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09-30 17: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올리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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ø(, ó flickr.com).

기독교유적지탐사는 이집트를 거쳐 3박4일 정도의 이스라엘 일정을 소화하는데, 그 마지막의 정점이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에서의 일정은 아침 일찍 올리브산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가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탐사객들이 탄 버스에 돌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들은 똑같이 설명한다. 유대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히브리대학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 등성이가 올리브 산으로 불리운다. 이 올리브산 정상과 현재 히브리대학이 위치한 스코푸스산을 잊는 능선을 때라 달이 뜨게 되는데 초생달이 바로 이 올리브 산 정상에서 시작된다.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기드론 계곡을 건너 동쪽에 위치한 올리브산은 올리브 숲이 우거져 있어 그렇게 불려진 것이다. 그러나 유대 1차 반란 때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이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다.

‘감람산’, ‘감람나무’는 틀린 것

올리브산은 히브리어로 ‘하르 하-자이팀’(har ha-zeitim)으로 ‘감람’, ‘감람산’이라는 번역은 틀린 것이다. 개정개역판에는 여전히 ‘감람산’이라고 되어 있다. 바른 성경에는 ‘올리브산’이라고 적고 있다. 초기 한글 성경이 중국어 성경에 사용된 ‘감람’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올리브가 중국 남부에 분포한 감람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열매의 모양과 색깔, 심지어 맛과 용도까지 올리브와 비슷하나 이스라엘의 올리브와는 다른 종류이다.

무덤의 산

성경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올리브산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실완(Silwan)이라고 불리는 남쪽 능선은 성경시대의 왕들의 매장 장소였다. 스가랴와 압살롬의 무덤을 비롯해서 유명한 랍비 등 대략 150,000개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을 때 호텔을 짓고 도로를 만드느라고 4-5만개의 무덤을 훼손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는 1차 성전시대의 것도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스러운 산

올리브산이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이다. 사무엘하 15장 30절에는 “다윗은 올리브산 오르막길로 올라갔는데, 올라가면서 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가렸으며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도 각각 자기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올라갔다.” 그 외의 다른 구절에서는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산꼭대기에 이르러 보니...”(삼하 15:32)와 열왕기상 11장 7절, 열왕기하 23장 13절 등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shekinah)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성전을 떠나 올리브산으로 옮겨가는 환상을 보았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읍 가운데서 올라가 성읍 동편에 있는 산에 멈춰섰다.”(겔 11:23)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은 이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방신 그모스와 몰록을 위한 신전을 이곳에 세운다(왕상 11:7). 이 산당은 유다왕 요시아가(주전 640-609) 허물어 버린다(왕하 23:13).

예수님의 산

예수님은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에서 이 올리브산에서 제자를 가르쳤고,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몇 번이나 왕복하셨다. 사도행전 1장 9-12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승천의 장소가 된다. 미쉬나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는 바로 올리브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Genesis Rabba 33:6). 메시야가 오실 때에는 올리브 산 정상에서 내려 오셔서, 올리브산 비탈에 있는 무덤에서 자는 자들을 깨우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 미문이라고 하는 슈산(Shushan)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이때 이문은 메시야의 도래를 소망하며 약간 열려있다는 것이다.

이 종말에 대한 예언은 스가랴 14장 4절에 기초한 것이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에 서실 것이고, 올리브 산은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옮겨지고, 다른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질 것이다”  시리아에 위치한 3세기경의 두라-유로포스(Dura Europos) 회당에는 이 구절의 생생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시리아의 이 공동체는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초대교회 성도와 동일한 소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림설명)

기드론 계곡과 우측의 감람산 (출처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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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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