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4-04-30 21: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에스겔서의 年月日


에스겔서는 4대선지서에서 세 번째에 속해 있다. 이 논리나 순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자손언약을 이어 땅언약을 성취한다. 그다음에 통치언약을 완성하고 있다. 이 논리의 순서도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 이 세 가지 언약을 성취한 다음에, 욥기가 바로 이어지고 있다. 욥기부터 아가까지도 그 논리의 순서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가를 이어 이사야서가 등장한다. 이사야서부터 다니엘서까지에 그 논리의 순서도 참으로 놀랍다. 그 뒤의 12소선지서도 그 논리적인 순서에서 치밀하게 짜여 있다. 신약성경에 들어서서 4복음서의 논리적인 순서도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논리적인 순서를 강조하며 부각하고자 여기서는 에스겔을 선정하였다. 에스겔서의 시작은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이다. 여기에서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는 바로 연월일(年月日)이다. 이러한 연월일의 형식은 에스겔서에 10회 이상 나온다. 이것은 에스겔서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에스겔서의 주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스라엘 족속을 흩었다가 다시 모으심이다.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00년이 지나고 오늘의 세계와도 매우 밀접하다. 여기서는 연월일 형식을 사용하신 목적을 부각하는 데 그 중점을 두고자 한다. 그 중심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다.


1) 여호와의 권능을 계시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구약성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직접적으로 이사야서부터 말라기서까지에 연결되어 있다. 나라는 다니엘서에 제일 많이 나온다. 권세와 영광은 선지서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그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에스겔에게 임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세 번은 더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권능(1장 3절과 8장 1절과 40장 1절)”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호와의 권능을 연월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성경 66권의 시작은 하나같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스겔서의 시작은 제삼십 년(서른째 해)이다. 창조부터 심판까지 이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에 기초한 섭리다. 특히 성경은 특별계시다. 그다음에 8장 1절에서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로 묘사되고 있다. “주 여호와의 권능”에서 주 여호와는 이 권능과 관계되어 에스겔서에 자주 나오고 있다. 권능과 주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40장 1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로 강조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로잡히는 일과 성이 함락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중요한 일에 연월일을 연계한 것은 분명히 여호와의 권능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해와 달과 일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세월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으니 매우 논리적이다. 세월은 지나가 버렸고 지나가고 지나갈 것이다. 붙들 수도 없는 것은 너무도 빨리 또 강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월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시간과 인간이 함께 있는 때마침 곧 이 세월 속에 있는 이때가 바로 이 정체를 연구하고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 여호와의 영광을 계시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광은 특별계시의 목적이다. 이 목적이 에스겔서에서 연월일과 연관되어 강조되고 있음에 그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은 그 백성과 성읍 가운데에 임하고 머물며 떠나가기도 한다. 24장 1~2절에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의 이름(名)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느니라”로 “오늘”이 강조되고 있다. 예레미야(애가)서에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등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방의 합계는 18,000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다. 유명한 “여호와삼마”에서 그 시점이나 기준은 바로 “그 날”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 번역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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