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20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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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戰犯)의 지식인 포섭, 돈으로 지성과 양심을 멍들게 한다
하버드대학교 법대 교수이자 한국학 전문가 마크 램지어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 한국은 물론 미국 내 한국 역사 분야에서 적지 않은 비난과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성노동자였으며,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가 아니라 매춘 행위라고 했다. 지난 17일 연합뉴스TV가 이메일로 문의하자 그는 자신이 논문에서 주장한 것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아물지 않은 아픈 역사에 생채기가 나는 일이 벌어졌다.
램지어 교수는 2년 전 논문에서도 이미 역사 왜곡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1923년 일본 관동지방 대지진 이후 일본 경찰과 군인 그리고 일본인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재일조선인의 범죄가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일본 관민이 동원된 무차별적 학살로 6,661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2만 3,058명이 희생자라는 독일 외무성이 제시하는 자료와는 네 배가량 차이가 난다. 1924년 3월 독일 외무성은 학살 장소와 시신 확인자 8,271명, 시신만 확인자 7,861명, 장소와 시신 미확인자 3,249명, 경찰 학살 577명, 군인 학살 3,1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많은 차이를 보이는 이 학살의 진실 여부는 잠시 뒤에 놓더라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악성 소문을 유포하며 저지른 만행에 대한 램지어의 역사 왜곡은 도대체 왜 그가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관심을 갖게 한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일본이 패망 후 천문학적 금액을 미국과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쏟아부어 그들을 포섭하여 후원하고 전범(戰犯)의 흔적을 덮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램지어 교수의 일본 이름이 이러한 일본의 계략을 보여준다. 하버드대에 등록한 그의 이름이 ‘미쓰비시’이다. 이는 전범 기업인 일본 미쓰비시 그룹이 하버드에 일본인 학생 장학기금을 조성한 결과이며 그 교수 자리도 그때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오랫동안 후원을 받았으며 2018년에는 일본의 국가 훈장인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결국 그는 최일선에서 전범국가 일본의 만행을 지우는 데 일등공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노예 피해자를 매춘으로 왜곡하는 ‘미쓰비시-램지어’와 같은 경우들이 우리의 대학 안에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거액으로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들을 연구비와 장학금의 명목으로 그들의 양심을 사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기독교 재단의 대학 후원비 명목으로 많은 액수를 지불하여 전범의 치부를 덮도록 진리의 전당을 매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사카와 재단’이나 ‘토요타 재단’은 유력한 한국 대학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지원했다. 일본 연구가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인은 정부든 민간이든 공짜 돈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들을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포섭하여 마침내 전범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강의나 강연, 논문 한 편으로라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쓰비시-램지어’처럼 지속적으로 전범을 정당화하면 지속적 후원도 보장해 줄 것이다. 참으로 한국 지식인의 비참하고도 슬픈 현실 중 하나다. 거액의 생활비와 연구비에 지식인의 양심을 팔 것인지 말 것인지 괴로운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섭리를 믿는 신앙인에게 이러한 굴욕적이고 처참한 역사적 현실은 적지 않은 고민과 부담을 준다. 역사 섭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므로 일본의 침략과 만행도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며 자신의 친일적 행위를 변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는 그 안에 심판을 담고 있으므로 일본의 강탈 역사는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악의 세력을 심판하는 역사라고 주장한다. 모두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으로 시작하지만 결과는 극한 대립으로 향한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므로 나의 어떤 행동도 모두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도 형식 논리로 보면 말이 된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므로 나의 어떤 행동도 심판 대상이므로 부당하다는 말도 성립한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은 여기서 발생한다. 그러한 행동이 자기를 변명하는 말인지 아니면 하나님 앞의 진정한 신앙 고백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말하는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으로서 누가 진실(眞實)/허위(虛僞)를 판단할 수 있느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대한 역사적 평가 문제는 단지 역사적 교훈으로 수용하기에는 아직은 그 길이 멀고도 험하다. 산모의 진통 중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진영의 극한 대립과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는 길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지 진정성 있는 고민과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매우 크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은 딜레마 속에 빠져 있었다. 로마와 타협하거나 그들에게 복종하면서 편안하게 살 것인가(하지만 로마는 결국 유대인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 아니면 이방 대적인 로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출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선언하신다. 친일과 반일을 모두 통치하시는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 1:21-22) 이는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선과 악에 대한 횡행, 그리고 그 심판 시기와 심판 방법 그리고 한 국가의 혼돈과 질서의 통치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함을 다시 뼈저린 탄원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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