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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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06-30 20:0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안평중과 장문중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자왈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경지.

子曰臧文仲 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자왈장문중 거채 산절조절  하여기지야.
『논어』 제5장 「공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하기를 안평중은 다른 사람과 잘 사귀기를 잘한다. (사귐이) 오래되어도 (상대를) 공경을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장문중이 거북을 보관하되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 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를 그렸다. (그러니) 그의 지혜로움이 어떻겠는가. (지혜롭지 못하다)”


안평중은 제나라 대부로서 이름은 영(嬰)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사귀기를 오래 하면 대체로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 약해지게 된다. 하지만 안평중은 오래 사귀더라도 상대방을 충심으로 공경하였다. 안평중은 도덕과 의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장문중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보다는 점치는 수법 등을 사용하면서 대인관계를 맺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나라 대부 장손씨(臧孫氏)로써 이름은 진(辰)이다. ‘거’(居)는 ‘보관’(藏, 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는 ‘큰 거북’(大龜)이다. ‘절’(節)은 ‘기둥머리 두공’(柱頭斗栱)이다. ‘조’(藻)는 그려 넣어 꾸민다는 뜻이고 ‘절’(梲)은 들보 위에 세워 상량이나 오량 따위를 받치는 짧은 기둥(동자기둥)이다. 장문중이 ‘거북을 보관했다’는 것은 거북을 위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방의 들보에는 산을 그려 넣고 두공에는 수초를 그려 놓고 있었다. 아마도 거북이 산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살고 하니까 그러한 상황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거북은 은나라 때부터 점치는 데 사용되었다. 거북의 등은 둥그레 해서 하늘을 형상하고 발은 네모져서 땅을 형상한다고 믿었기에 거북이 점치는 데 사용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장문중은 사람을 사귀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점치는 것을 중심으로 꾸려 나갔음을 짐작하게 한다. 장문중은 인간의 지켜야 할 예를 다했다기보다는 귀신에게 의지하고 아첨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점이나 요행보다는 마땅히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면서 끝까지 다른 이를 공경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슬쩍슬쩍 요행을 바라고 눈치껏 약삭빠르게 사람을 가려서 임기응변식으로 대하거나 사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을 사귀고 대하기를 오래 하면서도 더욱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귐과 공경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자신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처럼 여기거나 슬쩍슬쩍 자신의 행운을 위해 임기응변의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사귐을 오해하고 그럴수록 공경의 마음을 깊게 해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신앙의 훈련이 된다. 사람이 한 사람과만 사귀는 것이 아니기에 다수의 사람과 오래도록 공경하며 사귈 수 있다면 매사에 공경의 마음이 수련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한구석에 모셔 놓은 신줏단지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오래도록 해야 하고 공경의 마음은 더욱 깊어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러한 경건의 훈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이 주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과 끝까지 사귀면서 더욱 그분을 공경할 수 있는 믿음의 역량은 우리들 사이에서의 사귐의 훈련을 통해 성장되기 때문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하나님을 자신의 요행을 위해 활용하는 신줏단지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 대신에 사람들과의 사귐을 오래 하면서 더욱 그들을 공경하는 것을 배우고, 이 배움을 통해 하나님과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사귀고 그분을 진실로 공경하는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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