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3-06-13 13: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


여호와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신의 존재이다. 성경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하여 명명백백히 여호와 하나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 존재에서 핵심은 바로 성전에 계신다는 것이다. 그분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 건물을 성전으로 우상화하여 그 안에 계신다고 강변(强辯)한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의미를 두 가지로만 간단히 분석한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다

성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를 찾던 부모에게 답변한 내용은 아주 중요하다. 바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이다. 여기서 내 아버지의 집은 직접적으로 건물 성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기본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 창조도 성전의 깊은 의미로 들어가 본다면, 하나님 아버지 집 곧 하늘에 있는 성전에 있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런 의미는 구약성경에서는 에스겔서에서 비교적 자세히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아주 깊게 볼 수 있다. 야곱이 꿈에서 본 곳이 하나님의 전이었다. 더 깊은 의미는 꿈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의 전(house)은 역사서에서 열왕기와 역대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역대기에서 열왕기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은 그 주제와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시가서에서는 시편에만 단지 6회 사용되고 있다. 선지서에서는 에스겔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역시 주제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솔로몬의 성전까지 보더라도, 그 이전의 성막이나 성소가 성경 기록의 목적대로 보여야 전체의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가미한 성전은 결코 건물에 묶여 한정되어 있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구약시대에 솔로몬의 성전이 훼파되었다가 재건되는 것에 관심을 끌고 간다. 그것은 바로 참 성전이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예표해 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와 똑같은 성질을 지닌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롬 8:3). 그 육신은 바로 성전으로 비유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형상이 성경 전체에 걸쳐서 중요한 성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음성만 들었지 그 형상을 보지는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과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렇게나 상상하여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욥기서의 뒷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장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영(spirit)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 기본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본질적으로 반드시 육(肉)이 아닌 영과 연관되어야 한다. 시편과 같은 곳에서 “주의 얼굴”을 많이 노래하고 있다. 이 얼굴도 분명히 영적인 얼굴이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결국 그리스도이심으로 결론짓고 있다.


2) 온 땅을 통치하시고 있다.

역대기 28장에서는 언약궤를 “하나님의 발등상”으로 해설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호와 하나님 존재의 핵심적인 증표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마지막장 66장에서는 땅은 “여호와의 발등상”으로 선포하고 있다. 창세기 시작 부분에서,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는 참으로 웅장하며 질서정연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한 날이다. 첫째부터 일곱째까지의 내용과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일곱 교회는 온 세상의 교회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오셔서 이 땅에 오셔서 교회의 기초를 놓으시고, 성령께서 교회를 세워 승리하게 하신다. 특히 창조순서는 심판순서와 매우 흥미진진하게 연관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의 세 가지의 심판 모습 곧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과 각각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차례로 진행되는 일곱 인(印)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등에도 모두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것을 웅변으로 선포한 것들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종교 폐지를 주장하고 자기가 상상한 교회를 제언하는 바르트
성령의 부어짐(9) 마스터(Meister/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