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4-04-10 14: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쉰아홉. 로마 제국의 ‘우연한’ 조직 개편 로마 가톨릭 세력화의 기반으로


기독교 역사가 맥클로흐에 의하면 교회 역사에서 라틴 기독교 즉 로마 가톨릭이 세계적 교세를 차지한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결정적 근거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공하고 조작한 베드로의 권위가 로마 교회를 어떻게 그렇게 큰 세력으로 확장할 수 있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로마의 초대 교회에서 사용한 언어도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였으며 동방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로마 교회의 교세 확장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 신학에 정초를 놓았다고 하는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약 155년-240년경)와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년-430년)는 로마 출신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교세 확장은 3세기 후반 290년대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4년-311/재위 284년-305년) 황제가 로마 제국 정부의 중심을 없애고 4개의 수도를 만들면서 로마 가톨릭 교세 확보는 결정적 전기를 맞게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소아시아에 니코메디아를, 현재 세르비아에 시르미움을, 현재 밀라노에 메디올라눔을 그리고 현재 로마 인근의 트리어에 아우구스타 트레보룸을 각각 수도로 분할했다. 제국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4개 수도 중심의 통치 체제를 ‘테트라르키아’(Tetrarchy) 체제라고 한다. 284년에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내부 분열과 경제적 문제 그리고 국경 지역의 잦은 침입과 침략과 같은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제국의 광대한 영토와 복잡한 문제를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황제는 테트라르키아 체제를 도입하여 제국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침략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전술과 전략을 도모했다. 처음에는 빠르면서도 효율적인 운영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할 통치 체제는 제국 내에 후계자 문제와 권력 다툼으로 내부 분란이 장기화하면서 로마 제국 분열과 세력 약화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앞의 테트라르키아 체제로 인해 로마 황제들은 로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로마 교회가 로마 제국의 박해에서 벗어나 점점 황제들과 동맹자 관계로 변하면서, 로마 제국 권력의 로마 공백의 자리를 로마 교회 감독들이 점점 장악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 전체의 권력과 지위는 어떤 장애도 없이 고스란히 로마 교회 감독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로마 감독은 황제 대신 ‘교황(Pope)’이 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을 맥클로흐는 이렇게 정리한다. “고대 수도의 세속 권력의 공백은 기독교 감독에게 권력과 지위를 확장하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뜻했다.”(449) 로마 가톨릭의 제국화는 콘스탄티누스 1세(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년-337년) 와서 더욱 가속화했다. 황제와 황후의 전폭적 지원 하에 고대 로마 시대의 유명 건축물들은 교회 건축으로 탈바꿈되었다. 몇십 년 동안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제국의 수도 로마가 교회의 수도로 변모한 대사건이었다. 기독교 진리의 토대 위에 견고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보다 외적 성장이 훨씬 쉬워 보이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교회의 ‘성장’과 ‘발전’으로 착각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내는 로마 감독을 위한 성당을 세워줬으며 그때 건축한 건물들은 지금도 로마 가톨릭의 주요 건물로 남아 있다. 특히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건물을 로마 시내에 건축하면서 로마는 그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는 하늘나라로 변모해 간다. 순교한 성자 묘지 옆에 묻히면 죽어서도 복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순교자 묘지 옆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교회 역사에 의하면 로마에서 순교한 것이 확실시되는 바울 사도에 대한 기념 교회는 로마 시내에 건립하지 않고 변두리에 지었다. 반면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왜곡해 천국 열쇠를 가졌다는 이유로 제1대 교황으로 추대한 베드로에 대한 홍보와 투자 비용은 한마디로 천문학적으로 투입했다. 베드로 성당은 황제가 베드로에게 바친 예물인 셈이었다. 그 성당은 단지 황제가 지은 대규모 건축물이 아니었다.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보호하는 유일한 건물이 바로 그 성당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로마 교회는 이제 지상에 존재하는 하늘나라가 되었다. 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도전하는 일이 된다. 로마 감독 (이후에는 로마 교황)을 거역하는 일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이 되며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 된다.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교권은 로마 황제의 교권보다 더 커졌으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일천 년 이상 지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변화 역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겉보기에 일천 년 이상 버티는 로마 가톨릭의 교권과 건축물을 보면서 서구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곳이 마치 하늘의 천국을 이 땅에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거듭했다. 이러한 우매함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로 기적이다.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과 무한한 은혜의 산물이다. 성경의 신적 권위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에 복종하는 우상 숭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256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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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문체론: 천재에 대한 우상론
쉰여덟. 중세 이후 에티오피아 교회의 슬픔, 비성경적 혼합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