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4-04-30 21: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문법(文法)에 대한 니체의 경고:‘장님 사이 애꾸눈’이 되지 말라!


장님들 사이에서는 애꾸라도 모두 왕이 된다. (……) 우리가 그[다비드 슈트라우스-필자 주]에게 한쪽 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슈트라우스가 모든 독일어 파괴자 중에서 가장 무도한 헤겔주의자들과 불구인 그 후계자들처럼 글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독일어에 죄를 범한 자는 우리가 가진 모든 독일적 특성의 신비를 모독했기 때문이다.


앞의 인용문은 29세의 고전 문헌학 교수 니체가 19세기 말 독일 지성인의 모범으로 불렸던 다비드 슈트라우스의 문체를 평가한 내용이다. 슈트라우스의 글쓰기와 그 문체는 마치 장님 사이에서 눈 하나를 가지고 왕 노릇하는 애꾸눈 신세에 비유했다. 앞에 등장하는 헤겔주의자란 개념의 복잡성에 사로잡혀 추상적 개념을 지나치게 나열하고 변증법적 논리에 몰두하여 긴 설명과 복잡한 문체를 만드는 자라고 본다면, 슈트라우스는 적어도 이러한 복잡한 글쓰기로 독자들을 괴롭히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니체는 슈트라우스 역시 ‘독일어에 대해 죄를 범한 자’라고 평가한다.

슈트라우스의 문장을 인용하여 문법적으로 상세하게 교정함으로써 니체는 독일어 문법과 문체를 무시한 결과가 ‘독일적 특성의 신비를 모독’하는 처사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주어와 서술어 관계, 부사어 사용 문제, 전치사의 올바른 사용법, 독일어 3격 전치사와 4격 전치사의 의미상 차이 등 명확한 문법 구사가 민족의 사상을 바르게 표현하는 것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적어도 앞의 인용을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에 근거해 독일어로 저술한 자들의 특성은, 니체가 볼 때, 독일인들의 고유성을 훼손한 애꾸눈보다 못한 장님들이다. 20대 중반 문헌학 교수를 시작하면서부터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에 대해 분노했던 니체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변증법을 전제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자들에 대한 니체의 혐오는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슈트라우스도 당대의 사상가 분류를 한다면 헤겔주의자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 방법과 역사철학을 수용하고 서구 기독교 전통에 대해 급진적으로 해석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영향을 받은 그는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지 않고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산물로 보았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신화로 보았으며 기독교 사상은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즉 철학을 통해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 기독교의 교리와 전통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비판은 당대 기독교에 대해 같은 비판을 쏟아냈던 니체에게 상당 부분 호감을 주었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경우로 보면 니체가 만족하는(?) 기독교 비판은 문법, 문체, 비판에 대한 명확한 기준, 비판에 대한 대안 제시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그래서 니체의 중기나 후기 기독교 비판은 슈트라우스와 그 결을 달리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니체에게 문화 비판은 문법부터 기본적으로 지킬 때 가치가 있다. 모든 문화 비판을 품격 있게 하려면 우선 좋은 문법책부터 골라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조언이다.

니체의 슈트라우스 문장 교정에는 니체의 언어관이 작동하고 있다. 먼저 니체의 말을 들어보자. “언어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아서 자손에게 남기는 상속 재산이며, 신성하고, 귀중하고, 훼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대하듯 언어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이 든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들의 귀가 둔해졌다면, 질문하고 사전을 찾아보고 좋은 문법서를 사용하라.”(275) 언어는 특정한 민족의 고유한 유산이다. 그래서 언어는 신성하고 가치가 있으며 신적 경외심을 유발한다. 그런데 니체는 언어에 깃든 신성함을 (어린 시절에는 성경에서 배웠지만 이를 버리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슈트라우스 비판 이전에 저술했던 『비극의 탄생』을 비롯한 모든 저술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 관한 놀라운 경험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니체의 언어 비판은 귀가 둔해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문법은 자기 마음대로 쓰다가 독일어를 엉망으로 망치는 노인들에게 우려의 화살을 돌린다. 니체에게는 독일어 문법과 문체에 대해 등한시한 문필가의 저작은 장님 사이에 왕 노릇하는 애꾸눈 신세와 같다. 가령 니체가 “이 속물 문화 자체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진짜와 가짜, 독창적인 것과 모방한 것, 신과 우상을 구별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그리고 현실적이고 정당한 것에 대한 건강하고 남자다운 본능이 이 문화에서 상실되어 버렸다”(282-83)고 지적할 때 그 몰락의 증거는 당시 추앙받는 저술가의 문장 몇 개만 보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슈트라우스의 문장 교열(校閱)까지 면밀하게 진행하면서 문장을 바로 잡아주는 니체의 의도에는 정신문화의 성쇠(盛衰)가 부사구 하나 전치사구 하나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엄격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니체가 생각한 언어 유산에 담긴 신성함과 고귀함 그리고 글쓰기의 엄격함은 그가 읽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성경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지만 한 가지 사례만 제시한다.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은 사적으로 보이는 편지글이 상당수다. 극히 개인적인 편지글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니체는 바울의 글에서 바울의 문장과 문체만 분석하고 비판했을 뿐이다. 하지만 니체가 찾고자 갈구(渴求)했던 문자의 신성함은 이미 성경의 문자 기록에 담겨 있다. 단지 개인의 사적 서간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적 감동이 지배하는 절대 진리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사도들이 신성함이 충만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標的, miracle, sign)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살후 3:17)

<257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예순. 기독교의 로마제국 국교화 과정,교황 권력의 절대화 날조 과정
니체의 문체론: 천재에 대한 우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