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2일 (수) 

> 학술 > 철학 > 성경신학으로 보는 니체 평설 〈14〉
기사공유 작성일 : 20-10-21 13:4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플라톤의 영혼불멸설 1: 스승의 죽음을 제물로 삼은 것
열로도, 목을 졸라도, 설령 육신을 최소 단위의 토막들로 나눈다 하더라도 영혼의 몰락은 촉진되지 않는다. 죽음 때문에 영혼들이 더 의롭지는 못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다. (……) 죽음은 철학에 본래적으로 영감을 불어넣는 정혼(精魂) 또는 철학의 영도자로 일컬어집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철학이란 바로 죽음의 연습입니다. 죽음 없이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야 비로소 죽음에 대한 확실성이 생깁니다. 그것을 치유하는 약은 형이상학적 견해들로, 이것은 모든 종교와 철학의 핵심입니다. 죽음과 철학의 이러한 본래적 결합은 소크라테스의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것으로 보입니다.

플라톤의 작품 『파이돈』의 내용이다. 니체가 소개하는 이 저서의 실상은 소크라테스의 독배 현장에 없었던 플라톤이 마치 죽음을 지켜본 것처럼 저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자기의 영혼불멸설을 피력하기 위한 제물로 삼아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속임수를 창출한다.

영혼불멸에 대한 날조는 모든 인류에게 그만큼 죽음 문제가 지대한 관심사이며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반영하고 있다. 일상적 삶에서 자신의 죽음을 잠시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의 방향은 ‘이렇게 견디고 살아온 것이 이렇게 그냥 한 생명 없어지고 마는 것인가’ 하는 죽음에 대한 수용보다 반발심과 저항감으로 향한다. 그래서 죽기까지 지나온 삶의 보상을 위해서는 사실 여부의 증명과 상관없이 불멸의 영혼도 있어야 하고 사후 세계도 있어야 한다. 선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사후에라도 반드시 그 보상을 받아야 하고, 악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처벌이 뒤따르는 심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심정적 요구일 뿐 확증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플라톤은 너무 억울하지만, 너무 숭고한 스승의 죽음을 완벽하게 이용해서 지금까지도 유통되는 그럴듯한 영혼 불멸 사상을 가공한다. 

니체가 플라톤을 비판한 부분을 평이하게 이해해 본다면, 플라톤은 인간의 불가피한 죽음을 의연한 모습으로 수용하는 스승의 탁월한 태도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하계(下界)로 추락하는 인간의 목숨이 아닌 ‘천상계(天上界)’를 향해 여행을 시작하는 고귀한 영혼의 불멸 신화를 만든다. 그 결과 이후 서구사상 특히 기독교 사상사에서 플라톤의 사상은 마치 기독교의 부활 사상처럼 가공되어 영혼 불멸 문제를 비롯한 종말론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렇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할 때 플라톤 이후는 그 자리가 바뀐다. 플라톤 이전에는 사후 세계가 땅 밑에 있었다면 플라톤 이후에는 하늘에 있다. 니체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통속적 견해 정도로 저승의 가능성 정도를 말했을 뿐이다. 플라톤처럼 철학자는 죽음을 동경한다는 식의 견해는 없었다. 이것은 분명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신화화한 것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자기 사상의 제물로 삼는 과정을 위의 인용을 통해 좀 더 살펴보자. 다음은 분명 스승의 용기 있고 의연한 죽음을 염두에 둔 내용이다. 영혼은 불로 태워도 목을 잘라도 난도질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이란 것 때문에 영혼의 몰락은 발생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톤 자신의 사상이 지금도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미치면서 신학 사상으로 둔갑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가능한 말이다. 플라톤에게는 철학자들에게 심오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철학의 영도자(領導者)가 바로 죽임이다. 분명 스승의 죽음을 용기 있게 만든 원동력이 죽임이라는 말로 새길 수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스승과 같은 ‘죽음의 연습’이 바로 철학이라고 한다. 플라톤에게는 ‘죽음 없는 철학은 불가능하다.’ 모든 철학과 종교가 스승을 통해 확증된 바로 죽음과 철학의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영원한 상관관계’를 외면하고는 성립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죽음의 과정을 천재적 발상으로 자신의 영혼불멸 사상을 가공하여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 서구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초대 교회 당시 많은 교부는 성경 진리를 해석하기 위해 플라톤의 사상을 사용했다. 신론은 물론이고 예정론도 플라톤 방식으로 해석했다. 기독론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본성론을 플라톤의 영육 이원론 속으로 녹여버렸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희생을 본받은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성경적 종말론은 플라톤 사상의 결과로 보았다. 이렇게 플라톤 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우 성경 권위보다 앞서는 부분도 있다. 철학의 헛된 속임수(골 2:7)의 주범이 플라톤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도들은 성경 진리 탐구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만이 죽음의 문제를 해명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의 주검을 놓고 마리아가 예수님이 늦게 온 것을 아쉬워하자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주로, 생명의 주로 믿는 믿음은 육신이 죽었거나 죽지 않았거나 모든 상황을 초월하는 신앙이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마저 이용해 영혼의 불멸을 설명하려는 플라톤의 무모한 상상력과 그것을 비판하는 니체의 철학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이 없이는 죽음 앞에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철학적 관념이나 상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영생이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5-27)

<199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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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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