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09-30 17: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로뎀나무 이야기

banner

ε.

‘비참한 신세’의 상징  로뎀나무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자라는 몇개의 나무 가운데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나무가 로뎀나무이다. 광야에서 ‘로뎀나무 아래서 햇빛을 피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비참한 신세’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쓰였다. 광야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햇빛은 저주를, 그늘은 은혜를 상징한다.

뜨거운 광야 길을 걷는 사람에게 이글거리는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가 에셀나무이다. 그러나 로뎀나무는 생긴 모양 자체가 빗자루와 같이 뻗어나가 그늘이 별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로뎀나무 그늘이나마 쉬기 위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은 광야에서 당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라를 대신해서 아브라함과 동침해서 아이를 갖게 된 하갈은 원래 사라의 몸종이었다. 하갈은 우리나라의 씨받이 개념으로 아브라함과 동침을 한 것이데, 아이를 임신하자 스스로 안방마님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라의 학대를 못이겨 집을 나오게 되지만 도중에 만난 천사의 음성을 듣고 다시금 몸종의 자세를 회복하고 사라의 수하에 복종하며 돌아온다. 그러나 사라에게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최남단인 네게브 사막의 한 복판에 있는 도시, 브엘세바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母子)는 광야의 뜨거운 햇빛에서 물이 떨어져 결국 목이 말라 죽게 되었다. 하갈은 네게브 사막을 방황하다가 자식인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고 방성대곡했다. 여기에 떨기나무로 번역된 나무도 유대인들은 로뎀나무로 해석한다. 광야에서 오갈데 없는 비참한 상황 설정에 반드시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무가 로뎀나무이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8장에서 갈멜산 대첩을 승리로 이끈 맹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다음 장인 19장에 등장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엘리야는 불로써 응답하시며 친히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도했지만 아무런 변화의 역사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깊은 절망과 우울감에 빠진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데 대한 보복으로 이세벨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최남단의 브엘세바까지 정신없이 도망쳤다. 지중해 북쪽 해변에 위치한 갈멜산에서 최남단의 브엘세바까지 쉼없이 달렸으니, 말 그대로 ‘비 오는 날 먼지나게’ 달린 것이다. 브엘세바에서 엘리야는 사환을 그 곳에 두고 스스로 광야로 하룻 길을 더 들어 갔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저 강우량 선이 지나는 브엘세바에 사환을 남겨 두고 홀로 광야로 하룻 길을 들어간 엘리야의 심정은 이미 죽기를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엘리야는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차라리 죽기를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다. 광야에서 만나는 로뎀나무는 예외없이 비참한 상황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많은 지상의 축복을 누렸던 욥은 사탄의 질시로 말미암아 가족과 모든 부귀영화를 빼앗기고 극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욥은 이런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며 슬픈 애가를 부르고 있다. 짠 나물로 번역된 나무는 광야에서 자주 만나는 소금나무(salt plant)이다. 소금나무는 말 그대로 잎사귀 자체가 무척 짠데, 광야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이 나무의 잎사귀를 먹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소금 성분을 제공받는 소중한 나무이다. 그러나 이 소금나무는 분명 식용으로 적당한 나무가 아니다.

아울러 욥은 대싸리 뿌리를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생긴 모양이 빗자루와 같은 로뎀나무의 별칭이다. 빗자루 즉 대싸리 나무의 뿌리 역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춘궁기의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나무껍질과 플뿌리를 캐서 먹었다지만, 대싸리 뿌리와 짠 나물은 그런 상황에서도 먹을 수 없는 식물들인 것이다. 욥이 떨어진 나락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가 부른 애가는 잘 보여주고 있다.

광야의 로뎀나무가 상징하는 ‘비참한 신세’와 아울러 시편의 본문은 로뎀나무 숯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재미 있는 유대인들만의 표현인데, 유대인들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상징을 알지 못하는 한국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들릴 것이다. 시편 기자는 궤사한 혀에게 왜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을 더하시겠다고 했을까?

성경뿐만 아니라 각 문화마다 사악한 혀에 대한 독특한 표현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세 치 혀를 잘 놀려야 한다’며 혀를 조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혀를 잘못 놀려 패가망신한 경우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궤사한 혀에게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을 더하겠다고 표현한다. 유대인들에게 날카로운 화살은 궤사한 혀와 무슨 상관 관계를 갖는 것일까? 이는 다른 무기와 달리 화살이 갖고 있는 장점과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과 칼 등 일반 무기들이 적과 가까이 근접해서 싸울 때, 그리고 가까이에서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반면, 멀리서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가 바로 ‘화살’인 것이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유대인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재미 있는 경구가 있다. ‘로마에서 한 말로 시리아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처럼 혀에서 나온 궤사한 말과 중상모략은 돌고 돌아 멀리 있는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까지도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로뎀나무 숯불의 특징은 오래탄다는 것이다. 겉으로 볼때 다 탄 것 같아도 부지깽이로 속을 뒤집어 보면 여전히 그 밑에서 불씨가 살아서 타고 있는 것이 로뎀나무 숯불이다. 초막절이 있는 10월부터 유월절이 있는 4월까지 6개월 동안의 우기에도 버티어 화력을 유지하는 것이 로뎀나무 숯불이다. 이 불이 오래 타듯이, 궤사한 혀에서 나온 중상모략은 그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한번 혀에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로뎀나무 숯불처럼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치명상을 가하는 것이 궤사한 자의 혀에서 나온 중상모략인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광야의 안식처 에셀나무 이야기
가나안의 대표적 과실, 석류와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