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20세기의 거산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신앙문답 해설’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그를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고 하면 누가 비판할까? 김진혁은 판넨베르크(Wolfhard Pannenberg, 1928~2014)의 <조직신학 서론>(비아)을 서평하면서, 2006년 20세기 영향력 있는 32인의 신학자를 추천해서, 월드컵 방식으로 결승 진출을 그렸다. 8강에서 판넨베르크와 폰 발타자르가 만났고, 판넨베르크가 충격적인 패배를 했다고 상상했다. 그런데 우승자는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를 꺾은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이었다. 김진혁이 인용한 그림은 판넨베르크의 탁월성을 간접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구도라고 생각되었다. 몰트만, 발타자르, 판넨베르크 모두 칼 바르트를 평가하고 비판하며 신학적 거목이 되었다. 발타자르의 바르트 평가는 한국에서 따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김진혁은 그들이 바르트를 넘었다고 평가하는데,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바르트 옆에 자기 이름을 가져다 대는 것에 성공한 학자들이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32인의 게임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 재미있는 모습이다. 바르트가 사상의 방대함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 비서 샬롯테(Charlotte von Kirschbaum, 1899-1975)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샬롯테는 1929년부터 비서로서 바르트의 집에서 1968년 바르트가 죽을 때까지 39년 동안 함께 했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의 성장에 자신의 삶과 힘을 바쳤다. 그녀의 협력이 없었다면 이 작업은 하루도 진전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바르트가 『교회교의학』 III/3 서문에서 밝히기도 했다. 바르트는 1927년 『기독교 교의학』을 발간했는데, 1932년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I/1을 출간하며, 『교회교의학』 신학자가 되었다. 『교회교의학』 IV/4권이 1967년 미완성으로 출판되고, 1968년에 사망했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뿐만 아니라 1929년 뒤부터는 항상 샬롯테가 함께 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인정하지만 범위까지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20세기 최고 신학자의 게임에서 바르트가 참가하지 못했고, 오히려 바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경쟁해서 바르트를 잘 연구한 몰트만이 우승자가 되었다.
바르트는 인생 마지막 무렵에 『하나님의 인간성』(Die Menschlichkeit Gottes, 1956년: 2017년 신준호가 새물결플러스에서 번역해서 출판함)을 집필했다. 바르트의 단편 중에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1947년)가 있다. 김산덕 번역으로 새물결플러스에서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바르트가 이해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무엇일까? *김산덕은 ‘요리문답(Catechism)’을 ‘신앙문답’으로 번역했는데, 일본식 어휘(信仰問答)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해설>은 1954년에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은 독일 작품에 대해서는 아주 신속하게 번역하는 것 같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도 우리는 최근에 번역되었는데, 일본은 오래전에 전집이 번역되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신학계 어휘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동일한 한자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치시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우리 신학계는 일본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일제식민지 시대를 지나면서 일본어 번역이 좀 더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 성향에서 칼 빨트(발트, 박형룡, 서철원)를 사용하는데, 일본 번역의 영향으로 칼 바르트(이종성: カール バルト)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Baltisches Meer를 ‘발트해’라고 읽으면서 Barth는 ‘바르트’라고 읽는다. 그러나 언어는 합리성보다 시장성이 우선한다.
한국 교회는 WCC. WEA. 로잔선교대회에서 큰 격동을 겪고 있다. 이 거대한 격동에 보이는 함수는 “동성애”이다. 보이는 것을 공격하는 것은 결코 꺾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이 거대한 격동에 보이지 않는 함수가 칼 바르트라고 제언한다. 성경을 연구하기 위해서 신학을 했다가, 칼 바르트를 비평하는 것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까지 몇 줄씩 바르트의 글을 읽고 있다. 그래서 바르트에 관한 저술은 꾸준히 구입하고 있다. 이번에 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해설했다는 정보를 잘 알지 못했는데, 책 소개를 듣고 바로 구입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살핀 뒤에 간략하게 서평을 올리며 공유하고 있다.
칼 바르트의 저술이 번역되는 것은 좋다. 바르트의 사상을 좀 더 빠르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트에 대한 긍정적 사상이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침묵시키며 잠재시킬 수 없다. 적극적으로 개방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바르트가 해설했다기보다, 바르트의 논제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융합시킨 것으로 보인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은 129문으로 되어 있고, 52주간 설교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28장으로 나누었고, 1-2장은 개론적 설명이고, 3장부터 28장까지 요리문답 해설을 구성했다. 그런데 19장부터 28장까지는 해설이 되지 않은 미완성 작품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강의록으로 보이는데, 18장까지 강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처럼 시작하기 전에 핵심문장을 남긴 뒤에 설명을 진행한다. 그 핵심문장은 바르트의 사상으로 보이고, 그것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맞췄다고 평가하고 싶다.
번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르트의 사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핵심 용어는 독일어로 표기해 주어야 한다. 이 저술에서 상당히 많이 반복되는 단어에 ‘정상성’이 있는데, 독일어를 찾지 못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먼저 영어 번역을 구입했는데, right of God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리’는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독일어가 없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 않다. 본문에서 보면 ‘Lehre’를 교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좋은 번역이 아니다. ‘doctrine’도 ‘교리’라고 하지만, ‘Dogma’도 ‘교리’로 번역한다. 복음은 “기쁜 사신(Botschaft)”으로 표현했다. 이런 단어는 독일어 표현을 반복해도 나쁘지 않다. 이 상태로 바르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한 좋은 번역서에 불과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단은 영어 번역을 구매했다.
바르트의 글이나 그에 관한 글을 만나면 거의 구입한다. 읽든지 읽지 않든지 구입한다. 그런데 그가 우리가 좋아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해설했다고 하니 꼭 읽어야겠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그런데 강의 내용이어서 그런지 깊은 내용보다 간략한 자기 개념이 나열되고 있다.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저자의 믿음과 심장을 보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다. 자기 의미와 의도에 맞춰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해설한 것이다. 그래도 바르트의 글을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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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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