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06-13 13: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모든 진리는 조작이다, 지적 낙천주의를 경계하라!


우리는 생성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몰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삶 속으로 몰려들고 부딪치는 수없이 많은 실존 형식을 보면서 또 세계 의지의 넘쳐나는 생산성을 접하면서 우리는 투쟁, 고통, 현상의 파괴가 필연적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진정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을 세계 의지의 보편적인 거울로 마주한다.* 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니체전집 2(KGW III 1),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127-28; 131. 이하 쪽수는 괄호 처리.

니체는 허무주의(nihilism) 철학자다. 그의 철학 전체를 관통하게 하는 것도 허무주의이고 그의 생애 출발과 종말을 허무주의로 평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영원한 존재도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앞의 인용처럼 단지 분명한 것은 끝없는 생성이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그 생성은 시작하면서 자신의 몰락과 파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를 니체는 ‘고통스러운 몰락’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고통스러운 몰락을 견딜 수 있고 견디는 자에게 ‘최고 선한 자’라고 거짓말하는 자가 있었다. 소크라테스였다. 니체에게 인간 실존은 그 자체가 비극이며 비극은 도덕적 평가를 넘어서는 운명이다. 그래서 니체는 (앞의 인용처럼) ‘세계 의지의 넘쳐나는 생산성’의 현장 곧 인간 실존은 반드시 투쟁, 고통 그리고 파괴를 필연적 사건으로 겪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 절대로 소크라테스를 따라가면 안 된다. 삶 전체를 송두리째 사기당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쯤에서 자연과 세계를 움직이는 의지이며 충동 원리인 비극을 받아내는 하나의 모델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제였던 디오니소스 신화이며 이를 개념이나 논리가 아닌 음악이라는 장치를 통해 표현했던 ‘디오니소스적 음악’을 제시한다.
‘디오니소스적 음악’의 반대말은 ‘소크라테스적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의 경우 참과 거짓, 선(행)과 악(행)이 분명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변할 수 없는 진리와 선(행)이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물론 진리와 선은 언어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아니, 도덕은 오히려 이분법적으로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반드시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니체는 이러한 발상 자체가 인간의 고유한 진리 탐구인 것처럼 서구인들을 병들게 한 자로 소크라테스를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지적 만행을 치유하고자 디오스소스 신화에 나타난 비극적 요소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비극이 지배하는 세계를 인간의 충동적 의지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하고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은 지성이 아닌 음악의 힘이라고 입증해 간다. 그래서 비극적 삶에 대한 통찰과 함께 음악 정신이 사라지면 자연과 세계의 본성 이해는 왜곡 당한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조장한 지적 낙관주의의 범죄 사실을 이렇게 적시한다.

낙천주의는 확실해 보이는 영원한 진리에 의거하여 모든 세계 수수께끼를 인식하고 규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시간, 공간과 인과성을 보편타당한 절대 법칙으로 다루었다.(137)

과학뿐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이 의존하는 인과성이라는 필연적 법칙은 니체가 볼 때 처음부터 악의적 허구 조작 심리가 지배한다. 니체가 초기 철학부터 고대 그리스 비극 신화에 그렇게 몰두하게 된 배경에는 시공형의 현상 세계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지적 낙관주의가 실존의 생동감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도덕주의를 그대로 종교에 이식시킨 경우라고 보는 서양 기독교에 대해 더더욱 맹렬한 비판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에게 신화는 전통 서구 신학의 대체물이고 대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신화는 “무한성을 응시하는 보편성과 진리의 유일무이한 사례”(131)이기 때문이다. 무한성은 초인간적 속성이며 자연과 세계를 신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개념이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서구 신학의 대체물로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초기 니체 철학에서 이미 서구 기독교의 ‘하나님은 죽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니체의 디오니소스 부활의 기획에서 가장 먼저 파멸시켜야 할 괴수가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였다. 니체는 이러한 전략적 기획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학문의 정신이 한계에까지 이른 후에야 비로소, 또 보편타당성에 대한 학문의 권리 주장이 이 한계의 증명으로 인해 무효가 된 후에야 비로소 비극의 재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130)

니체는 이성의 능력을 지적 작업을 통해 극대화함으로써 자연과 세계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악마에게 몸을 파는 ‘파우스트’에 비유한다. 곧 “모든 학부를 다 돌아다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지식욕에 목말라 마술과 악마에게 몸을 파는 파우스트”(135)와 같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들에게 ‘진리 탐구’라는 이름으로 부질없는 짓을 악의적으로 부추긴 자가 바로 ‘이론적 인간의 원형 소크라테스’다. 그래서 니체에 의하면 적어도 서구의 모든 지식은 “소크라테스적 세계관의 심연으로부터 달콤하고 유혹적인 향기처럼 솟아오르는 낙천주의의 과실”(145)이다. 소크라테스는 전체 세계와 존재의 어머니인 ‘비극’을 압살한 용서할 수 없는 정신세계의 범법자다. ‘갈등과 투쟁의 현장에서 고상한 황홀경을 만들어 주고 고통과 쾌락의 경계선을 없애면서 자기 운명을 사랑’(152 참조)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인 비극을 몰아낸 범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래서 니체는 자기 손아귀에서 소크라테스를 단죄하고 비극을 복원하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지나갔다.”(152)
고전문헌학을 통해 고대 그리스의 음악 정신에서 철학적 사유의 토대를 놓았던 니체에게 가장 분명한 것은 유럽 정신의 원천은 결코 논리적 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화 창조의 힘을 다시 재현하고 부활시키고자 했던 것이 니체 철학 전체의 동기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 비극 신화에 대해 사활을 걸고 시작하는 니체의 초기 철학은 디오니소스 신화가 지배하는 정신세계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신화 없는 종교가 없다고 보는 니체는 서구 기독교 전통이 오히려 고대 그리스 비극 신화를 망쳤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현대 서구 크리스텐덤(Christendom)은 20대 중반의 철학자 니체가 주장하는 비극 신화에 의해 근본이 흔들렸고 그 기둥은 무너지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이 사라진 니체의 비극 신화 동경은 자신도 함께 무너뜨리고 있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딤전 4:7)
<243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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