르침의 영역은 실은 모든 인생의 활동 전체를 의미한다. 어떤 인생도 배움이 없이 살아갈 수 없고 그 배운 것으로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르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배움과 가르침이 곧바로 타인에 대한 배움과 가르침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사람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배움과 가르침의 과정, 곧 인생살이에서 전제되는 것이 떠벌림 없이 묵묵히 필요한 배움을 기억해 가는 것이고, 배움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고, 배우면서 동시에 한편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중에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이것이 공자의 질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 역시 은연중에 말씀을 알아가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요란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거나 어떤 정규코스에서 학습하고 있다거나 또는 뭣 좀 아는 듯이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고, 묵묵히 진리를 암기하고 익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배우기를 마땅히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이 배움의 자세가 동시에 가르침의 토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배우고 이런 배움을 통한 가르침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되고 철학이 되고 생활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을 접고 묵묵히 말씀을 알아가자. 이 말씀을 배우기를 싫어하지 말자. 이 말씀의 실천과 함께 가르치면서 그 자체의 삶을 결코 게을리하지 말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인간 본능과 예술의 본질: 잡신 신화(神話)에 목숨을 걸다
마흔일곱.성경권위 회복의 실마리: 교리(dogma) ‘구조’에서 성경 ‘강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