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6-08-25 21:1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언어 <79>

요나서에서 미가서까지


요나서에서 미가서까지

성경 전체를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전부를 통하여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를 본다는 것은 중요한 몇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성경을 책으로 보는 것이다. 책은 일반적으로 시작 부분부터 마무리 부분까지로 묶어져 있다. 책 중에 책(the Book)인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묶어져 연결되어 있다. 이 점이 간과되어 서로 분리된다면 그 온전한 가치는 지닐 수 없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의 생명은 연결에 있는 셈이다. 사람의 온몸이 목을 통하여 아래위로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마치 사람의 몸처럼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을 계시(revelation)로 본다는 것이다. 계시로 본다는 것은 신의 존재로 본다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취지나 목적에서 구약성경 일부분을 통하여 전체나 성경 순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부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바벨탑의 망상으로 인간은 두루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사고의 장벽과 언어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시면서(창1:2) 성경을 증명하시기까지(계22:20) 하신다. 이처럼 창조나 바벨탑 사건 등 이 모두는 신의 자기 계시라는 점에 모이게 된다. 이러한 목적과 초점을 내세우면서 선지서의 일부분인 요나서와 미가서의 연결고리를 비롯하여 그 각각의 특징을 보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구성은 역사서와 시가서 그리고 선지서이다. 이것들의 관계도 아주 밀접하다. 이러한 조화나 관계를 강조하며 보려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선지서 기록에 12명의 기록자가 동원된 것도 하나님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시려는 목적과 너무도 잘 부합된다. 결국, 성경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 소선지서의 각각은 성경 전체에서 마치 사람의 한 손가락과 같다. 오바댜 1장은 마치 손가락의 한 손톱과 같다. 소선지서는 전체에서 이렇게 극히 일부분에 해당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한 이해나 활용이 약할 때는 마치 사람 손의 불편함과 같다. 이러한 취지에서 성경 66권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성경진리가 생명이기에 어찌 관심가지 않는 부분이 있겠는가?

 12소선지의 배열과 순서는 마치 사람 몸의 위치처럼 매우 중요하다. 호세아서부터 말라기서까지의 순서는 그 자체로 마치 머리에서 발까지나 또는 발에서 머리까지로 된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점을 연구하고 확인하려는 자세로 여기서는 요나서와 미가서를 매우 간략히 구분해 본다. 더 구체적으로 요나서는 오바댜 다음에 있고 미가서는 나훔서 앞에 있다. 선지서 전체가 이스라엘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계시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메시아를 언약하시는 여호와 계시에 잘 부합된다. 요나서와 미가서라는 자체의 전체에서 열방 통치와 선민 통치로 구분하여 본다.

 1) 이방 중심의 요나서

 요나서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이다. 이 시작의 말씀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신 것이다. 그 끝은 여호와께서 이방도 아끼며 사랑한다는 것(4:11)이다. 요나서에서 여호와께서 요나나 물고기 등을 준비하셨다는 것은 여호와 이레이심을 재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구약성경은 선민나라인 이스라엘과 이방나라를 여호와께서 모두 만들어 섭리하심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학개서부터 말라기까지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강조하였다. 미가서는 큰 성 니느웨라는 이방을 통하여 여호와를 미가서 앞에서 강조하고 있다. 

2) 백성 중심의 미가서

 미가서는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라고 밝힌다. 요나서에서는 “니느웨 백성”(3:5)이라고 단 한 번 언급된 반면에, 미가서에서는 “내 백성”(1:9, 2:4·8·9, 3:2·5, ……)으로 매 장에서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요나서를 비교적 잘 이해하는 반면에, 미가서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겪는 어려움에 하나의 실마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요나서에서는 니느웨 왕을 언급한다. 미가서에서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여호와로부터 나올 것(5:2)을 예언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미가서 7:18~20을 요나서에 연결해서 속죄의 날 오후에 읽는다. 그 내용의 요지는 주(Lord)이신 여호와께서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며 사랑한다는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성경의 언어 <80>
아멘 주 예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